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태종대, 몰운대에 이기대와 신선대를 더하여 부산 5대라 칭한다. 이 중에 부산 남구 신선대를 가 본 기억이 없어 아침 댓바람에 신선대로 향했다.
신선대는 황령산에서 뻗어나온 산등성이가 부산만에 몰입하여 형성된 우암반도의 남단에 해당되며, 이곳은 화산암질로 된 해안이 파도의 침식을 받아 발달된 해식애와 해식동으로 절경을 이룬다. 신선대 주변의 산세는 못을 둘러싼 용의 형상과 같다고 하여 이 일대를 용당이라 부른다. 속설에 의하면 신선대를 절단하여 도랑을 만들 때 사토에서 혈흔이 나왔다고 한다. 또 신라 말 최치원이 신선이 되어 이곳에서 유람하였다 하며, 산봉우리에 있는 ‘무제등’이란 큰 바위에는 신선의 발자국과 신선이 탄 백마의 발자취가 있다는 데서 신선대란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옛날에는 이곳 가까이 가면 신선들이 노는 풍악 소리가 들려 왔다고 한다. 신선대 주차장에서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작은 정자가 나오는데 그 앞에 신선대의 유래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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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남구 신선대에 있는 정자와 안내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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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대 일대는 울창한 송림으로 덮여 있어 솔향이 코끝을 스친다. 사스레피나무, 봄보리수나무, 섬쥐똥나무, 송악, 마삭덩굴 등의 상록활엽수와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자귀나무, 굴피나무 등의 낙엽활엽수가 혼재되어 있다. 멧비둘기, 떼까치, 검은멧새, 굴뚝새, 황금새, 바다쇠오리, 갈매기 등 많은 새들이 안식처로 삼는다.
무제등을 향해 가는 길 중간 께 한국과 영국의 첫 만남을 기록한 기념비가 있다. 신선대부두 일원은 조선과 영국이 처음 만난 의미 있는 장소다. 신선대에 올라 부산항 항박도를 그렸던 윌리엄 로버트 브라우턴 선장이 영국으로 귀국하여 편찬한 ‘북태평양 탐사 항해기’에는 손짓, 발짓으로 채록한 우리말 38단어와 함께 최초로 부산항(용당포)을 서양 세계에 소개했다고 한다. 2001년 영국 앤드류 왕자가 양국이 만난 지 200년을 기념하여 부산을 방문했다. 이날 앤드류 왕자는 부산시와 남구가 준비한 기념비를 제막하고 기념 식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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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부산 남구 신선대를 방문한 영국 앤드류(왼쪽) 왕자가 한·영 교류 기념비 제막을 하고 있다. 국제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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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오르면 무제등이 나온다. 지금은 무제등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포진지의 모습은 남아 있다. 나무에 가려 오륙도가 선명하게 보이진 않았다. 해무인지 황사 때문인지 대마도가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일부 지역은 군사작전지역으로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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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남구 신선대 무제등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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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앉아 오륙도를 보며 이야기 중이던 어르신의 이야기에 의하면 예전엔 군사지역으로 접근도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문화재 및 관광지로 개방되어 누구나 출입하여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고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신선대로 변했다. 신선대 입구에 ‘잘했고, 잘해왔고, 잘할 거야! 신선대’라고 쓰인 글에 가슴이 뭉클했다. 별말 아니었는데 지금껏 살아온 시간에 위로가 되면서 신선대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해봉 시민기자 seanpea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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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신들이 신선대 포진지 흔적에서 부산 북항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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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남구 신선대 포진지 흔적과 부산항 북항과 영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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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지면은 부산시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