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와 관련된 언어 중 바둑 분야만큼 다양한 용어가 쓰이는 곳은 없을 것이다. '축' '환격' '빵따냄' 등 다른 분야에서는 전혀 쓰지 않는 용어가 상당히 많고, '포석''정석' '행마' 등 다른 영역에서도 사용되는 용어들이 많이 있다.
이와 같이 바둑에서 쓰이는 용어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김인만 씨가 낸 '바둑용어사전'에는 2000개 정도의 용어가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인명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 이것을 제외하면 1000개 내지 1500개 정도로 볼 수 있다.
작년부터 바둑용어사전을 준비해 온 한국기원에서는 900개 정도의 표제어를 선정하여 사전 편찬작업을 벌이고 있다. 바둑평론가인 양동환씨, 국문학자 채완 교수, 관전기 작가 박치문씨, 명지대 남치형 김진환 교수 등 바둑용어와 관련된 인사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며 바둑용어 선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용어작업에서 몇 가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우선 '빵따냄'과 '빵때림'처럼 두 가지로 쓰이는 용어를 어떻게 하느냐가 쉽지 않은 문제. '때린다'는 말은 거칠게 느껴져 빵따냄이 타당한 듯한데 빵때림을 좋아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패는 한자로 '겁(劫)'자를 쓰는 쪽과 '패(覇)'를 쓰는 쪽이 있는데 순수한 우리말이라는 설이 우세하다. '패'가 우리말이라면 굳이 '겁'이라는 한자로 쓸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는 의견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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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도 |
용어 선별에서 가장 골치아픈 문제는 일반적인 용어이면서 바둑에서도 자주 쓰이는 말. 예를 들어 '공격 ''삭감' '탈출' '이음' 등 일반적인 단어지만 바둑에서 흔하게 쓰이는 말인 경우 바둑용어로 삼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바둑에서 약간 특별한 의미를 갖고 사용되니 표제어로 삼아 뜻을 풀이해 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결행하다' '장고하다' 등의 말은 바둑에서 특별한 의미를 담는 말이 아니므로 제외시켜야 한다는 입장으로 정리되었다.
이번의 용어회의에서는 전문가들 간에 이해를 달리 하고 있는 것도 발견되었다. '이적수'(利敵手)를 논하는데 이것을 한자만 다른 동음어, 즉 '이적수'(耳赤手)도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월간바둑 이성구 편집장은 실제로 이 두 가지가 사용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후자의 이적수는 옛날 슈사쿠 명인과 대국하던 이노우에 준명인이 묘수를 당해 귀가 빨개졌다는 일화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통상적으로 '이적의 묘수'라고 불린다. 특정한 사건에서 비롯된 이 말을 일반적인 바둑용어로 사용하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비슷한 맥락으로 '낮은 중국식포석'과 '높은 중국식포석'이 나와 논쟁을 벌였다. 참고도의 흑1을 낮은 중국식, 흑A를 높은 중국식으로 부르는 사람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박치문씨는 흑1은 그냥 중국식이라고 하며, 나중에 흑A로 높게 두는 변종이 나와 '높은 중국식'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면서 '낮은 중국식'이라는 말은 없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필자도 '낮은 중국식 포석'이라는 말을 써 본 적이 없는데 요즘 인터넷 해설 등에서 젊은 기사들이 그런 표현을 쓰는 모양이다. 또한 팬들도 높고 낮은 두 가지로 분류해서 이해를 하는 것 같다. 언어에는 절대적인 법칙이 없으니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판단이 쉽지 않다. 이밖에도 '꼼수와 꽁수' '찝다와 집다' '걸침과 걸이'등 논란의 대상이 된 용어들이 적지 않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의 바둑문화 발전을 위해 큰 의미가 있는 바둑용어사전 편찬이 철저한 준비를 거쳐 제대로 이루어졌으면 한다. / 정수현 9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