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달력이 사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천문의 질서는 2021년과 2022년을 떠나보내고 맞이하기 위해 바쁜 시간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코로나19 병란’ 2년 차에서 3년 차로 넘어가기 직전입니다.

1, 2차 백신 접종에 부스터 샷까지 맞았지만, 세모의 거리에 나서기가 무섭습니다. 그래서 저의 요즘 ‘정중동’은 겨울 숲으로 가 겨울나무들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겨울 숲에는 나뭇잎을 모두 뿌리로 돌려보낸 빈손의 나무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가진 것 다 버리고도 의연한 나무는 바람이 불 때마다 가지를 흔들며 위대한 시를 들려줍니다.

겨울 숲에 와서 기도하는 ‘12월’을 봅니다. 12월의 ‘1’은 절대자입니다. ‘2’는 그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든 것입니다. 그 순례는 11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1월이 직립한 나무들을 데리고 와 겨울 숲을 만들었습니다.

날이 추워지고 있습니다. 오래지 않아 사람의 간난(艱難)한 겨우살이 또한 점점 추워질 것입니다. 이 계절 동안거에 든 산사 수좌나 빈손 빈 몸의 겨울나무나 같은 색입니다.

인연인 꽃과 잎, 열매를 모두 다 떠나보내고 침묵 선정(禪定)에 든 나무 곁에 서보길 권합니다. 겨울나무는 겨울 산사에서 면벽하며 동안거에 든 수좌(首座)를 닮았습니다. 그래서 겨울나무의 색은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튼 침묵의 색깔입니다. 그 침묵의 무게가 제 마음 바닥까지 내려앉습니다. 말로써 찾아갈 수 없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침묵 안에, 나무가 가르쳐주는 피안(彼岸)이 있습니다.

나무의 작별은 한해마다 되풀이하는 일입니다. 바로보기만 하는 저에게는 나무의 침묵이 해마다 더욱 아프게 느껴집니다. 이때쯤 북쪽에서 불기 시작하는 된바람은 나무를 연주하는 하늘의 차가운 손이 됩니다. 윙, 윙, 나무가 울면 바람이 따라 웁니다. 마침내 큰 산이 우는 저녁이 오면 외로운 사람들은 나무를 찾아가는 바람이 됩니다.

불가의 진언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은 ‘아미타불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라는 사람의 염원입니다. 아미타불은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불법을 설하는 부처입니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지만 죽어서는 극락에 가겠다는 가난하고 춥고 배고픈 민초의 꿈이 그 진언에 담겨있습니다.

현실은 사람보다 나무가 극락 가기는 쉬울 것입니다. 나무의 일생은 자신을 몽땅 다 내주는 보리살타의 공양입니다. 나무는 배부른 사람이 오체투지로 닿을 수 없는 거룩한 부처의 시간을 찾아가는 수행법을 알고 있습니다.

이유를 말하라면 ‘나무아미타불’에서 ‘나무’는 돌아가고 싶다는 범어(梵語)라는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돌아가고 싶다는 나무는 ‘南無’(남무)라 쓰고 ‘나무’라 읽습니다, 부처가 보리수나무 아래, 56억7000만 년 뒤에 올 미래불인 미륵은 용화수나무 아래 앉아 깨달음 얻습니다. 나무 아래에서 성불은, 불가의 가르침이 나무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나무 아래 결가부좌로 앉거나 나무와 같이 당당하게 서보세요. 나무가 노래해주는 시가 있어, 그 시를 두 귀로 듣는다면 나무와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깨달음이 얻을 것입니다. 발이 없는 나무가 걸어가는 곳, 그곳이 아미타불의 나라일 수도 있고, 우리가 닿고 싶은 행복의 나라라고 믿습니다.

겨울나무에서 배워야 합니다. 나무는 위대한 인문 경전이며 철학 설법입니다. 나무가 가르침이라면 나무가 모여 만드는 겨울 숲은 살아있는 위대한 도량입니다. 이 세모에 나무에서 배우고 숲에서 깨닫고 싶습니다. 겨울이 혹독할수록 나무와 함께한다면 다음 해로 이어지는 이 병란에도 자신감이 생길 것입니다. 좀 더 멀리 보며 새잎 피우는 희망찬 봄이 빠르게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 다 함께 나무의 노래를 듣고 나무의 노래를 부릅시다. 나무는 가르쳐주고 데려다줄 것입니다. 새해 임인(壬寅)년 우리가 꿈꾸고 원하는 그 나라로.

시인·경남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