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항 부두 현주소

- 5개 터미널 중 4개 외국사 운영
- 유일 국내자본 한진터미널
- DP월드·PSA 매입의사 밝혀

# 정책조정 한계 직면

- 정부, BPA 민간사업 참여 반대
- 국가적 비상사태 수습에 한계
- 공운법 개정 자치권 부여돼야

지난해 8월 31일 세계 7위의 국적선사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전 세계 해역에서 운항 중이면 70여 척의 한진해운 선박들이 싣고 있던 컨테이너를 내리기 위해 부산 신항에 몰려들었다. 4선석에 불과한 3부두인 한진터미널에서 신속한 하역작업은 불가능했다. 늦게 온 선박들은 공해상에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선박에는 공컨테이너도 있었지만 긴급을 요하는 화물도 적지 않았다. 이웃 부두의 일부 선석은 비어있었다. 한쪽은 발을 동동 굴리고 있었지만 빈 선석이 많은 다른 쪽은 도움을 주지 않았다.

부산항만공사(BPA)가 조정을 해보려 했지만 힘이 달렸다. 신항에는 5개 터미널운영사가 있고, 운영주체가 모두 다르다. 이 중 4개가 외국자본이 장악하고 있다. 부산신항의 운영관리자인 BPA는 협조공문을 보내 긴급회의를 소집했지만 반응이 신통찮았다. 우여곡절 끝에 외국적 운영사의 도움은 받았지만 신항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부산신항 조정자 역할 필요

이런 사태는 BPA가 지분을 갖고 부두운영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 신항의 5개 터미널 중 민자부두는 2개, 정부가 출자한 3개 부두는 임대부두이다. 이 중 (주)한진이 대주주인 신항 3부두인 한진터미널(HJNC) 외에 4개사는 외국자본이 운영하고 있다.

신항 1부두의 운영사(PNIT)는 싱가포르의 글로벌 터미널운영사(GTO)인 PSA가 지분 60%로 경영권을 갖고 있다. 세계 1, 2위 선사인 머스크와 MSC의 모항 역할을 하는, 신항에서 규모가 가장 큰 2부두 운영사(PNC)는 아랍에미레이트의 GTO인 DP월드가 운영하고 있다.

4부두(PSA HPNT)는 PSA가 '40%+1'을 보유,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고, 2부두와 함께 민자부두인 5부두(BNCT)는 호주의 맥퀘리가 30%의 지분을 갖고 직접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의 터미널링크도 12%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한진해운의 모항 역할을 했던 신항 3부두인 한진터미널만 현재 유일하게 국내 자본이 경영권을 갖고 있다. 원래 한진해운이 '50%+1'주를 갖고 경영권을 행사했지만 자금난 때문에 (주)한진에 매각했고 나머지 지분은 국내 재무적 투자자인 펠리샤가 갖고 있다. 하지만 한진해운의 몰락으로 물동량이 평소의 3분의 1에도 못 미쳐 펠리샤는 투자금 회수를 위해 지분 매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외국자본인 DP월드와 PSA가 눈독을 들이고 있다. 특히 DP월드는 상당한 액수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매입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항만업계는 "만일 DP월드가 한진터미널을 인수할 경우 9개의 선석을 갖게 되고, 여기에 2년 뒤 PSA가 1, 4부두를 함께 운영하면 외국자본이 사실상 신항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5개 터미널 중 BPA는 5부두에서 9%의 지분만 갖고 있다. 운영과 관련해 영향력도 없고 그저 협조 요청 외에 달리 제재할 수단도 없다. 공공지분 참여 없이는 일시적 체선 해소, 물동량 증대 등 정책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터미널 운영권 지분 확보 산넘어 산

	마지막으로 남은 국내자본인 부산 신항 3부두 한진터미널에서 트렌스퍼크레인에 의해 컨테이너가 옮겨지고 있다.

BPA가 신항 터미널운영사의 지분을 확보해 부두 운영에 참여해야만 하지만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로 항만공사의 민간사업 참여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BPA는 지난 3월 현대상선이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내놓은 신항 4부두 운영사의 지분 '40%+1주'의 인수를 추진했지만 공기업의 시장 참여에 부정적인 기재부의 반대로 실패했다. 그 지분은 결국 PSA가 인수했다. PSA 는 신항 제1부두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신항 2부두의 2대 주주인 삼성물산의 지분 23.9%를 1대 주주인 DP월드가 우선매수권을 활용해 인수해 부두 운영권을 더욱 공고히 하는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항만업계 관계자는 "외국자본의 터미널운영사는 수익 중심의 단기적 성과에 치중해 부산항 전체의 효율성 증대를 위한 공공정책 추진에 걸림돌이 된다"며 "한진해운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국가적 비상상황에서 사태를 수습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동현 평택대(국제물류학과) 교수는 "부산 신항에서 외국자본의 터미널 운영의 장기화는 부산항의 경제적 공익적 가치를 결코 확보해주지 못하며, 현재 동북아 환적 중심항으로서의 도약을 가로막고 있는 구조적 비효율 상태를 심화시킬 것"이라며 "외국의 항만공사처럼 설립 취지에 맞게 자치권을 최대한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항발전협의회, 부산항을 사랑하는 시민모임, 부산경제살리기 시민연대 등 부산지역 시민단체들도 "부산항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BPA가 부두 운영에 직접 나설 수 있게 공기업 운영에 관한 법률을 하루빨리 개정해 하나 남은 한진터미널 지분이라도 인수할 수 있게 길을 틔워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