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해양문화의 명장면 <44> 고려대장경 바다를 건너다

“대장경 달라” 65차례 요구한 왜국 … 경판 약탈 계획도 세웠었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2-18 19:12:26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무로마치막부 쇼군 요시모치
- 조선이 대마도 정벌하자
- 진의 파악하려 보낸 사절단
- 인쇄본 1부 선물 받기도

- 경판 제작기술 뒤처졌던 일본
- 팔만대장경 갖길 원했지만
- 조선 다른 경판 보내 달래기도
- 日 현재 대장경 9사례 남아

- 인쇄본 모두 손으로 베껴쓰며
- 日 독자적 대장경 기틀 확립

조선 세종 1년 11월 20일 일본 국왕사가 부산포에 도착하였다. 조선이 대마도를 정벌한 지 6개월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들은 서울로 올라와 이듬해 1월 6일 세종을 알현하였다.
   
경남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에 소중히 보관된 국보 제32호 팔만대장경. 조선 전기에 일본은 팔만대장경 인쇄본뿐 아니라 경판 자체를 달라고 자주 요청했다. 국제신문 DB
“임금이 인정전에 나아가 군신의 조하를 평상시와 같이 받았는데, 비로소 풍악을 썼다. 일본국 사신 양예(亮倪)가 그 부하를 거느리고 반열을 따라 예를 행하게 하였는데, 양예 등을 서반(西班) 종품의 반열에 서게 하였다. 예가 끝나매 통사(通事) 윤인보(尹仁甫)에게 명하여 양예를 인도하여 전상(殿上)에 오르게 하고, 임금이 말하기를 “풍수(風水)가 험한 길에 수고롭게 왔소” 하니, 양예가 엎드려 대답하기를 “임금의 덕택을 말로써 다하기 어렵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니, 양예가 대답하기를 “대장경(大藏經)뿐이올시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대장경은 우리나라에서도 희귀하다. 그러나 1부(部)는 주겠다” 하니, 양예가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기를, “우리나라에서 받은 임금의 은혜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세종실록’ 세종 2년 1월 6일)

사실 양예가 조선을 찾아온 것은 기해동정(조선 세종 때 대마도 정벌)의 진의를 알아보려는 목적이었다. 당시 일본은 조선이 명과 함께 일본을 공격해 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실정막부(무로마치막부) 3대 장군 족리의만(아시카가 요시미쓰)은 명으로부터 국왕으로 책봉받고 사신을 파견했지만, 그의 뒤를 이은 족리의지(아시카가 요시모치)는 책봉을 거부했고, 명과 긴장관계를 조성했다. 게다가 명의 해안을 왜구가 빈번하게 노략질하고 있었다. 따라서 책봉 거부 문제만이 아니라 왜구를 근절하기 위해서도 명은 일본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 와중에 갑자기 조선이 대마도를 쳤고(기해동정), 일본은 조선과 명이 일본 본토를 공격하려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양예 등을 보내 조선의 진의와 명의 동향을 탐문하려 한 것이다. 양예는 세종 앞에서 기해동정에 관해서는 함구하고, 오로지 ‘대장경’을 바랄 뿐이라 하였다. 이에 조선은 대장경 인쇄본 1부를 보내는 한편, 송희경 일행을 보내 기해동정이 왜구 소굴인 대마도만 공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때 사신으로 간 송희경이 남긴 기록이 유명한 ‘노송당일본행록’이다. 이 책은 우리가 남긴 최초의 일본 사행록이자, 일본에 대한 세계 최초의 여행기라 할 수 있다.

■팔만대장경 ‘경판’까지 요구

   
고려대장경 수용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일본 실정막부(무로마치막부)의 지도자 족리의지(아시카가 요시모치).
일본은 대장경의 인쇄본을 얻으려 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다. 심지어 팔만대장경 경판 자체를 요구했다. 이미 출가하여 승려 신분이던 실정막부의 4대 장군 족리의지는 팔만대장경판에 대한 강한 집착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규주(圭籌)와 범령(梵齡)이라는 승려를 보내 이를 요청했다. 그러나 조선으로서는 유일한 대장경의 판목이므로 그 요청을 들어줄 수 없었다. 그러자 규주 등은 족리의지에게 무력을 행사해서 대장경판을 빼앗자는 내용을 담은 문서를 보내려 하였다. 이 사실이 미리 발각되었고, 조선은 외교 문제로 비화하는 것을 막고자 깊이 추궁하지는 않았다.

이 사건을 통해 일본이 대장경판을 확보하려 한 의욕이 얼마나 강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세종은 이에 대해 밀교대장경판, 주화엄경판과 같은 경판을 비롯해 대장경 1부를 규주에게 주었다. 이렇게 다른 여러 경판과 불경을 전하러 일본으로 건너간 송희경 일행은 현재의 시모노세키에서 무려 55일간 체류하는 등, 족리의지는 고려대장경판을 받지 못한 것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때뿐 아니라, 일본이 대장경을 요구하는 것은 65회에 이르고, 이에 따라서 많게는 44장(藏) 즉 팔만대장경 전부가 44차례에 걸쳐 일본에 전래된 것으로 본다.

■대장경이란

대장경은 모든 불교경전의 집대성을 뜻하며, 일체경(一切經)이라고도 한다. 중국 당나라 때 불교경전 전체의 목록이 작성됐고, 송대인 983년 황제의 명령으로 처음으로 대장경이 제작됐다. 이후 여러 종류 대장경이 만들어졌으나, 고려가 1011년 제작에 착수한 초조대장경이 착수 시점으로 보면, 역사상 두 번째 대장경에 해당한다.

팔만대장경은 재조대장경이라고도 부르며, 1236년 시작해 1251년 완성하였다. 분량은 1511부, 6802권, 8만1258판이고, 쪽수로는 16만 쪽에 이른다. 당시 책은 한 면에 인쇄해 반으로 접어 만들었기에, 요즘 책으로 따지면 400쪽 책 8000권에 해당한다. 따라서 일본 국왕사 규주가 대장경 전질이 7000권이라 한 것은 팔만대장경 규모를 정확히 언급한 셈이다.

현재 일본에 남아 있는 고려대장경은 모두 9 사례이다. 가장 오래된 것은 고려말 우왕 때인 1381년 인쇄된 것으로 일본 경도(교토)의 대곡대학(오오타니대학)에 있다. 이 대장경에는 이색의 발문이 붙어 있다.

조선 시대 인쇄된 사례로는 일본 금강봉사(金剛峰寺)의 고려대장경이 있는데, 6285첩(帖)으로 구성돼 있다. 고야산 금강봉사는 일본 진언종의 총본산으로 1200년 역사를 가진 절이다. 이 팔만대장경 인쇄본은 원래 대마도에 있던 것으로 동경(도쿄) 증상사(增上寺)에 소장돼 있는 대장경은 한꺼번에 50부를 인쇄한 사실과 관련된 발문이 붙어 있어 세조 3년 1458년 인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절은 덕천(도쿠가와)막부 장군가의 보리사이다.

경도 상국사(相國寺)에 있는 대장경 역시 세조 3년에 인쇄된 것이다. 상국사는 실정막부 장군가의 보리사이다. 이처럼 현재 일본에는 15곳에 고려대장경이 전해지는데, 그중 9곳의 대장경이 조선 전기 일본으로 갔다.

■왜 대장경을 요구했을까

무엇보다도 당시 일본은 대장경을 만들지 못했다. 중국 송대에 최초로 대장경이 만들어진 후 그 인쇄본은 비슷한 시기 고려와 일본에 전해졌다. 일본에서 이를 바탕으로 대장경 경판을 판각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이 최초로 대장경을 완성한 것은 17세기 후반이다. 이처럼 대장경이 출현한 10세기 이후 일본은 700년간 스스로 대장경판을 만들지 못했기에, 유교를 국시로 하는 조선에 와서 대장경을 요구한 것이다.

그뿐 아니다. 팔만대장경은 송과 거란이 제작한 대장경의 내용을 교정한 것으로 그 우수성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일찍이 일본 정토종 승려 인징(1645~1711)은 고려대장경의 우수성을 지적하였고, 일본 근대에 만들어진 대일본교정축쇄대장경(縮刷大藏經)이나 대정 연간에 만든 신수대장경(新修大藏經) 역시 팔만대장경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경도 북야사에 전하는 일체경은 1412년 불경 전체를 필사한 것인데, 그 저본 중 하나가 역시 팔만대장경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쇄된 팔만대장경을 얻지 못하자, 대장경 인쇄본을 모두 베껴 쓰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 일체경은 일본 필사본 일체경의 최후를 장식하는 사례이다.

   
이처럼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고려의 대장경은 실로 방대한 분량이었으며, 대장경은 일본 불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 영향의 실상은 이제부터 밝혀할 일이다.

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사학과·국제신문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송파 247만 장 검증, 신분확인·촬영요구로 시작부터 차질(종합)
  2. 2지광 70억 있다면서…세금도 34억 10여 년 체납
  3. 3직무정지 새마을금고 이사장, 여전히 경영 관여
  4. 4신임 부산시 행정부시장에 김성기 행안부 인사기획관
  5. 5‘가덕 증액 문서화’ 쳇바퀴…우선시공분 내달초 착공 희박(종합)
  6. 6롯데 수석코치 허문회, 2군 감독 박승민
  7. 7[근교산&그너머] <1484> 통영 학림도 망산
  8. 8147일 만에 투표지 공개 검증
  9. 9경정 승진자도 전국 교류…경위 이하 5년씩 부서순환 추진
  10. 10아직 관객 많은 ‘오디세이’인데…아이맥스관에서 내린 사정
  1. 1송파 247만 장 검증, 신분확인·촬영요구로 시작부터 차질(종합)
  2. 2대한항공 말흐리기…실체없는 통합LCC 부산 허브
  3. 3[뉴스 분석] 종교인·언론사주가 국회 권위 훼손…도덕성 논란까지
  4. 4부울경 광역의회 협력강화 선언 “미래산업 함께 육성”
  5. 5‘가상자산 과세 유예’ 결론 못낸 당정
  6. 6李 대통령 “국민 생명·안전 지키기가 최우선”
  7. 7여야 ‘조희대 국조’ 두고 공방 격화
  8. 8[속보] 대통령비서실, 30억 들여 월평균 11회 여론조사…내용은 비공개
  9. 9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10. 10조현, 한미관계 난기류 우려에 “벨트 단단히 매면 돼”
  1. 1지광 70억 있다면서…세금도 34억 10여 년 체납
  2. 2‘가덕 증액 문서화’ 쳇바퀴…우선시공분 내달초 착공 희박(종합)
  3. 3퇴직금 2028년부터 사외적립…체불 예방
  4. 4부산시 “부산에 글로벌 AI 허브 유치하겠다”
  5. 5미래에셋·대신증권·빗썸도 뚫렸다(종합)
  6. 6사실상 금융업 전체가 다 털릴 판…靑, 긴급 대응회의(종합)
  7. 7첫 100조 분기매출 하닉 “100조 주주환원 하겠다”(종합)
  8. 8전용터미널·화주 인센티브 등 북극항로 상업운항 지원 요구
  9. 9부산과학기술협의회·CTO평의회 역량 확대
  10. 10부산銀 센텀센터, 스타트업 지원 거점화
  1. 1직무정지 새마을금고 이사장, 여전히 경영 관여
  2. 2신임 부산시 행정부시장에 김성기 행안부 인사기획관
  3. 3경정 승진자도 전국 교류…경위 이하 5년씩 부서순환 추진
  4. 4영업중단 이어 단전 위기…피가 마르는 홈플러스 입점업체들
  5. 5후배 경찰 신체 ‘덥석’…파출소 팀장 추행 혐의 피소
  6. 6아울렛서 만나는 김해 도자기
  7. 7“일부 수사 강압·부실” 부산변회, 권한 커진 경찰 첫 평가
  8. 8부경대 5108명 정보유출…위탁보안 비상
  9. 9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29일
  10. 10“공장화재 대원 고립됐다” 실전같은 훈련
  1. 1롯데 수석코치 허문회, 2군 감독 박승민
  2. 2모레노, 은퇴소동 ‘96라인’ 달랜다…대표팀 내홍 풀까
  3. 3부산시대 2년차 읏맨 “홈팬 응원에 성적으로 보답”
  4. 4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5. 5‘무관의 제왕’은 옛말…케인 발롱도르 품었다
  6. 6‘은퇴 기로’ 손아섭, 2년 만에 NC로…3000고지 향한 행진 계속
  7. 7허구연 KBO 총재, 3연임 사실상 성공
  8. 8K리그2 준PO 12월 2일 개최
  9. 9김해FC, 제6대 사령탑에 설기현 감독 선임
  10. 10롯데 자이언츠 신임 감독 이동욱·단장 이택근(종합)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