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부산 사상구의회가 절전을 위해 청사 내 엘리베이터 운행을 중단한다는 안내문을 곳곳에 붙여놓고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 어린이·노인 외출 자제 분위기, 관공서 냉방·승강기 중지 불편
- 식당 냉장고 음식 상할까 걱정

16일 아침 출근 시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부산 해운대구 좌동 신시가지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됐다. 전날 대규모 정전사태로 승강기에 갇히는 사고가 속출하면서 승강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직장인들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직장인 정성훈(36) 씨는 "집이 10층인데 엘리베이터를 타기가 두려워 계단으로 걸어내려 왔다"면서 "아이들에게도 오늘 하루만큼은 외출을 자제하고 등·하교 때도 계단을 이용하라고 일러뒀다"고 말했다.

이날 부산지역은 낮 최고기온이 31.6도까지 올라가는 등 폭염이 계속된 가운데 시민들은 전날 발생한 사상 초유의 정전사태가 재연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행정안전부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국 모든 공공기관의 청사 냉방을 중지하고 4층 이하는 승강기의 운행을 금지시켰다. 이로 인해 민원으로 구청 등을 찾은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전날 정전으로 인한 신호등 이상으로 교통사고의 위험을 느낀 직장인들은 아예 차를 집에 두고 출근하기도 했다. 직장인 배모(37) 씨는 "어제 오후 업무 관계로 차를 운전해 해운대 쪽으로 갔는데 신호등이 고장나면서 차량들이 엉켜 큰 사고가 날 뻔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버스를 타고 출근했다"고 말했다.

한편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노인들의 외출이 눈에 띄게 줄었다. 3000세대 아파트 단지인 부산 동래구 사직동 S아파트 경로당에는 평소 30여 명의 노인들이 찾지만 이날은 고작 10여 명이 모습을 나타냈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전날 정전으로 엘리베이터가 멈춰 노인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보행이 다소 불편한 노인들은 외출을 자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 속에 음식물 관리에 비상이 걸린 음식점 주인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해운대구에서 갈비집을 운영하는 장모(56) 씨는 "고기의 경우 냉장고에서의 숙성이 맛을 좌우하는데, 잠시라도 정전이 돼 냉장고가 멈추면 큰일이 난다"면서 "정전 사태를 겪은 뒤 가게 문을 닫고 들어가는 것조차 두려워졌다"고 말했다.

이런 불안감을 반영하듯 이른바 '정전대비용 물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손전등, 양초 등 코너에 평소보다 많은 고객들이 몰리고 있다"면서 "이들 제품에 대한 판매가 증가할 경우 보유분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온라인 상에서는 시민들이 이번 정전 사태와 관련해 각종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중국 해커들에게 한국전력의 서버가 해킹당하면서 정전이 발생했다' '정부가 전기요금을 올리기 위해 고의로 정전 사태를 유발했다'는 등의 음모론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