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오른쪽)가 김한길 공동대표와 함께 10일 오후 국회에서 '기초공천 결정' 입장표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야권이 기나긴 혼선 끝에 결국 10일 기초단위 무(無)공천 대선 공약을 철회함으로써 이번 6·4 지방선거는 여야 모두 정당공천을 하는 기존 규칙대로 치러지게 됐다.

　이에 따라 여당은 후보 공천을 하고 야당은 공천하지 않는 '2개의 룰 선거'라는초유의 사태를 피하면서 야당 일각에서 '기울었다'고 주장했던 지방선거 경기장은 양측에 똑같은 조건으로 다시 평행을 이뤘다.

　그러나 여야 모두 기초 무공천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됐다.

　특히 여권의 대선 공약 파기를 줄곧 비난해왔던 야권은 지방선거 목전에서 기존입장을 180도 바꿔 기초 공천을 하는 쪽으로 전격 '회군'함으로써 명분보다는 실리 를 택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는 '새 정치'를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온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 대표에게도 적지않은 정치적 타격을 줄 전망이다.

　아울러 안 대표가 이끌던 정파(옛 새정치연합)와 옛 민주당의 결합을 통한 신당창당의 외형적 명분이 '기초 무공천'이었다는 점에서 유권자들의 실망과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많다.

　또 이날 발표된 당원 투표-국민 여론조사 결과에서 공천 유지 여론이 높았다는 점은 현 지도부가 민심과 당심을 제대로 읽지 못해 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불러오면서 '안-김 투톱 체제'도 리더십의 위기를 맞게 됐다.

　반대로 신당 창당 이후 주류의 자리를 내주는가 했던 야당 내 친노(親盧·친노무현)계는 이번에도 기초공천으로 회군을 관철해내는 강력한 추진력과 응집력을 재확인시키면서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안 대표와 친노계 좌장으로 지난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은 공약 파기에 대해 일제히 사과의 뜻을 표했다.

　안 대표는 국회 집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국민께 사과드린다"면서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당원의 뜻은 일단 선거에서 이겨정부·여당을 견제할 힘부터 가지라는 명령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약속 파기' 비난에 시달려온 새누리당은 이처럼 야권이 명분상 수세에 몰리자 오랜만의 '정치적 호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총공세에 나섰다.

　황우여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새정치연합은 '무공천이라는 대국민약속을 지키는 것이 새 정치의 본질이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신당을 창당했다'고 말해 온 이상 이에 대한 대답을 국민에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대출 대변인은 안 대표의 사과 회견에 대해 "사과하면서 남 탓을 더 많이 하면 그 사과에 무슨 진정성이 담기겠나"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은 야당도 기초 무공천 대선 공약을 파기함으로써 홀로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는 정치적 부담을 어느 정도 벗게 됐다.

　그러나 새누리당도 대국민 약속을 깬 것 자체는 잘못인 만큼 야당의 기초공천 회군 이후 판세를 당분간 조용히 지켜보면서 선거 전략을 가다듬는 데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가 모두 정당 공천을 하기로 하면서 이번 지방선거 판세도 중대 분수령을 맞게 됐다.

　새정치연합은 일단 기초단위에도 소속 정당 후보를 내보낼 수 있게 됨으로써 실속을 챙겼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새 정치'라는 야당의 명분을 지지한 유권자들도 없지 않았던 만큼 아직 여야 각 당의 유불리를 예단하기는 이른 상황이다.

　새정치연합이 결국 이상보다 현실을 택했지만, 그렇다면 처음부터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여야 모두 대선에서 기초공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는지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무소속 후보였던 안 대표가 기초공천 폐지 공약을 내세우자 옛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차례로 공천 폐지를 약속한 바 있다.

　모든 정파가 표를 의식하는 바람에 지키기 어려운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공약 경쟁에서 발을 빼지 못하는 현상이 재연됐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일단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정당의 책임 정치와 존재 이유, 선거 투명성 확보 등을 부각한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여야 모두 기초 공천을 하기로 했지만, 차제에 근본적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기초의회의 경우 여러 부작용도 있고 광역의회가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는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아예 기초의회 자체가 폐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