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골을 전공하다 보면 “꿈에 나타나지 않느냐” “무섭지 않은지”등의 질문부터 전문적인 궁금증에 대한 것까지 다양한 질문을 받는다. 늘 나의 대답은 같지만, 특히 “어떤 인골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면 “저에겐 어느 하나 기억에 남지 않는 인골은 없습니다”이다. 정말 그렇다. 남아 있는 인골의 상태가 좋든 나쁘든 모든 인골은 나름의 의미가 있고 들려주는 이야기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조금은 다른 이미지로 기억되는 인골이 있다. 보통은 인골 대부분이 옛사람의 무덤에서 나오는데, 이는 본래 죽은 사람을 묻는 것이 무덤의 용도인 만큼, 당연한 이야기일 것 같지만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수많은 인골이 너무도 다양한 사연을 들려주며 나온 발굴이 있었으니, 바로 지금의 부산 동래구 도시철도 4호선 수안역 자리에서 발굴되어 나온 동래읍성의 인골들이다(국제신문 2006년 1월 13일 자)

2006년부터 2007년까지 나온 인골은 모두 100여 개체에 달하여 그 수도 놀랄 만하지만, 인골이 정상적으로 묻힌 것이 아니라 이른바 해자라는 구덩이에 내던져진 형태로 발견되었다는 점이 더 충격을 주었다. 동래의 번화한 길거리 중심에서 이뤄진 인골 조사는 나에게도 단연 새로운 경험이었다. 처음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갈 때는 우연히 발견된 한두 개체이거니 생각했고, 어쩌면 읍성과는 관련 없는 시기의 인골일 수 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도착해 보니 상황은 그게 아니었다.

해자의 목책 사이사이로 인골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인골이 한 장소에서 발견될 줄은 짐작조차 못했다. 목책과 진흙이 혼재하는 속에 정말 오랜 세월을 두고 기다리다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듯한 느낌이었다. 조선 시대의 그림 ‘동래부사순절도’에는 사실 해자가 그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발굴에서는 분명 해자가 확인됐다. 그 말인즉 순절도를 그리기 이전에 해자가 메워졌다는 것인데, 해자에 방치된 유해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 그대로 메워졌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다시 말해 동래성을 점령한 왜군은 성안에서 저항한 사람들을 무참하게 처형했을 것이다. 또한 전투 과정에서 죽은 우리 조상들의 시체도 성 안팎으로 즐비했을 것이다. 이 모든 희생자는 전투가 끝난 뒤 물이 고여 있는 해자 속으로 던져졌을 것이며 거기에는 조선군의 무기도 함께 버려졌을 것이다. 더욱이 해자에서 발견된 인골은 모두 머리와 팔, 다리가 흩어져 있어 해자를 바로 메우지 않고 일정 기간 방치한 것으로 파악됐는데, 짐작건대 그러한 왜군의 잔인함이 전국에 알려져 저항할 의욕조차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묻힌 인골은 성벽과 목책, 뻘층 덕분에 썩거나 부서지지 않고, 오랜 세월을 지나, 당시 처참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해준 것이다. 턱 부분과 등을 날카롭게 베인 노인, 머리 윗부분이 잘려 나간 청년, 둔기를 맞아 정수리가 함몰되어 버린 장년, 뒤통수가 깨져버린 아주머니, 처참하게 처형된 젊은 여성, 조총에 희생된 어린이까지 모든 것이 참혹함 그 자체였다.

임진왜란은 한반도 전체를 할퀴었다, 이들 인골만큼 그날의 처절함을 사실적으로 전해줄 게 또 있을까. 그런 증거가 바로 우리 부산에서 나왔다. 마치 나를 기다린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400년 넘는 세월을 거치면서도 어두운 도로의 지하에서 썩지 못하고 백골로 기다리다가 지금의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면 과연 지나친 비약일까. 그들은 전장을 누비던 장수나 역전의 용사들도 아니며 당시의 양반도 아닌, 부산 동래에서 살던 김영감, 동래댁, 갑동이, 을순이, 꼬마 개똥이 였을 터이다.

나는 믿는다. 이들은 결코 다시 잘 묻어주기를 원해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날의 일을 우리 모두가 두고두고 기억해주길 원해서 나타났다고.

동래성에서 나온 인골은 임진왜란의 참상을 어떤 자료보다 생생히 보여준다. 부산에서 이 인골을 잘 보존해 앞으로 역사를 공부할 시민과 후손에게 교훈으로 전해야 한다. 부산이 이런 역사적 자료를 관심과 애정으로 챙기며 되도록 많은 사람이 알 수 있도록 노력하길 기대한다. 그리고 앞서 말한 ‘동래부사순절도’(육군박물관 소장)도 이제 우리 부산시의 품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더불어 이순신 장군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또 하나의 대승 부산포대첩과 한국 전쟁 발발과 함께 침투해오던 북한군 600여 명을 백두산함(PC-701함)으로 격파한 대한해협승전에 대해서도 올바른 평가와 조명이 이뤄지기 바란다.

곧 호국보훈의 달 6월이다. 대한민국과 부산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 바쳤던 호국영령을 기억하고 기리자. 이제는 “오이소, 보이소, 느끼소”는 어떨까.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