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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공모전
부산도시공사

속살이 드러나도록 발가벗겨진 송공단

주차장 확장공사로 위태로운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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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충절의 고장인 동래. 하지만, 문화재 보존엔 문제가 있다. 한때 번성했던 동래시장이 최근 할인점에 밀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와 부산시는 전통시장 살리기에 발을 맞추어 주차시설과 편의시설 확충을 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동래시장 후문 쪽의 기존주차장 확장공사를 하면서 송공단(宋公檀) 건물 모습이 벗겨져 문화재 훼손이 우려된다.
 
동래는 부산의 역사이며, 동래부 동헌(東萊府東軒), 동래향교(東萊鄕校), 충렬사(忠烈祠), 장관청(將官廳) 군관청(軍官廳), 동래읍성지(東萊邑城址) 등 보존해야 할 문화재가 많이 있는 곳이다.

송공단(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229-78)은 1972년 6월26일 부산광역시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되었다. 농주산(지금의 동래경찰서 자리) 전망제단인데, 이 제단은 1608년(선조 41) 동래부사로 부임한 이안눌(李安訥)이 송상현의 기제사를 올리기 위하여 동래읍성 남문 밖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설치하였던 것이다. 1742년(영조 18) 동래부사 김석일이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이 순절한 정원루가 있던 자리에 설치한 단이다. 송상현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 장렬히 싸우다 순절한 여러 선열을 모시어 충절을 기리고 있는 제단이다. 부산에서 순절한 분들은 정공단, 다대포에서 순절한 분들은 윤공단으로 옮겨 제사를 지내게 되었고, 일제강점기 이후부터는 음력 4월 14일로 날짜를 옮기어 제사를 올리고 있다.

부산의 뿌리인 동래구에는 수많은 문화유적지가 있다. 1601년~1876년까지 동래에 왜관이 존재하면서, 우리나라에 외국인이 존재하는 열린 공간의 도시였다. 대일 무역의 중심지로 동남해안을 연결하는 경상도 지역의 중심포구였다. 금정산, 낙동강 인접, 천연 동래온천을 중심으로 놀이문화가 발달하여, 동래야류, 동래학춤 등 민속예술인 무형문화재도 많다. 우리나라의 문화재관리가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지방문화재 관리는 예산 등 인식 부족으로 많은 문화재가 방치되고 있다.

지방도시 중 부산의 문화재관리는 잘되고 있지만 미흡한 부분도 있다는 김동철 부산대학교 사학과 교수&40;한국민족문화연구소장&41;는 본래 자리에 있어야 하지만 도심지의 개발로 조선 후기 동래부의 바깥 대문인 동래독진대아문(東萊 獨鎭大衙門)이라고 쓰인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동래 금강원 입구에 옮겨 세워져 있다. 동래부 동헌은 동래시장 바로 옆&40;농협 동래지점 앞&41;에 있다. 조선시대 동래부사가 공적인 업무를 보던 곳으로 국방 및 대일 외교상 중요한 관아시설로 다른 고을에 비해 규모가 컸다. 정3품 당상관인 부사가 재임하였고 인조 14년 동래부사 정양필이 창건, 숙종 37년 동래부사 이정신이 충신당 현판을 걸은 조선후기 건축이다.

동래를 다니다 보면 곳곳에 유적지가 있던 곳에 표지석이 서있는 곳이 많다 원형을 잃거나 한번 손상이 되면 복원이 어려우며, 잘 보존해야 할 문화재관리에 허점은 없는지 속살이 드러난 송공단 관리에 온 힘을 쏟아 주기 바란다.

 

송공단 정문

송공단 내부 제단

왼쪽 담벼락이 훼손되어 있다

공사로 때문에 위태로운 건물

흙을 걷어낸 송공단의 모습

담장은 허물어지고

동래부 동헌&40;東萊府東軒&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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