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시장에 갔는데 야채 파는 할머니가 나를 '새댁'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나는 정중하게 "제 이름은 '새댁'이 아니고 '이홍련'입니다"라고 했는데 할머니는 "새댁처럼 보이는데 왜 그러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더 설명하고 싶었으나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기에 장을 보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알고 보니 한국에서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를 '새댁'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아주버니가 나를 부를 때는 '제수씨'라고 하고 형님은 나를 '동서'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호칭을 외우려 애를 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에서는 그냥 이름을 부르면 되는데 왜 한국에서는 호칭을 다르게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가끔 남편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지만 밖에서는 '여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부인이 남편의 이름을 부르면 예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항상 조심했다.

한국과 달리 중국은 남녀평등 의식이 강하다. 서로 이름을 부르는 부부가 대부분이다. 식사를 꼭 여자가 챙겨야 한다는 법도 없어 먼저 퇴근한 사람이 밥을 하고 집안일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부부끼리 자연스레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져 일부러 이야깃거리를 만들 필요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반면 한국에는 남자들이 요리나 집안일을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부인의 이름도 잘 불러주지 않는다. 내 남편은 전통적인 한국 남자와 달리 집안 일도 잘 도와주고 아기도 잘 돌봐줘서 무척 고맙다. 그런데 "여보, 이름을 좀 불러줘"라고 하면 이름을 부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말꼬리를 흐린다. 지금까지 내 이름을 한 번도 불러주지 않고 아이의 이름을 붙여 '누구 엄마'라고 한다.

남편은 가정적이지만 한국 사람이라 그런지 남자는 과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부부 사이에 대화가 많지 않다. 가끔 나는 대화 소재를 만들어 남편과의 대화를 유도한다. 남편은 그런 나의 태도가 싫지는 않은지 "음… 음…"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어느새 한국에 시집 온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중국처럼 결혼을 해도 내 이름을 가족들이 불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별일 아닌 일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서인지 중국인인 내게는 여러 호칭이 아직 낯설다. 밖에서 만나는 친구와 아는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남편과 가족들도 내 이름을 불러줬으면 좋겠다. 내 이름을 들을 때마다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내가 설 자리가 있는 것 같아서 자부심도 생긴다. 또 내 이름을 들을 때마다 고향에서의 생활을 떠올리기도 하고 지금까지 내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여보, 제발 제 이름을 불러줘요."

이홍련(중국)/ 부산 북구 다문화지원센터 통·번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