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한국 상호관세(25%) 부과 시점인 8월 1일이 임박한 가운데 우리 정부가 미국 측에 수십조원 규모의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를 제안하면서 대미 관세 협상이 한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타결될지 주목된다.

특히 미국이 일본 등에 이어 유럽연합(EU)과도 무역 협상을 타결함에 따라 정부는 더욱 커진 압박감 속에서 남은 기간 대미 설득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농산물·방위비까지 패키지 제안

28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24, 25일(이하 현지시간)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 이틀 연속 통상협상을 벌인 뒤 본국과 소통하며 전략을 가다듬고 있다.

특히 김 장관은 25일 러트닉 장관의 뉴욕 자택까지 찾아가 수십조원 규모의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이 자리에서 한·미 양측은 서로의 요구와 입장을 꺼내놓고 하나하나 맞춰가면서 의견 차를 좁혀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김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스코틀랜드 방문 일정(25~29일)에 맞춰 유럽으로 향했다. 러트닉 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스콧 베센트 미 재무부 장관 등이 모두 트럼프 대통령 수행과 미·중 고위급 무역 협상을 위해 유럽으로 떠났는데, 대미 협상 불씨를 살리고 긍정적인 협상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유럽행을 결정한 것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오는 31일 미 워싱턴DC에서 베센트 장관과 1 대 1 통상협의를 진행하고, 조현 외무부 장관도 이번 주 미국을 찾아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면담하는 등 막판 총력전을 펼친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귀국한 뒤인 이달 30, 31일이 상호관세 발효 전 한미 간 마지막 협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우리 정부는 ▷조선·반도체·배터리 등 전략산업 협력 강화 ▷가스·원유 등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가스전 사업 참여 검토 등을 패키지로 묶어 미국 정부에 협상 카드로 제시하고 있다.

조선업의 경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한·미가 협력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어 이번 협상을 통해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도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마스가 프로젝트 제안도 이와 연관돼 있다. 반도체 산업 분야 투자·협력과 이차전지 산업 투자, 미국산 항공기 추가 구매 등도 협상 패키지에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민감한 소고기·쌀 등 농산물도 애초 ‘레드라인’으로 설정했으나 미국의 강력한 요구로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국내 피해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협의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방위비 증액 이슈를 함께 묶어 제시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2주 후 반도체 관세 발표”

정부의 이런 총력전은 상호관세 부과일이 임박한 상황에서 우리 측에 결코 유리하지 않은 국면이 전개되는 등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과 무관치 않다.

미국과 EU는 27일(현지시간) 무역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30%로 예고했던 EU에 대한 상호관세율을 15%로 낮춘 것이 골자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미국과의 협상 직후 “15% 관세율은 미국으로 수출되는 유럽산 자동차와 반도체 의약품을 포함한 대부분 분야에 적용된다”고 밝혔다. 앞서 일본도 지난주 미국과 무역 협상을 마무리했다. 이에 따라 대일본 상호관세율은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25%에서 15%로 낮아졌다.

미국 시장을 놓고 한국과 경쟁하는 일본·EU가 상호관세율을 낮추는 쪽으로 무역 협상을 타결하면서 우리 정부의 중압감도 훨씬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다음 달 1일 이전에 미국과 새로운 무역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거나, 합의에 이르더라도 관세율 등 무역환경에서 일본이나 EU보다 불리한 협상 결과를 떠안게 될 경우 한국은 수출 경쟁에서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은 반도체 관세도 예고했다. 러트닉 장관은 EU와 무역협상 타결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미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반도체 관세를 2주 후에 발표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미 무역확장법 232조는 특정 품목의 수입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관세 등 적절한 조치를 통해 수입을 제한할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다. 앞서 미 상무부는 지난 4월부터 반도체, 반도체 제조장비, 파생제품의 수입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기 위한 조사를 벌여왔다.

구체적인 반도체 관세율과 부과 품목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미 상무부가 조사 대상으로 삼은 품목이 모두 관세 대상이 될 경우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같은 국내 대기업뿐 아니라 반도체를 부품으로 완제품(세트)을 생산하는 전자 부품업계도 관세 영향권에 들 수 있다.

지난 4월 시작된 자동차(25%) 철강(50%) 등에 이어 반도체에까지 관세가 부과되면 사실상 국내 주력 산업 대부분이 피해를 입게 된다. 이석주 기자 serenom@kookje.co.kr·일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