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의 '보복성' 규제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부지 제공을 섣불리 결정하지 못한 롯데그룹이 해당 계획을 그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을 사실상 확정짓고 이달 안에 이사회를 열어 관련 안건을 처리한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김정남 피살 사건 등 연이은 '북풍'으로 국가 안보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자, 중국 내 사업 차질 우려를 잠시 뒤로 하고 "정부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쪽으로 내부 의견을 모은 것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20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사드 보복으로 의심되는) 중국의 무역 규제로 현지 사업에 대한 피해 우려가 여전하지만 '안보 위기' 상황을 고려해 의사결정을 미루지 않을 방침"이라며 "이달 안에 최종 이사회를 열어 사드 문제를 매듭짓겠다"고 말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한국 기업으로서 정부 요청에 응할 것"이라며 경북 성주군에 있는 자사의 롯데스카이힐성주CC(성주골프장)를 정부에 제공하는 쪽으로 내부 결론이 내려졌음을 시사했다.

그간 롯데는 해당 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제공하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지난해 11월 국방부와 체결하고도 계약서에 사인하는 것을 놓고서는 고심을 거듭해 왔다. 한반도 사드 배치에 반발하는 중국 측의 보복성 규제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성주골프장을 소유한 롯데상사가 지난 3일 이사회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했으나 결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도 이 같은 우려 탓이다.

당시 롯데상사는 차기 이사회의 개최 일자도 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12일 북한이 '북극성 2형'을 발사한 데 이어 14일에는 김정남 피살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시간을 마냥 끌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하지만 롯데는 사드 부지 제공에 따른 중국발 후폭풍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현재진행형인 중국의 각종 규제가 지금보다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환구시보와 신화통신 등 중국 관영매체들은 롯데의 결정이 임박한 지난 19일 일제히 논평을 내고 "롯데그룹 경영진이 불장난을 하고 있다" "중국 내 롯데 사업이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노골적인 압박을 가했다. 이 때문에 롯데케미칼(-3.82%) 롯데제과(-3.34%) 롯데정밀화학(-1.11%) 롯데쇼핑(-1.05%) 롯데칠성(-0.80%) 등 롯데그룹 상장 계열사들의 주가는 이날 일제히 하락했다. 

 이석주 기자 sereno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