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토사섬으로 향하는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싱가포르 컨테이너 터미널. 북극항로가 열리면 부산은 치밀한 국가 전략 아래 조선·해양·선박금융의 허브로 성장한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국제신문DB

- 산유 없이 석유거래소 역할
- 지리상 이점 지닌 싱가포르
- 정부 차원 선박금융 투자로
- 세계적 금융 중심도시 성장

- 북극 녹으면 부산항이 허브
- 금융 결합한 리모델링 시급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번영을 이야기할 때 아시아-유럽항로가 지나가는 말라카해협에 위치한 지정학적 이점을 빼놓을 수 없다. 지금도 세계 2위 항만이지만 중국의 항만이 부상하기 전엔 독보적인 1위 항이었다. 싱가포르는 산유국도 아니고 대형 정유사도 없지만 선박 급유가 활성화되면서 전 세계 석유제품의 거래소 역할도 하고 있다. 선박 운항비의 35~40%를 차지하는 급유비가 싱가포르에 떨어지고, 국가 차원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선박금융 등이 활성화되면서 아시아 금융 중심지인 오늘의 싱가포르를 있게 했다(허윤수 부산발전연구원 연구위원)."

부산항은 저렴한 항만 비용, 우수한 서비스, 높은 인지도 등 여러 장점을 갖추고 있다. 북극항로의 활성화는 이런 부산항에 싱가포르가 가지고 있는 지정학적 이점까지 고스란히 옮겨주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부산의 미래전략을 짜면서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치밀한 국가 전략 아래 조선·해양·선박금융의 허브로 성장한 항만이 싱가포르이다.

■금융중심지 전략에 '날개'

	한창 공사 중인 부산문현금융단지.

부산이 금융중심지로 지정되면 수도권과 차별화된 해양·파생 금융허브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부산발전연구원(BDI)이 내놓은 것은 5년 전이다. 그러나 이후 부산이 금융중심지로 지정되고도 이 청사진은 여전히 '청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돈이 서울 여의도로 집중되는 '초일극화' 현상 때문이다. "돈이 서울에 모이는데 '변방'인 부산이 왜 또 하나의 금융중심지가 돼야 하나"라는 어깃장이 어깃장으로만 통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북극항로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활로가 된다. 서울에 몰리는 돈을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부산항을 중심으로 새로운 돈이 창출되기 때문이다.

부산을 금융중심지로 만들기 위한 핵심 논의인 선박금융공사 설립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추진 중인데 선박 건조 때 돈을 대는 선박금융으로 할지 해운 수산 어선 해양플랜트 등까지 확대하는 해양금융으로 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게다가 중앙의 기득권 집착도 여전하다. 선박 대출과 관련된 소속 기관의 기능 축소를 우려한 산업은행·수출입은행·정책금융공사·무역보험공사의 실무자들이 선박·해양금융공사 설립안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데다 조기 설립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총생산(GDP)의 60%를 항만 분야에서 창출하고 있는 싱가포르는 왜 부산에 선박·해양금융공사가 필요한지를 역설하는 근거가 된다. 싱가포르가 기존 항로의 중심항이란 입지 조건을 활용해 유럽의 로테르담에 비견되는 아시아 오일 허브항으로 우뚝선 데다 세계 선박금융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KRX) 이사장을 지낸 이정환 세계미래포럼 대표는 "부산항이 북극항로의 허브항이 되면 부대산업으로 벙커링(선박급유), 조선기자재 및 선용품 공급업, 수리조선업, 보험업 등도 특수가 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여기서 나오는 자금을 활용해 선박·해양금융의 중심지로 부산이 부상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선박·해양금융의 필요성에 대해 현장에서의 목소리는 더 높다. 양홍근 한국선주협회 상무도 "유럽의 은행에서 선박관련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은 30%가량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그 정도고 다른 은행은 비중이 1%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비 올 때 우산을 뺏어가듯' 시황이 나쁘면 빌려준 돈을 금방 회수한다. 일반 금융기관의 종사자들이 공장을 세우듯 투자를 하고 회수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선박 해운 등에 대해 개념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선박·해양에 특화된 금융기관의 설립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산 리모델링 기폭제로

부산항이 지금과 같은 단순한 컨테이너 중심 항만으로 머물러선 부산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주장은 최근 급속하게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종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항만정책연구실장은 지난달 해양수산부 부활기념 부산발전 세미나에서 "신항과 북항 간 물동량 유치 경쟁으로 하역료가 크게 하락해 컨테이너터미널은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며 신항과 북항의 역할 분담, 북극항로 개발 등을 통한 항만물류산업의 새 판을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길수 한국해양대 교수는 "북극항로의 상용화에 맞춰 부산항도 컨테이너 위주 항만이 아닌 조선, 선박 수리 및 금융서비스까지 제공하는 다목적 종합항만으로 가야 한다"고 제안했고, 김학소 해양수산개발원 원장은 "북극항로 상용화의 단계에 맞춰 부산항 항만 기능을 적극적으로 다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요컨대 어떤 식으로든 부산항의 성격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 유력한 대안이 항만과 금융이 결합된 싱가포르형 발전 전략이다. 사실 싱가포르뿐 아니라 부산보다 항만 순위가 처지는 독일의 함부르크, 그리스의 피레우스, 노르웨이의 오슬로 등도 항만도시이면서 금융도시이기도 하다. 세계 5위의 항만도시이면서 주변에 세계 1, 2, 3위 조선소가 포진하고 석유화학기지가 인접한 부산이 선박·해양금융도시란 소리를 못 듣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이 때문에 수도권에만 집중된 금융체계와 전략·의지 부족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양홍근 상무는 "싱가포르의 성공은 유럽 선박금융시장의 몰락을 성장 기회로 삼은 통찰력에다 자유무역 우대 및 국제기준에 적합한 해운체제, 조세 혜택 등 정부와 금융권의 적극적인 지원책에 크게 힘입었다"고 말했다.

이정환 대표는 "해운, 조선의 알파와 오메가는 금융이다. 선박 자체가 수천억 원에 달하기 때문에 금융과 결합될 때 가장 큰 시너지가 나온다. 북극항로는 항만과 금융이 결합된 도시로 부산을 리모델링할 절호의 기회를 줄 것"이라며 "이 기회를 놓치느냐 아니냐에 향후 부산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 "선박금융공사 先 설립, 後 기능확대를"

- 이기환 한국해양대 교수

"그동안 우리나라의 해양 및 조선산업의 위상에 비해 해운 및 선박금융이 미약했기 때문에 이번이 오히려 큰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

한국해양대 이기환(국제대 학장·사진) 교수는 유럽 선박금융시장이 어려운 만큼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선박금융공사 설립이 부산으로서는 세계 선박금융시장을 주도할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특히 북극항로가 열리면 부산에 새로운 시장이 제공되는 만큼 선박금융공사 설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지역 정치권에서는 새누리당 이진복(동래) 의원이 선박금융공사법을, 김정훈(남갑) 의원이 해양금융공사법 제정을 발의해 놓은 상태이다.

이 교수는 이와 관련 "선박금융이냐 해양금융이냐는 용어는 큰 의미가 없다"며 "우선 부산에 빨리 관련 공사를 설립해 기능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선박금융공사를 우선 설치한 뒤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실리적이라는 의미다.

그는 "세계 주요국의 선박금융기관을 보면 정부소유기관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면서 중앙 정부의 관심을 촉구했다. 그 예로 세계에서 선박금융제공 금액이 가장 큰 독일 HSH Nordbank는 지방정부 소유이고 덴마크의 Danish Ship Finance, 노르웨이의 DnB Nor은행도 정부가 주요 주주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이 교수는 "해양수산부에서 선박금융공사와는 별도로 보증기금을 만들려고 하는데 문제가 많다"며 "선박금융공사의 위상을 위해 공사 내에 보증 기능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순익 선임기자 marine@kookje.co.kr
신수건 기자 giant@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