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각오한 48시간의 항해였다.

6~7명의 선원이 타도 비좁을 길이 20m, 너비 4m 크기의 20t급 목선에는 8살 여자아이부터 칠순 노인까지 모두 21명이 조타실, 선실, 어획물을 담아 보관하는 어창에까지 옹기종기 타고 있었다.
[19일 오후 순종식씨 일가 등 탈북자 21명이 타고온 20t급 목선이 인천 해경부두에 정박해 있다.]

인천해양경찰서 119경비정(100t급·정장 김재만 경위)이 푸른 빛이 감도는 허름한 목선을 발견한 것은 지난 18일 오후 6시30분. 인천 덕적도 인근 울도 서방 17마일 해상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해상 경비를 펼치고 있을 때였다.

평소 중국어선들의 불법어로활동이 잦던 서해특정해역내 구역인지라 해양경찰관 10명, 전경 7명 등 경비정내 해경은 전 대원 상황배치 하에 K2소총 등으로 무장한 채 정체 불명의 목선에 서서히 접근했다. 그러자 해경 경비정을 향해 목선에서 “북에서 왔다. 남쪽으로 가고 싶다”는 선장 순룡범(46)씨의 외침이 선박 엔진음을 가르며 또렷이 들려왔다. 경비정과 목선을 조우시킨 해경은 조타실, 선실, 어창 등지에서 우르르 몰려 나온 탈북자 중 선장 순씨와 기관장 리경성(33)씨만을 목선에 남겨두고 나머지 인원을 경비정에 옮겨 태운 뒤 목선을 인천해경부두로 예인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타고 온 목선에는 일반적인 소형 어선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GPS(위성항법장치)가 설치돼 있는데다 가스버너, 압력밥솥 등 취사도구와 경유 650ℓ, 소금 8포대, 밀가루 국수 등이 발견된 것으로 미뤄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했음을 반증했다.

10명에 달하는 어린이 중 일부는 거친 바닷바람이 다소 부담이 됐는지 두툼한 겨울 외투를 두겹, 세겹씩 입고 있었고, 어른들도 오랜 항해로 지치고 피곤한 표정이 역력했다.

경비정장 김재만 경위가 “뭐 필요한 것 없느냐”고 묻자 이들은 먹을 것을 요구했고, 해경은 대원들의 야식으로 준비해놨던 라면 20여개를 끓여 이들에게 대접했다.

인천 옹진군 울도~덕적도~팔미도 앞바다 등을 거쳐 시속 7노트로 순항한 이 배에 타고 있던 탈북자들은 결국 19일 오전 4시 인천 해경부두에 도착, 취재진의 섬광같은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꿈에도 그리던 남쪽 땅을 밟았다.

지난 17일 오전 4시 평안북도 선천군 홍건도 포구를 떠난지 정확히 48시간만의 꿈같은 일이었다.

/ 손균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