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가까이 마찰을 빚어온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협상이 타결 직전까지 갔다가 사측과 경찰의 섣부른 대응으로 또 무산됐다. 하루라도 빨리 타결 소식을 듣기 원했던 시민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한진중공업 노사는 9일 오전 정리해고 해결을 위한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합의안에는 ▷합의서를 체결한 날로부터 1년 내에 정리해고자 94명 재취업 ▷정리해고자 1인당 생계비 2000만 원(1000만 원 일시금, 나머지는 세 차례 분할) 지급 ▷노사 쌍방 형사 고소·고발·진정 취하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번 합의안은 지난달 7일 국회가 내놓은 권고안을 토대로 줄다리기 협상 끝에 작성됐다.

노조는 합의안을 놓고 오후 4시부터 조합원 총회를 열었으며, 찬반투표를 거쳐 수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었다. 또 합의안이 가결되면 오후 5시30분께 이날로 고공농성 308일째를 맞은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포함, 4명의 농성자가 85호 크레인을 내려오기로 했었다.

이에 따라 일부 언론은 "협상이 사실상 타결됐다"고 보도했으며, 허남식 부산시장은 긴급회견을 준비하는 등 지역사회가 큰 기대감을 보였다.

그러나 조합원 총회가 열리자마자 경찰 병력이 한진중공업 안으로 투입되는 돌발상황이 발생하면서 총회가 무산됐다. 경찰은 오후 4시5분께 5개 중대, 300여 명의 인원을 한진중공업 동문과 85호 크레인 사이에 배치했다. 이를 눈치챈 정리해고자 등 조합원 100여 명은 총회를 중단하고 뛰쳐나와 경찰과 대치했다. 일부 흥분한 조합원은 경찰을 몸으로 밀치며 저항했다. 특히 노조는 돌발상황 당시 "사측이 공식 협상에서 김 지도위원이 농성을 풀면 노조가 신병을 인도해 정문 밖까지 나가기로 합의했다. 약속을 뒤집었다"며 "사측과 경찰이 사과하기 전까지 총회를 열지 않겠다"고 밝혀 합의가 취소되는 게 아니냐는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오전에만 해도 트위터를 통해 "300일 넘게 기다려 오셨는데 몇 시간만 더 두근두근 기다려 주세요"라며 들떴던 김 지도위원도 오후에 다시 "총회가 무산돼 오늘 내려가진 못합니다…느긋하게 기다릴 생각입니다"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다행히 정동영 의원 등 정치인과 노동계 인사들이 중재에 나서면서 조합원 총회는 10일 오후 2시에 재개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측과 경찰의 성급한 조치 탓에 한진중공업 사태가 또 한 번 위기를 맞을 뻔했다.

경찰은 이에 대해 "크레인 농성자 4명은 업무방해와 건조물 침입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영장 집행을 위한 합법적인 대응이었다"며 "사측이 영도조선소 시설물 보호를 요청하기도 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