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고성에 ‘안국사’란 작은, 쪽빛 산사가 있습니다. 단청 대신 쪽빛을 덧댄 푸른 가람은 겨울바람 앞에 묵직한 날갯짓 같은 소리를 냅니다. 쪽빛 단청에 귀를 대면 늘 휘파람 소리가 납니다. 눈을 감고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큰 새 그림자, 안국사를 물고 빠르게 날아가는 환각에 빠집니다. 저에게 안국사는 벌써 10여 년째 겨울이면 독수리를 만나러 가는 ‘독수리 사찰’이기도 합니다. 철새 독수리들은 고성까지 날아와 겨울을 나는 ‘진객’입니다. 고성 곳곳이 독수리를 만나는 명소지만, 안국사 마당은 독수리의 활공을 보는 즐거움으로 남다릅니다. 고개를 들면 먹이활동을 마친 독수리들이 날개를 수평으로 펼쳐놓고 자유를 즐깁니다.
천황산은 하늘의 제왕 독수리가 날아들기에 걸맞은 이름입니다. 천황산이 높이 솟아 깃발처럼 펄럭이며 하늘의 주인을 부르는 모양입니다. 독수리들은 하늘이 맑을 때 납니다. 눈이 시리도록 새파란 겨울 하늘이 쨍하며 펼쳐질 때 그 하늘을 배경으로 독수리는 활공을 보여줍니다. 저는 안국사 요사 툇마루에 앉아 독수리를 기다리거나 독수리를 만납니다. 대숲을 스친 바람이 풍경을 소리 없이 흔들 때 내 마음에까지 독수리가 날아듭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덮치는 알지 못하는 갈증에 얼음이 뜨는 찬물 한 잔을 마십니다. 아마 그것은 날지 못하는 인간의 영원한 갈증인지 모르겠습니다.
천황산 하늘이 백지라면 독수리는 자음이나 모음으로 그려진 수묵화입니다. 그 마음의 수묵화를 그대는 읽어보신 적이 있는지요? 말이 끊어진 언어도단의 가르침이 어떤 불경보다 깨달음과 위로를 준다는 것을 독수리 나는 겨울 안국사에서 배웁니다.
프랑스 폴 모리아 악단의 연주로 ‘El Condor Pasa’를 듣습니다. 팬 플루트의 애잔한 음률이 마음 가득 고산 구름처럼 무겁게 깔립니다. ‘철새는 날아가고’라는 제목으로 번역되는 곡입니다. 이 연주곡이 고대도시 마추픽추의 주인이었던 잉카인의 민요라는 것을 알기 전에는, 연주를 들으면서 안데스 산맥 너머 철새가 날아가는 경쾌하고 서정적인 풍경을 떠올렸습니다. 이 곡에 얽힌 내용이 스페인 통치하의 페루에서 1780년에 일어났던 대규모 농민혁명이란 것을 알고부터는 스스로 경건해집니다. 그 혁명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였다고 합니다. 그들의 아픈 이야기를 1913년 클래식 음악 작곡가인 다니엘 알로미아스 로블레스가 오페레타 ‘콘도르칸키’에 담았습니다. 콘도르칸키의 테마음악이 ‘El Condor Pasa’였습니다. 그 테마음악을 폴 모리아 악단이 연주하고, 뒤엔 ‘사이먼 앤 가펑클’이 불렀습니다.
농민혁명을 일으킨 콘도르칸키는 1781년 체포되어 처형당했습니다. 목숨을 잃었지만 그는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을 상징하는 영웅이 되었습니다. 잉카 후예의 예언에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가 된다고 합니다. 그는 죽어서 콘도르가 되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 음악 속의 ‘콘도르’는 ‘콘도르칸키’였던 것입니다. 혁명가 콘도르칸키는 지금도 독수리가 되어 라틴 아메리카 하늘을 유유히 날고 있을 것입니다. 독수리과로 안데스 산맥 바위에 서식한다는 새 콘도르.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인 잉카인들에게 ‘콘도르’는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자유! ‘사이먼 앤 가펑클’이 1970년대 ‘철새는 날아가고’를 자신들의 목소리로 부르면서 폴 사이먼이 가사를 붙였다고 합니다. 그 노래에 세상이 열광을 했습니다.
‘달팽이보다는 참새가 되겠어/할 수만 있다면 꼭 그럴 거야/못보다는 망치가 될 거야/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겠어 꼭 그럴 거야./
멀리, 차라리 멀리 항해를 떠나겠어/여기에 머물다 떠나간 백조처럼/인간은 땅에 머물러 있다가/가장 슬픈 소리를 세상에 들려주지/가장 처량한 소리를./
도심의 거리보다는 숲이 되겠어/할 수만 있다면 그럴 거야 꼭 그럴 거야/차라리 발밑에 흙을 느끼고 싶어/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겠어 꼭 그럴 거야’.
허공을 도는 독수리를 보며 날개가 꿈을 꾸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날개가 꿈이기에 자유는 여전히 유효한 사람의 명제입니다. 3000㎞의 날갯짓으로 여기까지 날아온 독수리의 꿈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보며 꾸는 우리의 꿈은 또 무엇일까를 생각합니다.
한 해를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20여 일이 실타래의 실처럼 풀려나간 하늘을 보며 겨드랑이 아래가 자꾸만 뜨거워집니다. 빨리 날개를 펼쳐야 하는데, 꿈이 날아갈 곳은 아직 먼데, 또 다시 목이 마릅니다. 왜 날고 싶은가를 묻지 마십시오. 그건 자유가 주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시인·경남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