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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독립운동가 한형석과 부산의 추억 /홍순권

압록강행진곡 등 작곡, 음악가로서 항일 운동…아직도 그 흔적 곳곳에

부산 미래유산 지정 땐 이런 공간 우선 고려를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0-02 19:25:04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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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서구 부민동 임시수도기념관 거리 뒤편 산복도로에 옛 한전 변전소 자리가 있다. 바로 옆 비탈에는 옹벽 그림이 특별히 눈에 띄는 주택 한 채가 자리 잡았다. 그 주택을 에두르고 있는 옹벽 담벼락에는 ‘한국 최초의 오페라 가극 아리랑’이라는 글씨와 함께 오선지 위에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이 그려졌다. 오래전 고인이 된 ‘먼 구름’ 한형석 선생의 거택이다.

한형석 선생은 우리 민족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던 해 동래에서 태어난 부산 토박이다. 작고하기 전까지 서예가이면서 화가, 음악가로 다방면의 예술 분야에서 활동했던 종합 예술가였다. 그가 일생 동안 예술 활동을 통해 남긴 흔적은 부산 곳곳에 남았다.

한형석 선생이 1996년 작고할 때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은 그를 다재다능하고 활동적인 예술가로만 알고 있었고, 그가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그것은 한형석 선생 스스로가 그 사실을 밖으로 잘 드러내지 않았던 까닭도 있거니와 그러한 모습이 원래 선생의 타고난 성품이었을지도 모른다. 놀랍게도 독립운동가로서의 한형석 선생의 이력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해방 전 광복군 제2지대에서 활동하던 당시 그가 지도했던 중국인 제자들이 한국을 방문하면서부터였다. 아쉽게도 한형석 선생의 작고하고 나서야 한국을 찾은 선생의 제자들은 스승의 행방을 찾기 위해 방송의 문을 두드려 도움을 구해야만 했다. 한국 방문 당시 중국인 제자들은 1942년경 한형석 선생이 시안에 있는 중국 국민당 정부 산하의 산시성 전시 제2아동보육원 부속 아동예술반의 주임을 맡았을 때 가르쳤던 아동들이었다. 뒤에 그들은 중국에서 화가와 음악가로 성장하여 활동 중이었다. 그 제자 중 한 사람인 베이징 중앙음악학원 량마오춘 교수는 5년 전 필자가 중국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때 그가 한형석 선생을 뛰어난 예술가이면서 자상한 스승으로 회상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한석형 선생이 항일 오페라 가극 아리랑을 초연한 것은 1940년 시안에서였다. 선생은 광복군에 합류해서도 음악 교관으로 활동하였다.

한형석 선생의 아버지인 한흥교 선생 또한 독립운동가인데, 일찍이 일본에 가서 의학 공부를 마치고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 신해혁명과 한국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한형석 선생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중국에서 학업을 마쳤다. 한형석 선생은 1933년 상하이 신화예술대학을 나와 처음에는 중국군으로, 뒤에는 광복군에 참여하여 음악교관으로서 예술구국의 혼을 불태웠다. 그가 광복군가인 압록강행진곡을 작곡한 사실은 익히 알려진 일이지만, 그는 음악 활동을 통해 당시 중국군 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마치 조선의용군에 참여한 광주 출신의 음악가 정율성이 많은 중국혁명군가를 작곡하여 유명해졌던 사실과도 필적한 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한형석 선생은 해방 이후 광복군의 일원으로 귀국했으나, 정치에는 발을 내딛지 않고 한국전쟁 직후 자유아동극장을 짓는 등 아동들에 대한 예술 교육과 그 자신의 예술 창작 활동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산대에 재직하면서 후학 양성에 힘을 쏟는가 하면, 예술 작품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부산 문화 예술계의 여러 인사와 교유하면서 수많은 얘기를 남기기도 하였다.

한형석 선생이 시인묵객을 비롯한 지인들과 만나거나 모임을 갖으려 자주 찾았던 곳으로 중구 동광동에 부산포라는 주막이 있다. 얼마 전 그곳을 찾았을 때에도 그곳에 한형석 선생이 남긴 벽에 걸린 묵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중 하나로 유명한 걸작, ‘그냥 갈 수 없잖아’가 있는데 이제 선생의 대표적인 유작이 됐다.

마침 부산시의회에서 부산미래유산 조례안 제정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논의 중인 조례 제정안에 따르면 부산 미래유산의 지정 대상으로 첫 번째가 ‘부산을 배경으로 다수 시민이 체험하거나 기억하고 있는 사건, 인물 또는 이야기가 담긴 유무형의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이미 서울시가 시행하고 있는 바이지만, 하루가 다르게 난개발로 사라져가는 우리의 미래 자산을 고려해 볼 때 뒤늦게나마 부산시에서 미래유산 제도를 도입하려는 취지는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미래유산 제정의 목적이 우리 사회의 미래 가치를 보존하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라면, 앞으로 우리가 논의해 될 과제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먼저 지역사적 맥락에서 부산시민에게 오래도록 친숙하면서도 원형이 잘 보존된 장소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본다면, ‘부산포’와 같은 장소가 그중 하나이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외에도 부산 곳곳에 산재해 있는 미래의 문화적 자산 하나하나 대해서도 당연히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동아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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