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박 헌재결정 전 물러나야"
- 국민의당 "조기 퇴진 입장 유보"
- 새누리 "보수결집 기회 엿보겠다"

- 정파간 주도권 싸고 미묘한 긴장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9일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정치권이 폭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 일파의 국정 농단사태가 불러온 탄핵정국으로 40일 이상 지속된 국정마비 상황이 탄핵소추로 종결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9일 더불어민주당 추미애(가운데)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탄핵안 표결을 마친 뒤 국회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이용우 기자

박 대통령의 퇴진과 관련된 1차 관문인 탄핵안 처리를 보는 여야 정당은 물론 각 당의 정파 간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특히 차기 권력다툼이 불가피해지면서 정국의 불확실성은 여전한 상황이다. 정국 해법을 위한 방법론은 물론 시기를 둘러싼 정치권 내부의 이해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권력 쟁취를 목표로 하는 정당과 정파가 일차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은 박 대통령의 최종 퇴진 시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박 대통령을 향해 헌법재판소 심판까지 기다리지 말고 자진 사퇴를 요구하는 반면 국민의당은 즉각 퇴진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은 헌법적인 절차인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차기 대선주자 1위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가 속한 민주당은 탄핵소추된 박 대통령이 헌재 결정 이전에 최대한 일찍 자진 사퇴하는 것이 촛불 민심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압박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조기에 자진 퇴진을 할 경우 그만큼 문 전 대표가 차기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 박 대통령이 헌재 결정을 통해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경우 최악의 상황에 놓일 수 있는 변수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도 있다.

9일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국민의당 탄핵 가결 국민보고대회에서 김동철(가운데)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용우 기자

국민의당이 박 대통령의 조기 퇴진에 대해 입장을 유보하는 것은 안철수 전 대표가 지지율을 끌어올릴 시간을 벌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의당은 다만, 탄핵소추 이후 촛불 민심이 박 대통령의 자진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 부담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최장 180일이 소요되는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면서 보수 결집의 기회를 엿보겠다는 심산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내년 1월 귀국해 보수 진영의 대선 후보로 옹립하면 '해볼 만하다'는 기대도 깔렸다.

정국 수습의 방법론도 정치권의 포스트 탄핵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민주당 주류인 친문(친문재인)계는 박 대통령 퇴진 이후 헌법에 따라 2개월 안에 대선을 치러 국정을 안정시키자는 입장이다.

국민의당은 이른바 '87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개헌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다만 헌재의 탄핵 결정 과정의 공조 유지 필요성 때문에 아직 개헌을 공개적으로 요구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민주당이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 교체를 요구하는 데 대해 유보적 입장을 보인 것과 마찬가지로 민주당의 조기 대선론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작아 야권의 내분도 예상된다. 민주당 내 비문(비문재인)계도 국민의당과 비슷한 입장이다.

새누리당 비주류는 아예 이날 개헌추진회의를 발족했다. 탄핵소추를 계기로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개헌하자는 것이다. 집권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한 선택이다. 이 때문에 개헌정국이 형성되면서 제정파가 개헌파와 호헌파로 나뉘는 정계개편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어 정국혼란과 긴장이 심화될 전망이다.

손균근 기자 kksho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