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추석 연휴,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귀성·귀가행렬이 이어졌다. 고마운 사람, 반가운 지인 간 감사의 인사가 잇달았다. 개개인이 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을 사기도 하고, 기업체 등이 대량으로 감사 선물 세트를 준비하면서 명절 전 2~3주를 대목이라 일컫는다. 또한, 고향에 돌아온 사람들이나, 시간에 쫓겨 살던 사람들이 오래간만에 짬을 내어 식사나 술자리를 만드는 통에 유통업계나 음식업 등 산업 전반이 특수를 누린다. 이런 '대목 장사'가 끝난 후에는 개개인의 소비심리가 급격히 얼어붙기 마련이다. 여느 홈쇼핑 쇼호스트의 설명에 의하면, 명절 뒤 소비 냉각기에는 차례 및 손님맞이에 분주했던 주부들을 상대로 한 화장품, 안마기 등 소소한 상품들이 소개된다고 한다.
이에 정부는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라는 행사를 마련해 자칫 얼어붙을 수 있는 소비심리에 군불을 때기 위한 대규모 세일 행사를 추진한다. 10월 1일부터 2주간 진행되는 이번 행사가 처음 소개됐을 때,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라는 용어를 떠올렸지만 어떻게 진행한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블랙프라이데이'는 적자(赤字)를 흑자(黑字)로 바꾼다는 의도에서 탄생한 용어다. '블랙프라이데이'는 개인은 싸게 사서 이익이고 업체는 박리다매 혹은 재고를 털어내며 이익을 노리는 대규모 세일 행사다.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가 11월 넷째 주 금요일, 즉 추수감사절의 다음 날부터 연말까지 이어지는 데에는 복합적 사회 구성원 간 심리가 작용한다.
해당 기간 상점가를 돌아다니다 보면 깜짝 놀랄 만한 세일이 이어진다. 소위 도어버스터(door buster) 세일,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타임세일 혹은 한정물량 세일의 형태가 많아 발품을 파는 쇼핑객들에게 만족할 만한 쇼핑 사냥터가 된다. 이와 같은 대규모 쇼핑 세일 기간이 형성된 것은 추수감사절 이후 연말 경기가 살아날 12월 말까지의 기간이 자칫 소비 냉각기가 될 수도 있다는 미 정부의 우려와 함께 재고를 방치한 채 해를 지내지 않는 것이 유리한 유통업체의 의지가 결합한 산물이다. 영국의 '복싱데이'도 이와 유사하다. 12월 26일, 즉 크리스마스 이튿날로 정해진 해당 일은 '성 스티븐의 날'이라 불리기도 한다.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국가들도 크리스마스와 '복싱데이'를 기점으로 연말까지 소위 클리어런스 폭탄세일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이 이러한 세일 행사를 국가 차원에서 진행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GDP(국내총생산) 내 민간소비 비중이 70%에 육박하는 미국 산업구조 특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내수 진작이 경기 회복에 미치는 영향 폭이 상당히 큰 국가라 하겠다. 이에 반해 한국은 해당 비중이 50%를 웃도는 수준이다. 미국은 해당 세일 기간 연간 내수 소비의 20% 이상이 발생하고, 해외직접구매 등에 의해 더욱 세일 판매가 활성화한다니 이를 벤치마킹한 정책 시도가 사뭇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일 년 중 소비심리가 가장 위축될 수밖에 없는 추석 연휴 직후 새로운 이벤트로 경기가 되살아나, 그렇지 않아도 지난 열 달간 각종 사건 사고로 힘들었던 국내 산업계에 여유와 웃음을 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이번 세일 행사에는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온라인쇼핑몰뿐만 아니라 전국 규모 배달업체 혹은 음식점 그리고 전통시장까지 참여한다. 산업통상자원부 발표에 따르면 전국 2만7000여 개 점포가 참여하며, 소비 확대를 위해 카드 무이자 할부, 홍보 판촉 제한에 따른 규제의 일시적 해소 등 각종 부가 정책이 잇따르고 있다.
염려되는 점은 우리나라의 유통업체는 그렇지 않아도 연간 각종 세일을 이어오고 있어, 유달리 체감 폭이 큰 세일이 가능할 것인지 하는 점이다. 연초부터 세일 행사가 쏟아져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행사는 기본에 입학, 스승의날, 어버이날, 각종 '~데이' 행사 등으로 세일 안 하는 기간에 물건을 사기가 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게다가 이러한 정부 주도형 대규모 세일 행사의 정착을 위해 해당 기간 대형마트의 강제휴무일 또한 일시 정지된다고 하니 이도 걱정이다.
사회구성원 간 이견을 이겨내고 정착한 조례안이 흔들릴 수 있으며, 정부 정책이 대기업부터 전통시장까지 고루 미친다고 홍보하고 있으나, 참여하는 200여 개 전통시장은 자발적으로 가격을 인하하며, 정부의 지원은 이에 대한 홍보비 10억 원에 그치고 있다. 이에 반해 개별소비세 인하로 자동차, 대형 가전 판매의 특수는 대기업이 누리게 될 것이다. 이왕의 경기회복을 위한 정부의 정책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정책 효과를 감안하여 세밀한 정비가 필요한 이유다.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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