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25일 자율협약 신청 후
- 자금지원 중단 결정 때까지
- 업계 "산업 전반 붕괴 우려"
- 한진 살리기 요청했지만
- 파급력 간과하고 지원 묵살
- 컨트롤타워 없어 엇박자
- 플랜B 구체적 대안도 없어
국내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업계의 경고에도 금융논리에만 사로잡혀 '한진해운 자금지원 중단'을 결정한 정부와 채권단의 안이한 인식 탓에 국가 신뢰도 하락과 같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저평가)의 가속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해운업 시스템 전반에 대한 금융당국의 이해 부족과 정부 내 컨트롤타워 부재 등이 이번 사태를 유발한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 신뢰도 하락' 경고 무시
정부와 채권단은 유동성 위기에 빠진 한진해운이 지난 4월 25일 자율협약을 신청한 이후 자금지원 중단을 결정한 지난달 30일까지 무려 127일의 시간이 있었지만, 부처 간 의견 조율을 통한 '회사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신규 자금지원은 없다'는 원칙만을 강조하며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법정관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돌입이 해당 기업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정부가 간과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해운업계에서는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우려가 현실화되기 시작한 지난달에 각종 자료 등을 내고 "한진해운이 몰락하면 국내 해운업이 붕괴되는 것은 물론 국가 신뢰도가 내려갈 우려가 크다"고 경고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국적선사 구조조정의 영향 및 대응방안' 자료에서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부산항의 환적 물동량은 16.4%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선주협회도 "한진해운 청산 시 매출 소멸과 환적 화물 감소, 운임 폭등 등으로 매년 17조 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이후 해운산업 전반에 대한 대응시나리오를 제대로 만들어놓지 못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물류대란을 야기하고 국가 신뢰도를 무너뜨렸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진해운 선박의 입항이 거부되거나 가압류가 발생하면서 한진해운 선박에 화물을 맡긴 화주 입장에서는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고 무역 클레임이 발생하게 된다.
특히 한진해운의 법정관리행으로 피해를 본 미국 화주들과 항만서비스 업체들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언급돼 국제소송전으로 비화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국가적 네트워크 자산 손실
업계는 한진해운이 무너지면서 수십조 원의 국가적 네트워크 자산 손실을 보게 됐다고 우려하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40년간 쌓아온 국제적 네트워크를 한꺼번에 잃게 됐다"며 "장기적으로 해운동맹에서 퇴출당하면 과실은 고스란히 외국 경쟁선사들이 따먹을 것"이라고 밝혔다.
구조조정 이후 한진해운 화주들이 현대상선으로 옮길 것이라는 정부의 예측이 터무니없다는 뜻이다. 화주들은 단순 화물운송뿐만 아니라 선적부터 하역·지사이동까지 총체적인 서비스를 보고 거래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현대상선의 덩치를 키워 해운산업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해운전문가들은 "순진한 발상"이라며 일침을 가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지난 6월 머스크가 주도하는 세계 최대 해운동맹 2M(머스크·MSC)에 들어갔다. 머스크가 보유한 선박은 623척, MSC의 선박은 493척이다. 반면 현대상선의 컨테이너선은 60척에 불과하다. 머스크가 룰을 바꾸면 현대상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로 들어가면서 글로벌 해운 공룡인 머스크라인이 아시아 북미 노선에 대한 장악력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현대상선의 경영적자가 지속돼 유동성이 바닥날 경우, 현대상선의 지분을 헐값에 팔거나 자금을 지원해야 돼 머스크의 인수합병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한진해운 구조조정 일지
4월25일…채권단 자율협약 신청
5월 4일…채권단 자율협약 개시
13일…한진해운, 해외 해운업체 5곳과 제3 해운동맹 '디얼라이언스' 결성
8월 4일…자율협약 한달 연장
25일…한진그룹, 채권단에 추가 자구안 제출
30일…채권단, 신규지원 불가
9월 1일…법원, 법정관리 개시
이석주 정옥재 기자 serenom@kookj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