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드(ballad). 춤추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ballar에서 온 말. 중세 시대 이후로 전 유럽에 걸쳐 알려진, 이야기(narrative)와 극적 대사 및 서정시의 요소를 혼합한 민속 노래(folk song)의 일종. 원래는 이탈리아의 발라타처럼 무곡(dance-song)의 뜻이었으나 14세기부터 이야기체의 독창(narative solo song)을 일반적으로 칭하게 됨…'
그로브 음악사전의 발라드 항은 이렇게 시작하여 장장 열 페이지에 걸쳐 설명을 거듭한다. 발라드라는 말이 '춤추다'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흥미롭다. 전세계 대중음악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발라드라는 말은 서양의 음악사 전반에 걸쳐 생성되고 발전하며 변형되어 온 음악언어이다.
이와 같은 유구한 성공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발라드가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제반 매체의 발전과 더불어 확고한 영향력을 구축했던 백인 대중음악의 본류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미국의 NBC와 CBS가 1926년과 그 이듬해에 각각 개국하면서, 그리고 그 비슷한 시기에 무성 영화시대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등장한 뮤지컬 영화 속의 낭만적인 선율이 대중의 정서를 사로잡으면서 이 3화음을 기본으로 한 AABA 형식의 32마디 노래는 완벽한 전성시대를 열었다. 빙 크로스비, 페리 코모, 프랭크 시나트라로 이어지는 스타들의 퍼레이드는 1950년대에 과격한 젊음의 음악인 록큰롤이 순식간에 세계를 정복하는 순간에도 기성세대의 지지에 힘입어 몰락하지 않는 끈끈함을 발휘한다.
그리고 6·25 이후 이 땅에도 미국 대중음악이 봇물처럼 쏟아져 들어 왔고, 기존의 트로트 음악에 발라드가 중추를 이루는 스탠더드 팝 계열의 노래가 도전장을 내민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초기에는 '나 하나의 사랑'이나 '청실 홍실' 류의 노래에서 알 수 있듯이 3박자의 왈츠 리듬에 기반한 노래가 강세를 보였다. 그러다가 록큰롤이 상륙하는 1960,70년대 이후부터 4박자의 슬로우 템포가 이 자리를 대체했으며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주류 문법이 되었다. 1980년대의 벽두에 자웅을 겨루며 전국을 휩쓴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와 이용의 '잊혀진 계절'의 엄청난 성공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들에 의해 불당겨진 발라드의 행진은 1980년대 중후반 이문세와 변진섭을 위시한 일군의 발라드 주자들이 빅뱅에 가까운 폭발력을 과시하면서 한국대중음악계를 완벽하게 장악하는데, 조하문, 김현식, 이승철 등 밴드 출신의 보컬리스트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원동력도 바로 이 음악언어에 기반하는 것이다. 이 장르의 문법이 대중적으로 정착한 것은 동시에 전통적인 트로트 양식이 지배해 왔던 한국대중음악이 서구 대중음악의 양식으로 이행하는 데 최후의 구두점을 찍는 역사적 전환점이기도 한 것이다.
흔히 겨울을 발라드의 계절이라고도 하고 그것은 불황 때에 더욱 강세를 보인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윤종신의 신보를 제외하면 이번 겨울엔 또렷한 발라드의 신작들이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아직 본격적으로 춥지 않아서일까? 아님 노래로 위안받기엔 작금의 현실이 너무나도 팍팍하기 때문일까? 작고 소박한 사랑의 환상이 아무 것도 구원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겨울의 노래 한 곡을 나는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