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피터 게이가 쓴 '프로이트'라는 평전을 읽으면서, 교통과 통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편지라는 것이 얼마나 애틋한 교감의 매체였는가를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멀리 있는 사람은 자주 보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그만큼 그리움은 절절했으며, 그러다 만나면 반가움은 벅찬 감격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서간의 언어는 결코 낭비되어서는 안 되는 절실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피터 게이의 책에는, 그동안 편지로만 연락을 주고받았던 프로이트와 융이, 드디어 서로 만나 베르크 가세 19번지의 프로이트 집무실에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른 채 열네 시간을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누고 싶은 말들이 많았지만, 지금처럼 쉽게 연락해서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던 탓에, 그들의 그 만남은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애틋하고 절실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시대의 언어에는 허투루 내뱉을 수 없는 어떤 진지함과 절박함이 깊이 배어 있었다.
교통과 통신은 시간과 공간을 단축하고 압축한다. 디지털이 모바일을 만나면서,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든, 누군가와 또 어딘가에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친구와 거의 실시간으로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내가 올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글들은 동시에 여러 사람에게 나의 사정을 전시하고 중계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과연 미디어의 발달이 가져온 우리 생활의 획기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변화가 가져온 실용적인 편리함의 이면에는, 예전에는 존재했던 사람 사이의 어떤 내밀하고 애틋한 마음의 상실이라는 대가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이제 서로를 그리워하는 애타는 기다림의 시간 대신에, 누군가의 댓글이나 '좋아요'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나의 일상을 수시로 침범하는 소식들, 말하자면 전화와 문자 메시지, 메일과 SNS의 게시글들은, 그야말로 언어가 과소비의 수준을 넘어 낭비에 이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물론 언어의 낭비란 생각과 감정과 시간의 낭비이기도 하다.
특히 SNS에는 특유의 감정적 흥분들이 집단적인 정념으로 들끓는다. 정부의 어떤 결정들에 대해, 또 어떤 불온하고 정다운 사건과 사람들에 대해, 퍼 나르고 퍼 담으면서 함께 분노하고 비난하고, 또 함께 격동한다.
한쪽에서는 자기 과시적인 글들이 게시되기도 하고, 또 다른 쪽에선 누군가를 비방하고 멸시하는 글들이 게시된다. 숭배와 비하가 하나인 것처럼, 과시와 멸시는 서로 내통한다. 훈계와 비방, 축하와 격려, 비난과 멸시, 연민과 분노가 요동치는 이 덧없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위로받고 좌절하고, 치를 떨고 또 놀라워한다.
접속이 흔해질수록 접촉은 점점 희귀해져간다. 우리는 어쩌면 타인을 향한 진한 그리움을 잃은 대신에 더 깊은 외로움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접속은 바로 그 외로움을 견디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좋아요'를 눌러주고 '좋아요'를 갈망하며, '좋아요'에 위로받을수록 우리는 점점 더 좋은 관계들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를 전시하며 자기의 존재를 확인받기를 원할수록, 나는 진짜 내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 속에서 그렇게 비춰지기를 소망하는 나를 위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보여주는 나는 사실은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일 뿐이며, 그렇게 내가 전시하고 있는 나는 타인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나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내가 보고 있는 타인들의 모습 역시 바로 그렇게 인정투쟁의 허깨비인 것인지도 모른다.
남명 조식이 그의 지기인 대곡 성운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 '양쪽에서 모두 소식이 끊어진 지 벌써 5, 6년이나 되었으니, 공과 나는 다른 세상 사람이 되었습니까? 길가다 만난 사람처럼 무관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말을 하자면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할 만합니다. 지난해 속리산으로 들어가는 승려가 있어 안부 편지를 띄웠는데, 도착했는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우편 제도의 불미함 속에서 인편으로 전하는 이 편지는 전해질지 어떨지도 모르는 안타까움 가득한 마음으로 절친한 벗에게 절박한 그리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 누군가들을 향해 일방적으로 전송하고 게시하는 글들이 피로감을 주는 이때에, 그 옛날 기술의 미비함으로 불편했던 그때에는 가능했던 절실한 마음들을 헤아려 본다.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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