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화 대표가 월동대까지 1년 반의 남극 생활을 마치고 1989년 2월 부산에 돌아와 남극에 간 사이 태어난 아들을 안고 있다.

- 수년 지나 사업 겨우 눈 뜰 무렵
- IMF 외환위기 닥쳐 회사 휘청
- 술에 빠져 방황하다 다시 일어서
- 남극 장보고기지 건설 등에 참여

월동대까지 1년 반의 남극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1989년 2월 다시 고향 땅 부산을 밟았다. 집에 가니 어느새 갓 태어난 아들 녀석의 돌이 다가오고 있었다. 출산 때 옆에서 지켜주지 못한 데다 독수공방을 시켰으니 아내에게는 정말 면목이 없었다. 첫 남극 탐사 때와는 달리 오라는 데가 없어 완전한 실업자 신세였다. 그러다 보니 아내에겐 더욱 할 말이 없었다.

이동화 대표가 남극에서 남경엔지니어링토건 깃발을 잡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기가 죽은 것은 아니었다. 남극에서 충전된 자신감, 극한을 이겨낸 인내심에다 가슴 속에는 남극에서 가져온 기 덩어리가 살아 있었다. 실업자 신세를 면하고자 무엇이든 해야 하지만 나의 마초적인 기질이 발동됐다. 그래도 남자는 남자다운 사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 쇠, 흙과 관련된 일이 남자다울 것 같았다. 물과 관련된 일은 쉽지 않았다. 해운이나 수산은 큰 자금이 들어 불가능했다. 쇠와 관련한 사업도 당장 돈이 필요했다. 오로지 흙과 관련된 토목만이 유일하게 신용이 통했다. 땡전 한 닢 없는 나는 회사 이름을 남극의 수도라는 의미로 '남경(南京)'이라 짓고 무작정 토목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토목사업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었다. 토목을 해 본 경험이 없었기에 남 밑에 들어가 일을 배워야 했다. 토목면허가 없어 면허를 빌려 회사를 세웠다. 말이 회사지 재재도급 정도로 사실상 공사 현장의 반장에 불과했다. 악전고투 끝에 1990년 마침내 첫 공사를 수주했다.

수지를 맞추기 힘든 사업으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토목사업 바닥에서 5년을 버텼다. 그러자 서서히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10년 가까이 되자 사업에 눈을 떴다. 어떤 공사를 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은지, 수지를 맞출 수 있는지 감이 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공사대금으로 받았던 수십억 원어치의 어음이 줄줄이 부도가 났다. 당시 그 정도 액수는 정말 큰돈이었다. 받을 돈은 못 받고 갚아야 할 빚만 잔뜩 늘어갔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빚을 갚기 위해 내 집을 팔고 부모님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

그래도 턱없이 모자랐다. 빌린 돈 일부를 들고 채권자들을 찾아갔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얼마라도 받고 합의해달라고 요구했다. 합의한 돈 중 일부는 당장 주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나중에 벌어서 반드시 갚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IMF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던 때였다. 채권자들은 한 푼이라도 회수하기 위해 대부분 합의서를 써주었다.

빚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 가닥을 잡았지만 살길이 막막했다. 처가살이도 접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부산에서 제일 집값이 싼 만덕 산꼭대기에 살 집을 마련했다. 누추한 꼴은 죽어도 보이기 싫었다. 친구는 말할 것도 없고 부모님조차 집에 찾아오지 못하도록 했다.

사업 실패의 낙담은 무척 컸다. 억울함과 허무함에 매일 술을 마시며 몇 달째 방황했다. "이동화는 이제 끝났다." 친구들이 수군거렸다. 하지만 나는 다시 털고 일어났다. 일찌감치 채권자들과 합의한 탓에 그때까지 회사는 망하지 않고 있었다. 또 나만을 쳐다보고 있는 15명의 직원이 있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일어서야 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기업 운영을 하면서 남들처럼 어음을 발행하지 않은 것이었다. 만약 그때 어음 발행이 있었다면 회생이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공사대금은 어음으로 받아 타격이 컸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때 회사가 망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지금 나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우선 사상 최악의 불경기에 살아남는 게 중요했다. 친구와 거래처를 찾아다녔다. 그들은 대체로 나에 대해 두 가지로 반응했다. 얼마간의 돈을 손에 쥐여주거나 술과 밥을 사주려는 식이었다. 나는 그런 제의를 거절했다. 대신 작아도 좋으니 일거리를 달라고 호소했다.

몇 달이 지나면서 다시 일거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규모 자체는 보잘것없었다. 처음 토목 사업을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재재하도급이었다. 나는 그 일도 감사히 생각하며 열심히 난관을 헤쳐나갔다. 2~3년이 지나자 어느 정도 재기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어느 날 나는 직원들을 불러 모아 일일이 면담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같이 해준 고마움의 말과 격려금을 전달했다. 그동안 7~8개월씩 체불된 임금과 퇴직금도 모두 지불했다. 그리고는 고용구조를 연봉제로 바꾸었다.

돌이켜보면 IMF는 나에게 큰 스승이었다. 그때 키운 맷집은 사업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힘이 돼 주었다. 비록 수중에 돈은 없었다. 하지만 한 손에는 토목 경영의 노하우가, 또 다른 손에는 많은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있었다.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한 가지 일에 매진해야 살아남을 기회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위기를 겪은 뒤 나는 어음을 쓰지 않기로 했다. 가능하면 무차입 경영을 한다는 원칙은 지금까지 지켜가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 시기는 내 인생에서 최악의 위기였다. 그런 까닭에 잠시 남극과 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극과의 질긴 인연은 다시 이어졌다. 나중에 남경엔지니어링토건이 남극 세종기지 부두와 장보고기지 건설에 참여하게 됐다. 최근 장보고기지 옆에 활주로를 건설하자는 나의 주장 때문에 활주로 토목공사를 맡으려 한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도 했다.

남경엔지니어링토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