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겨울이 되면 화천군에서는 산천어 축제를 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두 번이나 다녀왔다. 얼음 구멍을 뚫고 낚시로 산천어를 잡고 맨손으로 산천어를 잡는 두 가지의 방식으로 체험시켜 준다. 큰아이는 그렇게 추운데도 물속에 들어가서 산천어를 맨손으로 잡아 나오는 경험을 했다. 작은 아이는 낚시로 산천어를 한 마리 잡고는 하는 말이 “아빠, 너무 잔인해!” 나는 어릴 적 낚시를 해 보았다. 친구들과 같이 낙동강에 가서 지렁이를 미끼로 삼거나 떡밥을 이개서, 붕어를 잡는 방식이었다. 지렁이를 바늘에 끼울 때 얘가 얼마나 아플까? 작은 아이도 역시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반드시 아픔을 느낀다. 우리 인간이 상상하는 4차원의 세계가 있다. 지렁이는 점프할 수 없는 선을 따라 움직이는 1차원의 세계에 산다. 개미는 평면 속에서 집을 짓고 약간의 수직 이동하는 2차원의 세계이다. 사람은 건물 등의 구조물을 이용하거나 비행기 등 도구를 사용해 약간의 공간 이동을 하는 3차원의 세계에 산다. 내 나이 또래의 사람은 대부분 어릴 적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에서 생활했다. 그러다가 아파트라는 빌딩 형태의 주거공간에서 수십 층 높이까지의 공간이동으로 생활하고 있다. 어릴 적 땅을 밟고 생활하다가 사물에 완벽하게 적응되어 인지(認知)와 사고(思考)의 능력이 완전히 갖추어지고 나서 고층 아파트에 이사갈 경우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어지럽거나 하여 적응이 잘 안되었을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처음부터 그런 환경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적응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지만.
새는 자기의 능력과 기술로 공간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다. 물고기 또한 바닷속 공간을 순전히 자기의 몸과 힘으로만 이동하는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인간보다 하나의 차원이 높은 공간에 살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인간을 먹이로 사냥하는 4차원의 공간에 있는 생명체가 우리 인간을 인간이 물고기를 잡는 방식으로 낚아 올린다면, 인간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끔찍하다. 물속에는 의사도 없다. 인간이 낚아 올렸다가 놓아주는 물고기는 대부분 치어이다. 큰 물고기는 인간이 절대로 놓아주지 않는다. 낚싯바늘에 아가리가 걸려 있는데, 그걸 무자비하게 뜯어서 물속으로 던져 버린다. “내가 자비심을 베풀어 너를 살려준다.” 참으로 웃기는 발상이다. 물속에는 병원이 없다. 아가리가 터져버린 물고기는 먹이 섭취를 하지 못하여 굶어 죽는다. 야생의 동물은 다리가 조금이라도 다치면 굶어 죽는다. 어떤 동물도 동물끼리는 도와주지 않는다. 동물의 어미는 새끼를 살리기 위해서 먹이를 공급해 주기도 하지만, 알을 낳는 물고기는 자기 새끼를 알지 못한다. 다만 집단 속에서 서로를 보호할 뿐이다.
낚시를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불교의 계율 중에 살생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 무조건 죽이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원광법사의 화랑도에도 살생유택이라는 조항이 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하여 고기 생선 등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 어찌 죽이지 않고 고기류를 섭취할 수 있나. 다만 재미로 죽이지 말라는 것이다. 세 번의 과정이다. 첫 번째 생산자이다. 축산업, 어업을 직업으로 하여 생활하는 사람들이 생산한 고기를, 두 번째 이러한 상품을 유통시키는 도매상인, 세 번째로 직접 시장에서 내다 파는 상인의 손을 거친 고기를 사 먹으면 된다. 재미로 하는 낚시나 수렵행위를 하는 것은 별로 좋은 것 같지는 않다.
수렵행위를 하는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비난과 비판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낚시를 하는 사람에 대한 비판은 별로 들어 보지 못했다. 나는 그 이유를 인간의 공간에 대한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물고기는 인간보다 넓은 공간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고차원의 생명체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 세상의 어떠한 물고기도 인간의 발바닥 아래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발바닥 아래. “에이 내 발바닥보다 못한 놈.” 사마중달이 삼국시대 종지부를 찍으면서 위나라의 승상을 지그시 발로 찍어 누른다. 그런 인간의 착각이 물고기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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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문 어업인·쌍끌이 대형기선저인망 선주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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