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다”는 광고가 한때 유행했다. 1988년에 발표된 모 전자회사 제품 광고였으니 벌써 30년도 더 지났다. 현시대 눈으로 보면 지나치게 여성을 비하한 시대착오적인 광고로 지탄 받을 만도 하다. 그런데 이런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여전한 곳이 있다. 바로 북한이다.

지난 12일 폐회된 북한의 8차 당대회는 새해 벽두부터 한반도를 뜨겁게 달군다. 김정은이 9시간에 걸쳐 진행했다는 총화보고서에는 “남조선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가까운 시일 안에 북남관계가 다시 ３년 전 봄날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했다.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라는 말을 굳이 풀이하면 남북관계는 ‘남한하기 나름’이라는 말로 들린다. 그런데 북한이 요구한 조건은 “첨단군사장비 반입과 한미합동 군사훈련 중지” 등이다. 우리로서는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이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가 제안한 방역협력, 개별관광 등은 ‘비본질적인 문제’라고 일축했다.

이번 8차 당대회에서는 무엇보다 핵무력 완성과 국방력 강화를 당규약으로 천명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북한에서 헌법보다 상위인 노동당 규약 서문에 국방력 강화 내용을 새로 담았다. 특히 핵이라는 단어를 36번이나 언급하면서 핵추진 잠수함과 전술핵 무기 개발도 지속할 것임을 강조했다. ‘통일 과업’ 달성을 위해 “강력한 국방력으로 군사적 위협을 제압한다”는 문구도 눈길을 끈다. 김정은이 경제 실패를 인정하는 듯한 뉘앙스를 보였지만 동시에 핵무력 완성이라는 성과를 선전하면서 최고지도자로서의 업적을 과시했다. 또한 김정은을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하면서 김일성-김정일과 같은 반열에 올리는 자신감도 보였다. 이를 두고 ‘정치적 사변’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이처럼 북한은 1인 독재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국방력 강화로 통일을 운운하는데 우리의 대처는 너무나 안일하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언급은커녕 비대면 회의라는 생뚱맞은 제안을 내걸었다. 북한은 지금 당장 교류협력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는데, 여전히 ‘나홀로 협력’을 외치고 있다. 심지어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김정은 서울 답방설까지 거론한다.

3년 전 평화의 봄이 온다며 거짓 평화 쇼를 한 대가는 혹독했다. 핵무기 개발,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공무원 피격 등 북한 정권의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북한이 말하는 3년 전 봄과 올해 봄은 전혀 다른 성격이다. 2021년의 봄은 서울과 부산에서 재보궐 선거를 치르는 시기다. 성비위 문제로 시정을 파탄 내고 나라 전체를 위태롭게 한 상황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대한민국 양대 도시의 수장을 선출하는 이번 선거는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늠할 중요한 선택이다.

부산은 6·25전쟁 이후 대한민국 경제 재건의 든든한 기둥이었다. 만약 부산이 최후의 보루로 남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없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 아지매들의 억척스러운 손길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을 일구던 우리네 아버지들의 거친 손마디가 바로 오늘의 우리가 되었다. 그런 부산이 다시 한번 위기와 기회를 맞고 있다.

북한이 8차 당대회에서 국방력 강화와 핵무력을 천명한 가운데 미국 바이든 신행정부 출범 등 동북아 정세 변화가 예상된다. 코로나 19로 고통받고 서민경제가 위축되면서 ‘이대로는 더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한탄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대한민국 제2의 수도인 부산을 이끌 지도자는 냉엄한 남북관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선거에 이용하기 위한 장밋빛 희망만을 제시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항만도시로서 부산 만이 가진 장점과 매력을 북한 지역과 연계하는 실현 가능한 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국가 대계를 보는 넓은 시야와 함께 코로나 19로 침체한 지역경제를 살리는 인물이어야 한다. 낡은 시대의 잔재가 아닌 글로벌시장을 개척하고 남북관계를 적절히 활용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조할 수 있는 지도자 말이다. 시민의 마음을 보듬으며 펄떡대는 자갈치시장의 싱싱한 고등어처럼 활기찬 지도자면 더욱 좋겠다. 그런 지도자는 바로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부산시는 결국 우리하기 나름이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