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국내외 유명 시인의 표지석이 부산 사하구 감천유림아파트 1차 단지 입구마다 있다. 사진은 서정시인 김영랑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
우리나라는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아파트가 주거의 표준이자 부와 신분을 상징하는 자산으로 자리잡았다. 대도시부터 시골까지 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선다. 브랜드 아파트들은 다양한 주민 커뮤니티 시설을 자랑한다. 화려한 시설은 아니지만 부산 사하구 한 아파트 정원에 시를 새긴 표지석이 있어 눈길을 끈다. 입주민들은 애송시를 읽으며 소소한 즐거움을 누린다.
 |
| 시 ‘귀천’으로 유명한 천상병의 ‘약속’.
|
아파트는 방범 청소 주차 등 여러 면에서 편리하다. 학군 학원 교통 쇼핑 의료 오션뷰 등을 누릴 수 있는 신축 아파트는 선호의 대상이지만 비싼 분양가 때문에 서민에게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무리하게 빚을 얻어서 내집 마련의 꿈을 이뤘지만 빚을 갚는다고 수십 년 동안 허덕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최근 대출 이자의 급격한 상승으로 서민 부담이 더 커지고 있다.
잿빛 콘크리트 건물인 아파트 입주민들의 삶은 각박하고 몰인정하기 쉽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서로 무관심하다. 층간 혹은 벽간의 소음, 화장실 등 실내 흡연, 무매너 주차 등으로 낯을 붉히고 고성이 오가는 일이 흔하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사생활을 지키려고 하는 도시인의 생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미건조한 아파트 생활이지만 사하구 감천유림아파트 1차를 시공한 건설사가 각 건물 출입구 주변 정원에 시를 새긴 표지석을 설치했다. 입주민들은 수십 년째 시를 읽으며 소소한 즐거움을 누린다.
학창시절 시를 좋아하는 이들도 졸업 후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시와 점점 멀어진다. 건설사가 유지 관리비용이 계속 발생하는 커뮤니티 시설 대신에 입주민의 정서 함양과 문화지수 향상을 위해 국내외 애송시를 엄선해 표지석을 세운 것은 탁월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입주민들은 수시로 시를 읽으며 잠시나마 문학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 곳에서 수십 년째 살고있다는 한 입주민은 “출입구 옆에 있는 시를 자주 보니 어떤 시는 외우게 됐다. 시를 읽을 때마다 마치 학창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시가 잠시나마 감성에 젖게 하는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
|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시 ‘가벼운 구름’.
|
감천유림아파트 정원에 있는 시는 다양하다. 류시화, 권우상, 천상병, 김영랑, 김진성, 헤르만 헤세, 윌리엄 워즈워드 등 널리 알려진 국내외 시인들의 작품이다. 천천히 산책하며 시를 음미하는 즐거움이 크다.
감천유림 이외에도 정원에 문학 작품을 볼 수 있는 시설을 세워둔 아파트 단지들이 많다. 자녀 등 가족의 손을 잡고 시비 등을 찾아 눈여겨볼 것을 권한다. 바쁜 도시 생활이지만 시를 읽으면 감성이 풍부해지고 삶에 활력을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