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부산 사하구 다대동 한 주택에서 최식만 할아버지가 당뇨 합병증과 갑상샘암으로 병상에 누운 아내 서정남 할머니를 간호하고 있다. 홍영현 기자

황혼이혼이 늘어가는 요즘 장애가 있으면서도 11년째 아내를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80대 남편이 있다.

27일 부산 사하구 다대동 도개공아파트에서 만난 서정남(80) 할머니는 흐릿한 눈동자로 눈만 껌뻑이며 누워 있었다. 서 씨는 11년 전 당뇨 합병증으로 열 손가락을 모두 잃었고 갑상샘암을 치료하느라 기관지까지 들어내 말을 할 수 없다. 식사도 코에 연결한 관으로만 가능하다. 가래를 빼내기 위해 목에는 구멍을 뚫은 상태. 최식만(81) 할아버지는 이렇게라도 살아 있는 할머니에게 고맙다고 한다.

최 씨는 아내를 돌보느라 잠시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나한테는 이 사람밖에 없어. 이 사람이 영영 숨이 끊겨 다시는 못 볼까 봐 밤에 잠이 잘 안 와"라고 했다. 할머니 역시 할아버지가 눈 앞에서 잠시라도 없어지면 눈물을 글썽이며 슬퍼한다. 노부부는 눈으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눈다. 60년 가까이 함께 한 두 사람이 나눌 수 있는 대화다.

최 씨도 5년 전 방광암을 앓고 소변 봉투를 차 거동이 불편하다. 노부부를 4년째 돌봐온 요양보호사 이요안(41) 씨는 "할머니가 요양원에 있었으면 몇 년 전에 돌아가셨을 것"이라며 "할아버지의 헌신적인 보살핌 덕에 노부부가 같이 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1959년 25세였던 할아버지는 고운 얼굴에 서글서글한 인상의 24세의 할머니를 마을 어른 소개로 만나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젊은 시절 경남 김해에서 쌀 가게와 여관을 운영하는 부자였다.

하지만 시련이 찾아왔다. 할아버지는 한때 사상 공업지역에서 종업원 70~80명인 가죽공장을 경영하다 30년 전 부도를 당한 뒤 일용직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가난한 삶이었지만 서로 의지할 수 있어 행복했던 부부에게 불행이 닥쳤다. 당뇨를 앓았던 할머니는 몸을 잘 돌보지 못한 탓에 11년 전 손가락을 잃었다. 연이어 찾아온 갑상샘암은 꾀꼬리 같던 할머니의 성대까지 빼앗았다.

절박한 상황이지만 최 씨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우리 둘이 알콩달콩 잘 살자고 서로를 다독였지. 우리 인생에는 좋은 아내와 좋은 남편이 있다." 집안 곳곳에는 "항상 웃고 살아갈 것이다" 등의 글이 붙어 있다.

노부부는 동네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금실 좋은 부부다. 일을 못 해 월 70만 원의 기초생활보장수급비로 좁은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