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면서 좀 많은 책을 손수 옮기고 정리해야 했다. 저 책들의 무게만큼 내 정신도 깊어졌으면 좋으련만, 공부란 독서의 그 분량만큼 그렇게 쉬이 진전하지 않는다. 공부란 쿵푸(工夫)라지만 내 공부는 언제나 책상 언저리를 떠나지 못하고 몸을 학대하기가 일쑤였다. 이사를 끝내고 나는 기어코 몸살을 앓아야 했고, 드디어 허리에 탈이 나고 말았다. 별로 움직이지 않았던 몸을 갑작스레 놀려댄 대가는 혹독했다. 일어서고 앉기는 물론 거동을 하기가 어려웠고, 작은 기침만 해도 허리가 끊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며칠을 참으면 나아지리란 믿음을 갖고 참아보았지만, 조금도 나아지지가 않아서 결국은 병원을 찾아야 했다.

허리 치료에 탁월하다는 소문을 듣고 먼 길을 달려 도착한 병원은, 마치 옛날 영화에나 나올 법할 만큼 낡고 오래된 건물이었다. 대체로 소문난 맛집이 그렇듯 인테리어나 서비스보다는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를 보는 그런 병원이려니 생각했다. 역시 그래서일까. 성격이 활달한 물리치료사는 내 상태를 보자마자 꾸지람을 한다. 잘못 살아온 대가가 지금의 통증이란다. 무례하다고도 생각했지만 틀린 말이 아니니 고분하게 듣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 병원은 좀 이상한 것이 진료도 하기 전에 먼저 치료를 했고, 그 치료란 것도 기구에 눕혀놓고 몇 번 지압을 하거나 저주파 치료기를 얼마간 사용하는 정도였다. 치료 후에 진료를 받으러 들어가니, 대단히 연로한 의사분이 너무나 썰렁해서 기이하기조차 한 진료실에 홀로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는 종이에 메모를 해 가면서 척추 질환에 관한 상식적인 이야기들을 꽤나 성실하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는 처방도 없이 나를 그냥 돌려보냈다.

그 이후로 한참을 그냥 불편한 몸으로 지냈다. 자연치유란 것도 있다고 하니 조금씩 몸을 움직이다 보면 몸이 나아지리란 오만한 믿음으로 통증을 견뎠다. 몇 달을 참고 지냈지만 나아지기는커녕, 조금 서 있거나 걷는 것도 심각하게 불편했다. 그러다 드디어 이런저런 정보들을 검색해 내 몸에 맞는 치료법들과 시술들을 알아보고, 내 딴에 가장 실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병원 몇 곳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받았다. 물론 그 상담사들은 의료진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은 다만 시술의 절차나 비용에 대해 들려줄 뿐이었다. 허리의 통증은 생존에 걸린 문제가 아니라 생활에 불편함을 줄 뿐이라서 그런 것일까, 뜻밖에도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통증이라면 분야에 따라서는 생업이 불가한 이들도 있을 텐데 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한 병원으로 가서 진료 접수를 했더니, 병원의 유니폼을 입은 여러 상담사 중의 한 사람이 와서 내 몸의 상태를 먼저 체크한다. 그리고 이야기 끝에 실비보험을 들었는지 묻는다. 그리고 드디어 의사를 만나러 진료실에 들어갔다. 기다림은 길었지만 만남의 시간은 너무나 애틋했다. 더 묻고 싶었으나 말할 수 없었고, 알 듯 모를 듯한 말들을 듣고는 쫓기듯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또 다른 상담사가 나를 작은 상담실(밀실)로 데려간다. 일종의 영업인 셈인데, 의사가 추천한 시술을 받으면 수백여 만 원의 비용이 든다고 했다. 나는 비용이 너무 부담스러우니 그 시술들 중에 하나만 받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 중의 하나를 시술받았다. 그것은 마치 흥정과도 같았고, 내 몸의 치료를 두고 벌어지는 일에 있어 내가 가장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시술비와 관련된 것뿐이었다. 만만치 않은 비용을 치르고 찍은 MRI 사진을 달라고 했더니, 그걸 CD에 옮겨 담는데 또 적지 않은 돈을 요구한다. 돈이 없으면 죽어야 된다는 누군가들의 푸념이 새삼스럽다.

지식이 곧 권력이라는 푸코의 고견이 이 나라의 병원들에서는 여전히 명백한 현실이다. 고수익의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그들의 지식을 대가로 서민들의 여린 마음을 압박하고 있을 것인가. 어쨌거나 나는 내 허리의 병을 치료하는 이 모든 과정이, 지금껏 누구나 겪어왔으며 또 겪고 있고, 앞으로도 겪어내야 할 어떤 쓸쓸한 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송강호가 출연했던 '우아한 세계'라는 영화에서 의사가 그에게 무덤덤하게 당뇨라고 말하자 송강호가 화를 내며 그 의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뇨가 감기야?" 이것이 그들과 우리의 격차다. 지금 나는 그 지긋지긋했던 통증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 그러나 그보다 더 지긋지긋한 일들을 겪지 않으려면 아프지 말아야겠다. 이제야 겨우 나는 몸으로 공부(工夫)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동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