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 심사 우대 대상인 ‘화이트(백색) 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이 제외되는 게 기정사실화되자 우리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넘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사실상 모든 국제기구를 활용해 전방위 외교전에 나선다. 이와 별도로 국내에서는 지역별 순회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가용 정책을 총동원해 기업 피해를 막기로 했다.

■ARF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 가능성

	아베규탄시민행동 주최로 지난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역사 왜곡, 경제 침략, 평화 위협 아베정권 규탄 2차 촛불문화제’에서 시민이 경제 보복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28일 일본의 ‘백색 국가 한국 제외’ 결정이 가시화된 만큼 WTO 제소와 외교적 해법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다음 달 2일 태국 방콕에서 개최되는 ARF에 참석한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도 포럼 일정을 소화하고자 현지에 갈 예정이어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만약 회담이 열리면 일본 정부가 지난 4일 대한국 수출 규제 조처를 단행한 이후 양국 외교장관의 첫 대면이 된다. 앞서 두 장관은 지난 26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처와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에 의견을 나눴다.

물론 회담이 성사된다고 양국의 갈등이 단번에 풀리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한국과 대화조차 거부해 온 일본 정부 태도에 변화가 생긴 것 아니냐는 관측과 함께 갈등 완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와 별도로 산업통상자원부는 30일까지 중국 정저우에서 진행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27차 협상을 통해서도 일본 수출 규제 조처의 문제점을 알린다. 이미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실장은 RCEP 개막 둘째 날이었던 지난 27일 일본 측 수석대표 4명과 한일 양자회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여 실장은 “일본의 수출 규제 조처는 국제무역 규범을 훼손하고 글로벌 가치사슬과 RCEP 역내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수출 규제 조처를 즉시 철회하고 한국을 백색 국가 명단에서 유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9일부터 20개 업종 대상 설명회

산업부는 WTO 제소도 본격적으로 준비한다. 이는 일본 정부가 ‘백색 국가 제외’를 강행하는 수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앞서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26일 “일본 정부가 이르면 다음 달 2일 각의에서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현재 최종 조율 중에 있다”고 보도했다. 각의는 한국의 국무회의에 해당한다.

개정안이 각의를 통과하면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이 서명하고 아베 신조 총리가 연서(서명)한 뒤 나루히토 일왕이 공포하는 절차를 거쳐 그 시점으로부터 21일 후 시행된다. 따라서 ‘백색 국가 한국 제외’가 실제로 단행되는 시점은 다음 달 하순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산업부는 WTO 일반 이사회와 미국을 무대로 펼친 1차 국제 여론전에서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조처와 관련해 궁색한 입장을 드러낸 데다, 미국 IT(정보기술) 관련 6개 단체와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등이 일본 조처에 우려를 표명한 만큼 이런 국제 여론을 바탕으로 WTO 제소를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일본이 자국의 수출 규제 조처가 안보 차원에서 이뤄진 수출 관리라고 강변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한국의 대화 제의에도 응하지 않는 일본의 옹색한 입장’이 확연히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산업부는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연다. 29일부터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20개 업종을 상대로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비한 업계 설명회를 개최한다. 지역별 순회 설명회도 차례로 연다. 산업부 관계자는 “(백색 국가 제외는) 사실상 한국의 주요 업종 대부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며 “일본 제도 변경에 대한 주요 내용과 기업이 준비해야 할 사항, 피해 발생에 따른 정부 지원책 등을 설명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태우 이석주 기자 sereno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