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코친에 있는 지렛대 원리를 이용한 중국식 그물.

- 인도항로 개척 바스쿠 다가마
- 성 프란치스 성당에 한때 매장

- 네덜란드 궁전엔 벽화 등 전시
- 지렛대 그물, 관광객 상대 시연

입국할 때 비자가 필요한 나라는 몇 개국이 안 되지만 인도도 그중 하나다. 실습선이 인도 뭄바이항에 입항하게 되면 도착 비자를 받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 비자가 없으면 상륙하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배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게 대리점으로부터의 소식이었다. 할 수 없이 말레이시아 말라카에서 하선해 항공편으로 인도에 들어가기로 했다.

	네덜란드 궁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밤늦게 코친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코친공항에 도착해 비자를 받는 데 두 시간 정도가 걸렸다. 코친은 14세기 중부 고아항과 북부 캄베이항과 더불어 해상 실크로드 중심항으로서 한때 명성을 날렸던 인도 서남부 항구도시다. 십자군 원정을 계기로 동서교역이 활발해지면서 후추 향료 면직물 견직물 등이 아라비아 상인에 의해 실크로드를 통해 지중해의 여러 도시로 흘러 들어갔다.

그런데 14세기 이래 오스만 튀르크가 실크로드 지역을 장악하자 유럽의 신흥제국은 인도로 직접 갈 수 있는 인도양 항로를 개척하려는 분위기였다. 1498년 바스쿠 다가마가 희망봉을 거쳐 인도양을 처음으로 횡단해 인도 캘리컷에 도착했다. 이로써 7세기 이후부터 15세기 말까지 오스만 튀르크의 이슬람 상인에 의해 독점됐던 동방무역의 주도권이 포르투갈 상인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다. 바스쿠 다가마는 다음 해 본국으로 귀국했다가 1502년 다시 15척의 대함대를 이끌고 인도에 갔을 때는 이슬람과 힌두 연합함대의 반격을 받았으나 이들을 격파하고 코친과 카나노르 등 각 지방에 상관을 설치해 인도 무역의 거점을 마련했다. 그 후 그는 코친에 살다가 1524년 사망해 코친 포트 구역에 있는 성 프란시스 성당 안에 매장됐다가 유해는 본국으로 운구됐다.

코친에서의 첫날(지난 10일)은 비자 때문에 시간을 많이 허비하는 바람에 호텔에 도착하니 새벽 5시가 넘었다. 일단 잠을 자고 난 후에 돌아볼 계획을 세웠다. 오전 11시쯤 일어나 레스토랑에 내려가 점심을 먹었다. 로비 프런트에서 시내 관광지도를 한 장을 얻어 호텔이 있는 윌링돈섬을 한번 돌아보기로 했다. 큰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곳곳에 폐가가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쓰레기통에는 온갖 쓰레기가 넘쳐나고 까마귀떼가 먹이를 뒤지고 있었다. 동네가 오래된 고목 속에 파묻혀 있는 것 같았다. 길가에 해사박물관이 있어 들어가 보니 우리나라 호미곶에 있는 등대박물관과 비슷했다. 오래된 등대의 램프와 각종 항해 장비가 전시돼 있었다.

둘째 날은 오토릭샤를 타고 구시가지인 포트코치로 향했다. 골동품점과 각종 향료 상점이 즐비했다. 네덜란드인 묘지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성 프란시스성당 안에는 바스쿠 다가마가 묻혔던 장소를 장방형으로 표시해 놓고, 벽에는 사진과 설명문을 붙여 놓고 있었다. 다음에 들린 곳은 네덜란드 궁전. 원래는 포르투갈인이 세웠으나 17세기 네덜란드인이 고쳐 지어 코치왕에게 헌정돼 코치왕 대관식이 이곳에서 열렸다고 한다. 내부에는 벽화와 크리슈나 신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섬 북쪽 끝에는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긴 막대기 끝에 그물을 장대 끝 네 모서리에 매고 반대편에는 무거운 돌을 달아서 램바나드 호수에서 흘러 내리는 강물 속에 그물을 담갔다가 들어 올리는 방식인데 고대 중국에서 전해 내려온 것이라고 한다. 요즘은 그물을 내리고 올리는 데도 장정 대여섯 명이 붙어야 하고 물고기도 별로 잡히지 않아 주로 관광객을 상대로 시연하면서 돈을 받았다.

마지막 날에는 코친에서 40㎞ 떨어진 백워터강으로 갔다. 이곳은 생태계 연구자가 많이 찾는 장소다. 강물에는 개구리밥 수초가 많이 떠 있고 강폭도 좁았다. 인근 민물 양식장에서는 새우, 게, 관상용 어류를 키우고 있었다. 코친을 보면서 지난날의 화려했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아직도 환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넓은 땅과 비교적 싼 임금 그리고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어서 우리나라 기업이 들어와 유럽과 중동 진출을 위한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청도 한국해양대 기관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