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화엄사 홍, 백매화 가연(佳緣)의 가르침에 따라

정일근 시인·경남대 석좌교수

  • 정일근 시인·경남대 석좌교수
  •  |   입력 : 2023-03-21 19:45:13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하마 구례 화엄사 각황전 옆 홍매화에 장엄했던 꽃잎이 날리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지난 주말, 만개의 시간이 지났으니 그 무수한 꽃은 찾아온 곳에서 제자리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겠지요. 눈을 감으면 제 앞으로 화엄사 홍매화 나무 우뚝 솟아오릅니다. 돌아보면 바람에 날리는 고혹적인 향기가 와락 밀려옵니다. 이 나이를 살면서 꽃나무와 만난 최고의 가연(佳緣)이 3월의 화엄사에 있었습니다.

‘어제 하루는 화엄 경내에서 쉬었으나/꿈이 들끓어 노고단을 오르는 아침 길이 마냥/바위를 뚫는/천공 같다, 돌다리 두드리며 잠긴/山門(산문)을 밀치고 올라서면 저 천연한/수목 속에서도 안 보이는/하늘의 雲板(운판)을 힘겹게 미는 바람소리 들린다’. 화엄사 행을 준비하면서 저는 1993년 제7회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한 김명인 시인의 ‘화엄에 오르다’를 찾아 읽고 읽었습니다.

아마 이 시를 처음 만난 그때부터 ‘화엄(華嚴)’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도 잘 아시겠지만, 화엄은 ‘불법(佛法)의 광대무변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말’입니다. 왜 그리 화엄이란 말이 젊은 시인이었던 저에게 그리 좋았던지요. 화엄이란 말에서 제 살과 뼈를 활활 태우는 듯한 뜨거운 열기를 느꼈습니다.

화엄사 가는 길은 화엄으로 가는 길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동에서부터 섬진강 거슬러 오다가 지리산 남쪽 기슭에서 삼국시대 승려 연기가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 화엄사를 만납니다.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지요. 화엄사 홍매화를 찾아 나선 대중들과 가다 서기를 되풀이하다 화엄사 산문 앞에서 저 자신을 돌아보며 옷매무시를 단정히 합니다.

화엄사를 두고 홍매화만 이야기하는 것은 실례입니다. 이 나라 화엄 도량의 정수에 핀 매화나무는 두 그루가 있습니다. 하나는 각황전 옆 홍매화입니다. 이 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지요. 나무 높이가 9m에 이르니 가히 이 봄 많이 만났던 홍매화 중 으뜸입니다. 나무의 자태며 꽃의 색깔 또한 붉디붉습니다.

한학자인, 생의 도반인 최한선 시인은 그러한 붉음으로 홍매가 아니라 ‘화엄사 흑매(黑梅)’라고 이름합니다. 춥고 긴 겨울을 이기고 피우는 매화이기에 화사한 분홍은 홍(紅)이고, 무거운 홍은 흑으로 비유되나 봅니다. 그래서 화엄사에서 홍매는 검붉다는 흑매가 됩니다. 그 흑매가 피는 자리가 각황전 옆인데, 각황(覺皇)이 깨달음의 가장 높은 위치를 뜻하며 부처를 달리 이르는 말이니 저에게 이 나무는 각황전 부처를 모시는 협시보살로 읽힙니다.

화엄사가 숨겨둔 또 하나의 매화는 화엄사 밖, 원통전 뒤편에 서 있는 야매(野梅), 즉 들매인 백매화입니다. 이미 홍매의 장엄에 빠져버린 사람들은 놓치기 쉬운 장관이 그곳에 있습니다. 수령이 60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귀한 나무입니다. 화엄사는 이 봄 홍매화 백매화 두 그루의 만개로 화엄경을 설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화엄경의 원래 이름이 대방광불화엄경이고 화엄사를 일러 대화엄사라 부르는 이유가 그러하듯이 말입니다.

문화재청은 2007년부터 우리나라 4대 매화를 천연기념물로 정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순천 선암사 ‘선암매’ 장성 백암사 ‘고불매’ 강릉 오죽헌 ‘율곡매’와 더불어 구례 화엄사 ‘들매’가 그러합니다. 해마다 꽃을 피우는 이유를 쉽게 자연의 섭리라 말하지만, 어찌 그 섭리만으로 화엄사에 매화가 피는 까닭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화엄이란 석가부처가 깨달음에 이른 내용을 그대로 설법한 경문이며, 만행(萬行)과 만덕(萬德)을 닦아 장엄하게 한 것이니 화엄사 안과 밖의 두 그루 매화나무 역시 부처의 행과 덕이며 장엄한 가르침입니다. 생각이 그곳에 이르니 꽃나무 아래 2박 3일은 저에게 귀한 깨달음의 시간이었습니다. 화엄사에 다녀왔으니 꽃이 지고 잎이 나는 사이 우화등선(羽化登仙)은 아니지만, 법구경의 가르침인 ‘불견(不見) 불문(不聞) 불언(不言)’이언정 실천할 작정입니다. 단기 출가하듯이 작은 실천에 정진해야겠습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대, 아시아대학평가 76위…韓 국립대 1위
  2. 2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3. 3도시철 화명·수정역 사이 중간역 무산…용역비만 날렸다
  4. 4수의계약 vs 경쟁입찰…북항 돔 부지매입 공방
  5. 5동남아 선정 미식여행지 부산 ‘금정산+온천’ 첫선
  6. 6‘블루 웨이브’ 환호한 美증시, 퍼렇게 질린 韓증시(종합)
  7. 7시민공원서 버스킹 즐긴다…전용 공간 추진
  8. 8[기고] 부산 관광 다음 키워드는 ‘건축관광’
  9. 9부산으로 이주하고, 먼 여행 떠나고…두 작가 그림이 달라졌다
  10. 10금정구 제2체육센터, 중투심서 또 고배
  1. 1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2. 2홍익표 정무수석 사의 표명…후임에 최인호 HUG 사장 거론
  3. 3김민석, 신천지 논란에 “죄송…조사결과 공개해도 문제”
  4. 4청와대 정무수석에 최인호 HUG 사장 지명
  5. 5청해부대 임무, 호르무즈 650㎞ 앞까지 확대…해상초계기도 투입(종합)
  6. 6회생인가 촉구 시민 목소리 1차분 6일 법원 제출
  7. 7[속보] 이 대통령 지지율 소폭 반등한 41%…민주36%·국힘 28%
  8. 8이 대통령, 법무장관 후보자에 이용철 지명…국세청장엔 안덕수
  9. 9김민석, 신천지 논란 재차 사과…“상처 입은 모든 분께 죄송”
  10. 10'조작기소 특검법' 오늘 與 주도 국회 본회의 처리 전망
  1. 1동남아 선정 미식여행지 부산 ‘금정산+온천’ 첫선
  2. 2‘블루 웨이브’ 환호한 美증시, 퍼렇게 질린 韓증시(종합)
  3. 3국내양식 향어 20여년간 간흡충 감염 ‘0’
  4. 4부산 외국인 관광객 400만시대 성큼... 카드소비 1조 돌파
  5. 5비에 화약 젖을라 손길 분주…400m 대형 불꽃 ‘카운트다운’
  6. 6팔란티어 AI와 함께 만든다…부산 신발업체 창신 ‘혁신 점프’
  7. 7비수도권 미분양 적체…LH 매입 신청 86% 탈락
  8. 82005 APEC 이벤트서 대표축제로…100만 인파관리 ‘근육’ 키웠다
  9. 9수능날 증시 10시 개장…애프터마켓 오후 5~8시
  10. 10한 달 새 금융사 37곳 47만 건 해킹…털린 돈도 10억
  1. 1부산대, 아시아대학평가 76위…韓 국립대 1위
  2. 2도시철 화명·수정역 사이 중간역 무산…용역비만 날렸다
  3. 3수의계약 vs 경쟁입찰…북항 돔 부지매입 공방
  4. 4시민공원서 버스킹 즐긴다…전용 공간 추진
  5. 5금정구 제2체육센터, 중투심서 또 고배
  6. 6농어촌 기본소득 공모 탈락 거창군, 자체 조례 제정해 ‘거창형 기본소득’ 추진
  7. 7[속보]혼자걷던 여성 5차례나 범죄대상 물색, 성폭행 혐의 30대 男 징역 4년 선고
  8. 8신비로운 심해로 초대합니다 해운대빛축제
  9. 9왼쪽 팔·다리 못 써 휠체어 의존…홀로 병마와 싸우는 60대
  10. 10황령산 봉수대 영문 안내판 설치키로
  1. 1승부는 원점…‘홈런 공장’ 대구서 거포들의 전쟁
  2. 2태권도, 北 전통무술로 각인될라
  3. 3페이즈 신들린 블로킹 9개…읏맨, 시작부터 웃었다
  4. 4거인 4인방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첫 우승 이끈다…한동희·최준용 중책
  5. 5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6. 6코르다, LPGA 올해의 선수상 조기 확정
  7. 7동의대 미식축구부 타이거볼 4강 진출
  8. 8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9. 9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10. 10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