지난 17일 오후 부산 사하구 괴정동 해동고등학교 체육관. 문을 열자 갖은 양념 냄새가 풍겼다. 앞치마에 마스크, 위생모를 쓴 고등학생들이 배추에 김칫속을 넣었다. 서툰 솜씨였지만 손길에는 조심스러움과 정성이 담겼다. 앳된 얼굴에는 어느새 땀이 배어났다.

이날 해동고에서는 홀로 사는 노인을 돕기 위한 '행복바이러스-사랑의 김장 담그기' 행사가 진행됐다.

주말임에도 2학년 전원인 212명이 모두 오후 늦게까지 남았다. 직접 배추를 손질하고, 김칫속을 버무리며 행복바이러스임을 자처했다. 서너 명의 지도교사 이외에 선생님은 눈에 띄지 않았다.

두 시간의 우여곡절 끝에 480여 포기의 먹음직한 김치가 완성됐다. 5명씩 1개 조로 나뉜 학생들은 학교 근처 어르신이 사는 집 48곳에 김치를 배달했다.

연말이면 으레 진행하는 일회성 행사와 달랐다. 학년 모두가 뜻을 같이해 지난 9월부터 매달 5000원씩 돈을 냈고, 한 달에 100만 원이 넘는 적지 않은 돈이 모였다. 이 기금은 쌀 20㎏(9월)과 라면 등 생필품(10월), 겨울 내복(11월)을 48명의 어르신에게 전달하는 데 쓰였다.

부총학생회장 이승용(해동고 2) 군은 "강제성이 없는 탓에 친구들 모두가 봉사의 참 뜻을 알게 된 것 같다"며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이태석 신부 같은 의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유원규 2학년 부장교사는 "내년에는 전교생에게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