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을 '신앙'으로 여겨온 이동화 대표가 남극에 서 있다.

- 30년후 제한 풀려 남극개발 가능
- 극지전문가 양성 등 미리 준비를

- 부산에 극지체험관·박물관 서면
- 그동안 보관자료 모두 기증할 것

나는 어려서는 운동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땐 농구, 중학교 땐 핸드볼 선수로 활약했다. 청소년 시절에는 흥사단원이 되었고, 대학 시절에는 해양소년단 지도자로 활동했다. '슬기로 바다를 배우고, 용기로 바다를 개척하고, 충성으로 나라를 지킨다'. 해양소년단의 모토는 나에게 늘 방향타가 돼 주었다.

나는 무인도에서 낙동강 탐사에 이르기까지 우리 땅의 정기를 그대로 느끼며 살았다. 그래서 토목을 업으로 삼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 정기로 극지를 탐험했고 기지 건설에 참여하는 등 극지와의 끈질긴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어린 시절 역사를 배우면서 우리나라가 왜 늘 외침을 받았었는지 궁금했다. 우리나라 역사에 자존심이 상했고 내 일처럼 가슴이 아팠다. 속으로 나는 크면 훌륭한 사람이 되어 나라를 튼튼히 하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훗날 역사학자에게 물어보니 원인은 힘은 없으면서 파벌이 심했던 탓이 크단다. 우리나라는 역사에 기록된 일본의 외침만도 931번에 달한다고 한다. 기록이 누락된 외침과 다른 나라의 침략까지 다 따지면 3000번 정도의 외침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놀라고 말았다.

현재 우리는 침략이 아니라 순수한 노력으로 한반도 62배 크기의 남극에 두 번째 기지를 세웠다. 이 장보고기지는 단순히 과학연구 기지 역할뿐 아니라 얼어붙은 땅에서 후대에 물려줄 유산을 확보하는 역할도 한다. 역사상 처음으로 해양 진출을 통해 영토를 확보하는 일은 가슴 벅차지 않은가. 후손들이 자랑스러워할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니 이보다 값진 게 또 있겠는가 싶다.

남극 바다는 자원의 보고다. 전 인류의 기아를 해결할 만큼 많은 크릴이 있다. 메로, 오징어, 대구 같은 어족자원도 풍부하다. 제대로 연구하고, 제대로 활용한다면 미래의 식량자원으로 모자람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남극에는 많은 양의 철광석, 석탄, 석유, 크롬 같은 지하자원이 묻혀 있다. 남극조약 의정서는 남극 광물자원 개발을 오는 2048년까지 유보해 놓았다. 그 이후에는 남극조약 협의당사국이 의정서 재검토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 30년간은 남극의 광물자원 개발이 불가능하지만, 그 이후에는 전혀 다르게 전개될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상황에 맞게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선 곤란하다. 단 한 건의 오류도 치명적인 손실로 연결될 수 있다. 상황이 이리도 위중하지만 우리는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아직 극지생물, 인체냉동, 극지 국제법, 극지자원 등 극지와 관련된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들 분야는 미래의 이익이 워낙 커서 오랜 연구가 필요하다. 아마 수백 년간 연구를 쌓아야 할 분야가 아닌가 싶다. 물론 지금 시작해도 늦지는 않다. 당장 노력을 집중하면 얼마든지 전문가를 키울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련 대학 학과부터 만들어져야 한다. 극지와 관련된 분야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인력이 부족하다. 당연히 인력을 원하는 곳도 많다.

이제까지는 극지에 대한 나의 꿈을 실현하는 데 정성을 쏟았다. 앞으로는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해양과 극지를 통해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극지체험관, 극지박물관은 남극 활주로와 함께 마지막까지 실현해야 할 꿈이다. 부산이 극지와 해양연구의 메카가 되었을 때 그곳에 극지체험관·박물관을 짓고 싶다.

그동안 16번이나 이사를 했다. 그러면서도 남극 관련 자료는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다. 집안은 물론 회사 보관함에도 가득 차 있다. 남극관측탐험대의 깃발에서부터 내가 쓴 남극일기, 남극에서 찍은 필름, 엽서, 당시 태극기, 양말, 숟가락에 이르기까지 모든 극지 관련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 이런 유물을 사장하는 건 아깝지 않은가. 조속하게 박물관이 건립돼 희사할 날을 나는 학수고대한다.

장보고기지, 세종기지, 극지와 똑같은 체험관은 좋은 교육의 장이 될 것이다. 우리 국민이, 자라나는 어린 세대가 부산에서 남극을 보고 느낄 수 있다면 그만큼 발전이 앞당겨진다. 탐험관이나 캠핑시설도 갖춰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고 싶은 이유는 오직 하나. 극지나 해양으로 진출해 국위를 선양하는 훌륭한 과학자나 탐험가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자원이 없는 우리는 사람이 곧 국력 아니겠는가.

나는 슬하에 3남 1녀의 자식을 두었다. 장남의 이름을 '남극을 혁신하라'는 의미로 '남혁'이라 지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지만 대학생인 딸의 이름은 이새희라고 지었다. '이 나라의 새로운 희망'이란 뜻으로 첫 글자를 모아서 한문 없이 순수 한글로 이루어졌다. 결혼식은 여건이 허락한다면 독도나 남극에서 올리게 해주고 싶다.

태어날 후손도 남극과 관련된 일을 했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운영하는 토목회사의 이름도 '남극의 수도'란 의미의 '남경'이다. 나는 죽으면 뼛가루의 반은 고향에 묻고 나머지 반은 남극기지 주변에 뿌릴 생각이다. 영혼이나마 남극에서 애쓰는 우리 대원들의 수호신이 되고 싶은 까닭이다.

혹자는 뭐 그렇게까지 진지하냐고 하겠지만, 내 인생에서 남극은 하나의 신앙이다. 1985년 첫 탐사에서 남극에 서 있는 내 발 사진을 찍은 지 29년이 지났다. 그래도 남극을 향한 열정은 식지 않고 있다. 마지막 남은 인류의 보고, 대한민국엔 기회의 땅을 어찌 잊겠는가.

남경엔지니어링토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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