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비아식 폐기 주장은 불순”
- 美 볼턴 겨냥해 으름장

북한이 16일로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회담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갑자기 통보한 데 이어 김계관(사진)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이날 담화를 통해 “우리를 구석으로 몰고 가 일방적인 핵 포기만을 강요하려 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대화에 더는 흥미를 가지지 않을 것이다. 다가오는 조미(북미) 수뇌회담에 응하겠는가를 재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이 같은 일방적인 선언이 남북관계에 끼칠 영향이 주목되는 가운데 청와대는 이날 북한 측의 의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북한 중앙통신이 이날 고위급회담 무기한 연기의 이유로 ‘맥스선더’ 훈련을 지목하면서도 “미국도 남조선 당국과 함께 벌이는 도발적인 군사적 소동 국면을 놓고 일정에 오른 조미(북미) 수뇌 상봉의 운명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밝힌 것을 보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과 기 싸움에 돌입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의 핵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의 제거와 핵무기의 해외 반출을 언급하며 북한을 압박했는데, 김 제1부상은 미국 고위관리들이 ‘선 핵포기, 후 보상’ ‘리비아식 핵포기방식’ ‘핵·미사일·생화학무기 완전 폐기’ 등을 언급하는 것을 두고 “대화 상대방을 심히 자극하는 망발”이라고 발끈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대국들에게 나라를 통째로 내맡기고 붕괴된 리비아나 이라크의 운명을 우리에게 강요하려는 심히 불순한 기도의 발현이다. 핵 개발의 초기 단계에 있던 리비아를 핵 보유국인 우리 국가와 대비하는 것 자체가 아둔하기 짝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 제1부상은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조미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성을 가지고 조미 수뇌회담에 나오면 우리의 응당한 호응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해 이번 담화가 미국 정부의 태도 전환을 촉구하려는 것임을 시사했다.

김 제1부상은 대미 협상가이자 대미라인의 대표적인 인물임에도 그동안 남북 정상회담과 두 차례의 북중 정상회담 때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지난 9일 평양에서 이뤄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만남 당시에도 배석하지 않았다. 이런 그가 대북 강경파인 미국 볼턴 백악관 보좌관에 대해 강경한 메시지를 보낸 데 대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측의 두뇌 싸움이 시작됐다는 시각이 많다.

김태경 기자 tg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