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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9> 기장 철마면 고촌리 옻칠고배

붉게 물든 흑색 잔 … 복천동 고분군 지배자의 힘 상징

  • 정철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  |   입력 : 2022-04-24 19:14:04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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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금(金)제품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4세기부터다. 그렇다면 금이 사용되기 이전에 귀중했던 물건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옻칠제품일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옻칠잔 하나가 청동잔 열 개와 견준다’는 기록이 있다.
부산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 유적 출토 옻칠고배와 옻칠고배 복원품. 부산박물관 제공
옻칠은 고려~조선시대에도 사용되었는데, 특히 조선시대에는 왕실을 상징하는 붉은색 옻칠을 사용해 물건을 만들었다. 이렇게 고대뿐만 아니라 조선 왕실에서도 귀중하게 사용되었던 칠제품이 부산지역에서 다량으로 확인된 지역이 있다. 바로 기장이다.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 인근에서는 2004년부터 3차례의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고촌리 유적은 저습지 유적이라 상태가 좋은 목제품이 다수 확인되었는데, 출토된 목제품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유물은 옻칠제품이다.

옻칠은 본래 옻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을 의미한다. 물건 표면에 옻칠을 하면 얇은 고체 막이 형성되는데, 이 막은 광택과 윤기를 내며 물과 열, 부패로부터 제품을 보호해준다. 또한 옻액은 접착 능력이 뛰어나 이를 이용해 파손된 칼집이나 항아리 등 여러 물건에 접착제로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옻칠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다. 우선 옻나무 한 그루에서 1년간 채취되는 옻의 양은 80~150g 정도로 매우 귀하다. 또한 불순물 정제, 안료 배합, 도장 등 제작 과정이 복잡하다. 옻 중독을 이겨내고 작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옻나무는 단목으로만 확인되는 경우가 많아 동시에 재배하기 힘들고, 옻액의 특성상 운반과 장기 보관도 까다롭다. 고촌리 유적에서는 옻액을 끓인 것으로 추정되는 소성(燒成) 유구 18기가 확인됐고 옻액을 담은 용기도 출토됐다. 옻칠을 취급할 수 있는 공인집단이 살았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고촌 마을 사람들은 이 고급스러운 제품을 당대(3세기 후반~4세기) 부산지역에서 가장 힘이 센 복천동 고분군 집단에 공급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고촌리 유적에서 출토된 옻칠고배는 일본에서 그 형태와 외면의 칠 문양까지 거의 흡사한 것이 출토되는 사례가 있어 대외 교류도 활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옻칠은 채취·제작 과정이 복잡하며, 공이 많이 들어가는 제품이었다.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만큼 아름다웠다. 장인정신이 녹아있는 이 제품은 당대 가장 귀중한 물건이지 않았을까. 기장에서 생산된 이 옻칠제품은 복천동 고분군을 만든 가야 지배자 집단의 힘을 나타내는 상징적 유물이 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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