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추격을 받던 한국 조선업계가 확실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코로나 등으로 혹독한 수주 가뭄을 겪었지만 하반기 들어 LNG 추진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에 대한 수주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 조선업계의 이러한 낭보는 지난해 HMM으로부터 시작된 컨테이너선 초대형화와 세계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환경 규제에서 기인했다.
국내 빅3 조선소는 환경규제를 기회로 암모니아·수소추진선 등 미래 친환경 기술을 확보해 중국 일본과 ‘초격차’를 벌린다는 계획이다. 한편으로 환경규제는 해운업계에는 위기다. 특히 앞으로 본격적으로 시행될 탈탄소 규제는 해운업계에 상당한 도전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지금껏 신조선에만 적용되던 탈탄소 규제는 현존선까지 확대되어 시행을 곧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탈탄소 규제는 2018년 국제해사기구에서 온실가스 배출 저감 전략(GHG Strategy)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2050년까지 선박 운송업무 당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의미하는 탄소집약도를 2008년 대비 2030년까지 40%, 2050년까지 70%까지 개선하고, 국제항해에 종사하는 선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 총량은 2008년 대비 2050년까지 50% 이상 저감하는 목표를 담고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단기적인 조치로 2023년부터 현존선에 적용될 기술적 규제인 에너지효율지수(EEXI)와 운항적 조치인 탄소집약도(CII)가 시행될 예정이다.
해양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 외항운송 사업에 등록된 선박 약 880척 중 85%에 해당하는 약 750척이 EEXI 규정을 만족하지 못할 것으로 분석된다. EEXI 규정을 만족하지 못하는 현존선은 엔진의 출력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선속을 낮추거나, 에너지 저감장치를 탑재하여 낮은 출력으로 동일한 속도를 유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설령 EEXI를 만족했다 하더라도 선사는 운항 조치인 CII를 추가로 고려해야 한다. CII는 운항하는 선박의 탄소 배출 효율을 기준하여 선박별로 등급을 매기는 조치로, 낮은 등급을 받을 경우 화주로부터 용선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특정 등급(3년 연속 D 또는 단일연도 E)에서는 시정 조치 계획을 수립해 기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해운업계의 명운을 가름할 정도의 중요한 이 두 가지 규제 시행은 불과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각 선사들은 탈탄소 규제 대응을 위해 다양한 기술적 대응 방안과 친환경 연료 선택의 갈림길에서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선사 입장에서는 향후 어떤 미래연료가 주종이 될지, 적용 기준이 어떻게 변화될지 등 불확실성으로 인해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선사들의 최적 대응방안 마련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각 산업 간 전략적인 공동대응이 필요하며 이를 뒷받침해 줄 촘촘한 탈탄소 전략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이에 산업 간 네트워크를 고도화하고, 각 기술 정보를 모아 다양한 대응방안이 논의될 수 있도록 협력 생태계를 단단하게 구성하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이미 활동하고 있는 해양산업통합클러스터(MacNet) 등과 같은 해사산업 간 공동 협의체를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논의된 대응방안들을 토대로 정부 및 해사업계가 국제해사기구 해양환경보호위원회(IMO MEPC), 국제해사연구위원회(IMRB) 등 탈탄소 규제가 논의되는 국제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규제의 불확실성을 해소해 나가야 하며, 장기적으로 우리 해사업계가 탈탄소화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도록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대응을 뒷받침해 줄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해사산업계 공동의 탈탄소 전략 수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선급은 각 보유선박이 EEXI와 CII에 총족하는지 사전에 평가하고 준비할 수 있는 웹기반의 EEXI/CII 계산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선사들의 대응전략 수립에 도움을 주고 있다. 선사들은 이 사전 평가 결과값을 통해 얼마만큼의 엔진출력을 제한할지, 얼마만큼의 선속 감소가 필요할지 등을 사전에 검토하고 이것이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항을 평가함으로써 추가 에너지효율 개선 조치가 필요한지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이번 탈탄소 규제는 그간의 규제와는 다르게 장기간에 걸쳐 파급력을 발휘하며 대응 난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산학연관 간 전략적 공동대응을 위한 협업 시스템을 구축하고, 탈탄소 규제 대비 전략 마련을 위 한 실질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선급 경영기획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