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시민에게 광안리는 어떠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까? 즐비한 카페와 펍, 산책·조깅하는 사람들,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 불꽃놀이, 버스킹, 평화롭게 떠다니는 요트, 웅장한 광안대교까지. 이 모든 것이 한 폭 그림처럼 다가오는 이곳에 저마다의 추억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광안리에서 ‘대첩’이 있었다. 무슨 의미인가? 게임을 즐기는 사람을 제외한 일반 시민에게 ‘광안리 대첩’이라는 단어는 생소할지도 모르겠다. 광안리 대첩이란 2004년부터 2010년까지 광안리 해변에서 해마다 개최된 e스포츠 결승전 행사를 일컫는다. 특별히 ‘대첩’이라는 수식어가 붙여진 이유는 2004년 첫 행사에 주최 측 추산 12만 명의 관람객이 모였기 때문이다. 이는 같은 날 사직야구장에서 개최된 프로야구 올스타전 관중 1만5000여 명을 압도하는 수치이기 때문에 야구의 도시 부산에서 e스포츠가 거둔 성적은 ‘대첩’이라는 수식어가 꽤 잘 어울린다. 이러한 의미에서 광안리는 e스포츠의 ‘성지’이기도 한 것이다. 필자는 광안리를 바라볼 때면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광안리 대첩’을 과거의 영광으로 묻어두기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을 한다.
전 세계적으로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다. 성장 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 국제e스포츠연맹에서 추산한 2020년 e스포츠 규모는 1조5000억 원 상당이며, 2016년 기준 열렬한 e스포츠 팬 수는 약 2억 명으로 집계됐다. 필자의 학문 분야인 스포츠경영학에서도 e스포츠를 주제로 하는 학술논문 특별호가 빈번히 발간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글로벌 미디어 닐슨 스포츠(Nielsen Sports)에서 주목한 5개의 스포츠산업 트렌드에서 e스포츠의 성장이 주요한 경향으로 꼽히면서 각종 브랜드, 미디어, 전통적 스포츠 조직에서도 e스포츠의 성장을 활용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e스포츠 종주국으로서 한국의 e스포츠 시장 역시 급속히 성장하고 있으며, 각 시·도 지자체가 e스포츠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부산은 이 경쟁에서 어느 정도 우위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e스포츠연맹 유치, 10년 연속 G-STAR(국제게임전시회) 개최, e스포츠 상설 경기장 유치, 부산시의 e스포츠 산업 부흥에 대한 의지 등 여러 가지 호재가 있다.
필자는 스포츠산업의 외연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e스포츠 육성을 매우 환영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e스포츠가 가지는 가치(value)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스포츠의 가치는 굉장히 오랜 고민 끝에 어느 정도 정립되고 인정받았다고 판단된다. 직관적으로도 스포츠는 건강 자아실현 즐거움 행복 사회통합 등의 가치를 지닌다고 인식되며, 이러한 가치를 바탕으로 스포츠는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권장되고 있다.
e스포츠는 우리 삶에 어떠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 솔직히, 필자는 우리 아이들이 컴퓨터나 게임 콘솔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뛰어다니기를 더 바란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한 것은 e스포츠에 대한 필자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악재이다. 이렇듯 e스포츠는 허물어야 할 높은 심리적 장벽을 마주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에서 역할과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야 할 것이다.
부산시는 e스포츠경기장 조성, 종목 발굴 및 전문인력 양성을 포함하는 e스포츠 진흥계획을 수립했다. 앞서 언급된 악재를 의식한 듯 ‘게임과몰입상담치료센터’를 지자체 최초로 운영하여 나름의 돌파구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e스포츠 성지로서 부산시가 옛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다른 지자체들이 주목하지 않는 e스포츠의 가치 정립에 힘써야 할 것이다. 다양한 이해 당사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가치 정립과 그에 기반한 가치 지향적 정책 수립으로 더욱 지속 가능한 e스포츠 산업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 그 뜨거웠던 ‘광안리 대첩’을 재현할 부산의 e스포츠 스토브리그이다.
부경대 해양스포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