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 벼랑 끝 전술에 맞불 의도
- 美 회의론 속 트럼프식 전술
- 실무논의 요청에 北 불응도 한몫
- 협상 성공 가능성 낮다고 판단
- 실패한 회담보다 ‘연기’ 선택?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에 공을 들였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돌연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 배경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 당시에도 ‘우리가 원하는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는다면’이라고 전제하면서 이미 한 차례 북미 회담 연기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그 전제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대한 일괄타결(all-in-one)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표면적으로는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을 회담 취소 이유로 삼았지만 그가 전제한 ‘조건’의 구체적인 부분에서 북미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정상회담 취소를 결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미국의 구체적인 조건에 응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상회담을 무리하게 추진했다가 성과를 내지 못하면 미 행정부 내부의 강한 후폭풍에 직면할 수 있다. 그보다는 준비기간을 충분히 두고 제대로 성과를 낼 회담을 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 서한문에서 북미 회담 취소를 언급하면서 ‘우리 서로를 위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또 북미 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연일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 관료들을 비판함으로써 북미 대화 진행에 대해 미국 내 부정적인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강하게 비난한 게 북미 회담 취소에 결정타가 된 것으로 보인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리비아 모델’과 선을 그으며 궤도 수정에 나섰지만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등 자국 내에서도 북미 정상회담 진행에 대한 부담이 컸던 상황이다.

여기에 북미 회담을 앞두고 싱가포르의 수송 및 이동 계획 등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이 최근 며칠간 북한에 대화를 요청했으나 이에 북한이 응답하지 않으면서 ‘실패한 협상’보다는 협상 연기를 선택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4일(현지시간) 북미 회담 전격 취소 직후 미 상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해 “미국은 북미 회담의 성공 가능성이 작다고 봤다. 실무 논의를 위한 미국 관리들의 거듭된 요청에 북한이 응답하지 않았다. 이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취소를 결정한 추가적인 이유”라고 밝혔다.

현 상황에서 북한과 미국 중 더 다급한 쪽은 북한이라고 판단한 것도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회담 취소 카드를 꺼내든 배경으로 해석된다. 북한의 전매특허로 여겨졌던 ‘벼랑 끝 전술’에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같은 수준의 ‘벼랑 끝 전술’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김태경 기자 tg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