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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김동호의 세계 영화제 기행 <32>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

야외상영 전통 고수 … 세계 젊은 감독들 발굴·육성 앞장

1946년 8월 첫 출발… 베니스영화제 이어 두 번째 오랜 역사

초기엔 영화상영 때 국기 게양 국가 연주

'달마가 동쪽으로…' 대상 수상 이후 국내 알려지기 시작, 한국감독 잇단 수상

주·시 차원 적극 지원… 수상작 상금도 두둑

신인감독들 첫 작품 초청 상영 대폭 늘려… 새로운 변화 모색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8-17 19:54:19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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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카르노영화제의 명물로 자리잡은 야외상영. 1946년 제1회 영화제부터 오늘날까지 야외상영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를 스위스의 국경을 넘어 달리면 마죠레 호숫가에 그림처럼 들어앉은 로카르노에 닿는다. 로카르노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 준 1925년 평화협정 장소로 유명하다. 하지만 20세기를 통과하면서 매년 8월에 열리는 로카르노국제영화제로 이름이 더 높다. 로카르노영화제는 칸영화제와 같은 해인 1946년에 창설되었고, 가장 오래된 베니스국제영화제 다음의 출발 순위를 갖고 있다. 칸 영화제가 1946년 9월 20일 개막을 선포하였다면, 이 영화제는 한 달 앞선 8월 22일에 그랜드호텔 정원에서 개막식을 거행했다.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명물인 야외상영이 출발이었다. 당시 가로 8m, 세로 7m의 스크린을 설치하고 스위스 국기가 게양되며 애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영화제가 열렸다.

흥미롭게도 당시에는 미국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웨덴 소련 등 6개국 15편의 공식영화가 상영될 때마다 영화를 제작한 나라의 국기가 게양되면서 국가가 연주됐다고 한다. 야외상영인 탓에 비가 오면 인근의 리알토, 렉스, 쿠르잘 극장을 이용했다. 이렇게 시작된 야외상영은 이 영화제의 대표적인 '상징'이 됐다.

제1회 영화제에는 15편의 공식상영 영화 이외에 '비전 프라이빗(Vision Private)' 부문에 10편, '리뷰 다큐멘터리(Review Documentary)' 부문에 13편 등 모두 38편의 영화를 상영하였다. 처음에는 비경쟁영화제를 표방하였지만 르네 클레르 감독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가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고, 제니퍼 존스가 최우수 여우상을 받는 등 6개 부문의 시상이 있었다. 로카르노의 시상제도는 1946에서 1948년, 1950년에서 1957년 사이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제1회 영화제부터 1970년까지 사용하던 그랜드호텔 정원의 야외상영 스크린은 지금도 남아있지만, 로카르노 당국은 1971년에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피아자 그란데'(Piazza Grande·넓은 광장)를 조성하고 가로 26m, 세로 14m의 대형 스크린을 설치했다. 여기서 매일 밤 한 두 번의 야외상영을 하는 한편, 인근에 3200석의 오디토리엄 페비와 960석의 라 살라, 500석의 알트라 살라를 건립하여 주요 무대를 옮겼다. 오디토리엄 페비는 하루 4회의 국제경쟁영화를 상영하면도 야간에는 비워 놓는다. 우천으로 인해 야외상영이 불가능 할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 참석한 김기덕(오른쪽) 감독과 필자(왼쪽)가 영화제 관계자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카르노의 한국영화 진출은 매우 늦게 이루어졌다. 일본영화는 1954년에 '지옥문'(기누가사 데이노스케)이 수상한 이후 거의 매년 초청됐고, 1961년에는 '들불'(이치카와 곤)이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이 로카르노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989년에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대상인 황금표범상을 비롯하여 에큐메니칼 심사위원상, 국제비평가연맹상(FIPRESCI)을, 박광수 감독의 '칠수와 만수'가 청소년심사위원 3위상을 동시에 수상하면서부터이다. 하지만, 이후 10년간 로카르노는 한국 영화계와 인연이 없었다. 그러다가 1999년 박광수 감독의 '이재수의 난'이 청소년심사위원상을 받은데 이어, 2001년에는 문승욱 감독의 '나비'가 여우주연상(김호정)을, 2002년에는 김응수 감독의 '욕망'이 상영되면서 우리에게 다시금 다가왔다.

또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제작한 문승욱(한국), 스와 노부히로(일본), 왕 샤오슈아이(중국)의 '삼인삼색' 영화 '전쟁, 그 후'가 비디오 부문 대상을, 다음해 2003년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국제비평가연맹상(FIPRESCI)과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NETPAC), 청소년심사위원 1위상, 국제시네마클럽에서 주는 돈키호테상을 받았다. 이후에도 한국영화의 인연은 이어지고 있다. 2007년에 열린 제60회 로카르노 영화제에는 노동석 감독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경쟁부문에 진출하였고, 노영석 감독의 '낮술'이 제61회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특별언급'과 넷팩상을 수상했다. 제62회 영화제에는 홍상수 감독이 심사위원으로 초대됐다.

로카르노영화제는 상금이 많다. 국제경쟁부문 최우수 작품상인 황금표범상에는 9만 스위스 프랑, 심사위원 특별상과 감독상에는 3만 프랑이 수여된다. 오늘의 감독부문 황금표범상 수상 감독에게 3만 프랑, 심사위원 특별상에는 판권구입조로 3만 프랑이 수여되며, 야외상영작품 중에서 USB은행에서 수여하는 2만 프랑의 관객상과 버라이어티상이 별도로 시상된다.

로카르노영화제는 티치노 주와 로카르노 시의 지원과 주도적인 역할에 의해 운영된다. 역대 조직위원장은 변호사였거나 변호사 출신의 로카르노 또는 무랄토의 시장이 맡아왔다. 2000년부터 6대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마르코 솔라리는 변호사 출신은 아니지만 1944년 티치노에서 태어나 제네바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후 스위스의 거대 슈퍼마켓 체인인 미그로스의 사무국장, 미디어기업인 린지어의 부사장을 역임한 CEO출신이며, 2007년부터 티치노 관광청 사장을 겸하고 있다.

필자가 처음 로카르노를 방문했던 2002년, 마르코 솔라리 조직위원장과 함께 영화제를 이끌던 집행위원장은 이레네 비냐르디였다. 1992년부터 2000년까지 영화제를 이끌던 마르코 뮐러(현재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의 후임이었던 비냐르디는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라 르포브리카의 여성편집국장 출신으로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영화제를 운영하였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는 프레드릭 메르가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이레네 비냐르디는 퇴임 후 이탈리아 영화진흥기구인 '필름 이탈리아' 사장으로, 프레드릭 메르는 '시네마테크 스위스' 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프레드릭 메르에 이어 지난해 9월, 칸 영화제 감독주간 책임자였던 올리비에 페레가 로카르노의 새 집행위원장이 되었고, 올 들어 지난 4일 개막된 제63회 영화제는 그의 데뷔 무대였다. 1971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나 파리4대학 소르본느에서 문학을 전공한 후 1996년부터 2009년까지 프랑스시네마테크의 프로그래머로 있으면서 2004년부터 칸 영화제 감독주간의 책임자를 겸직해 오다가 로카르노로 옮긴 것이다.

필자는 로카르노영화제를 네 번 방문했다. 첫 방문은 2002년 8월 1일부터 11일까지 개최됐던 제55회 영화제에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심사위원으로 참가하면서였다. 아시아영화진흥기구 회장인 인도의 아루나 바슈데프, 부회장이었던 나와 베를린영화제의 영 포럼 디렉터로 있다가 막 퇴임한 울리히 그레고르 등 세 사람이 심사를 맡았다. 개막 전 날 도착한 필자는 오전에는 유람선으로 로카르노-아스꼬나-브리사고 섬을 일주했고, 오후에는 트램과 곤도라로 카르다다의 정상에 올라 로카르노의 전 시가와 호수를 관망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방문한 로카르노는 편안했다. 당시 집행위원장이었던 이레네 비냐르디는 기자 시절에 이미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었고, 부위원장인 테레사 카비나(현재 아부다비영화제 부위원장) 역시 프로그래머 시절부터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을 뿐 아니라 '와이드 앵글 파티' 때 필자의 단골 댄스 파트너였다. 인더스트리 책임자인 나디아 드레스티도 해외에서 자주 만나 잘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여인천하' 로카르노영화제가 더욱 친숙해 보였다. 개막식은 로카르노 옛 성에서 조촐하게 진행됐고, 개막식과 리셉션이 끝난 후 주요 게스트들은 버스로 브리사고로 옮겨 디너파티에 참석했다. 돌아가는 길은 배로 이동하였는데 지난 1일이 스위스의 국경일이었기 때문에 지상에서 쏘아 올리는 화려한 불꽃놀이를 호수 한 가운데 떠있는 선상에서 관람할 수 있었던 '장관'은 잊지 못할 추억이다. 로카르노 터미널에서 하선하여 피아자 그란데에 도착했을 때에는 비가 내리고 있어 오디토리엄 페비로 옮겨 개막영화를 본 것 또한 야외상영을 운영하는 부산국제영화제로서는 배울 점이 있었다. 로카르노의 방문은 계속 이어졌다. 2003년 제56회 영화제 방문에 이어 프레드릭 메르 당시 집행위원장과 테레사 카비나 부위원장의 콤비가 이끄는 2006년 제59회 영화제에도 참석했다. 무엇보다 2007년에 개막된 제60회 영화제에 붉은 장미 60송이를 프레드릭 메르 집행위원장에게 선물하였을 때의 즐거운 기억이 생생하다.

   
올해는 필자의 오랜 친구 올리비에 페레가 새로 이끄는 제63회 로카르노영화제에 부산의 이수원 프로그래머와 함께 참석했다. 그는 조용하면서도 매우 의욕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먼저 상영편수를 줄였다. 적게는 300편, 많게는 400편의 영화를 초청했던 전례를 깨고 올해에는 280편으로 줄인 대신(2006년에는 320편 초청) 월드 프리미어와 신인감독의 첫 번째 작품의 수를 늘려 새로운 영화를 발굴하는 데에 주력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의 감독' 부문은 모두 감독들의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작품으로만 선정했다. 또한 지금까지 전통을 고집해 온 메인 카탈로그의 형태를 지참하기 편리하게 작게 만들었다. 이 카탈로그의 쓰임새는 부산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오랜 전통 속에서 지속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로카르노의 연륜과 깊이는 항상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환갑을 넘은 세계적인 영화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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