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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뿌리 - 단군조선을 찾아서 <4> 잠든 임둔군을 깨우다

요서땅 `임둔군`은 고조선 유물의 寶庫

고조선→위만조선→한나라 한사군…

요서 태집둔 일대는 한사군 임둔군 자리

이곳 토성 유적서 태수직인 '봉니' 출토 인근지역서 쏟아진

청동거울·질그릇 등 중국의 학계에서도고조선 계통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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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성 금서시 태집둔에 있는 고조선시대의 토성터. 가운데 둔덕처럼 솟아난 부분이 토성이다. 옛 고조선의 근거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창희 기자


이국 땅의 솟대

두엄 냄새가 후룩 끼쳐왔다. 농도가 진하다. 중국의 농촌 두엄은 한국보다 더 독한 것 같다. 사람이 다르고 음식이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을 지 모른다. 그런데 '중국산 농산물'에 대한 선입견만 아니라면, 풍토가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길가의 포도밭과 나지막한 산지의 밭을 차지한 콩과 옥수수는 길손을 편안하게 한다.

비온 뒤라 땅이 질척거린다. 답사단이 가는 곳은 랴오닝성(遼寧省) 금서시(錦西市) 태집둔(邰集屯) 소황지(小荒地). 요서(遼西)의 중서부로 발해만에서 약 30㎞ 떨어진 곳이다. 요서 땅은 남북으로 길게 누운 노노아호(努魯兒虎) 산맥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광활한 평원지대가, 서쪽으로는 해발 500m 이상의 고원지대가 펼쳐진다. 역사적으로는 동북아시아의 인후부 역할을 한 곳이다.

"어, 솟대다!"

답사단의 누군가가 장대를 발견하고 놀라 소리친다. 높이 4m 가량의 장대 끝에 새 모양의 조형물이 올라앉아 있다. "중국땅에도 솟대가 다 있네…." 궁금증이 발동했지만 누구도 섣불리 해석을 못한다. 소황지 마을 주민에게 슬쩍 물었더니 "오래전부터 믿음으로 세워져 있던 것"이라고만 짧게 얘기한다.

솟대문화는 시베리아 만주 몽골 일본 등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으나 대부분 소멸되고 한국에만 토착화돼 남아 있다. 기원은 고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한시대에는 소도(蘇途)에 솟대를 세워 신성구역임을 표시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곳에서 '임둔태수장(臨屯太守章)' 봉니가 나왔죠." 금서시 태집둔 유적에서 복기대 교수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임둔군의 존재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봉니에 찍힌 인장.
2000년만에 찾아낸 '임둔'

소황지 마을 주민들은 두엄 냄새에 파묻혀 살면서도 표정들이 순박했다. 20여 명의 답사단이 질퍽해진 포도밭과 콩밭을 가로질러 걷는데도 눈살을 찌푸리기는커녕 잔잔한 미소를 돌려준다. 얼굴 가득 팬 주름들이 밭이랑을 닮은 듯 했다. 철길을 건너고 포도밭을 지나자 들판의 개활지에 나지막한 둔덕이 나타났다. 만약 전투가 벌어진다면 이러한 둔덕이 곧 천연의 성벽이 될 것 같았다.

"이곳이 토성터예요. 기원전 20세기까지 올라갑니다. 여러 시기의 유물이 나왔는데, 하가점(夏家店) 하층문화 것도 적지 않았어요. 바로 고조선 문화죠. 자, 땅도 보면서 걸으세요. 아주 이른 시기의 토기편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복기대 교수가 현장 강의를 한다. 한마디 한마디가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복 교수는 7년 간 요서-요동지방에서 고고학 발굴에 참여한 고고학자다. 걷다보니 그의 말대로 곳곳에 토기 쪼가리가 눈에 띈다. 토성은 둔덕의 자연지형을 이용한 것으로 높이가 2~4m 정도였다. 지형탓인지 보호조치가 되지 않아 일부는 허물어지고 있었다.

둔덕을 따라난 토성을 돌아나오자, 잡풀이 무성한 언덕빼기가 눈앞에 나타난다. 복 교수가 답사단을 불러 모았다. "이곳에서 봉니가 나왔어요. 역사적인 자리예요. 사진이라도 한판씩 찍어두세요."

그의 말 속에는 실로 엄청난 역사적 무게가 실려 있다. 한사군(漢四郡)의 하나인 임둔군(臨屯郡)의 새로운 입지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정적 유물이 '임둔태수장'(臨屯太守章)'이라 적힌 봉니(封泥)다. 봉니는 고대 중국이나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공문서 등을 봉할 때 사용한 진흙덩이로, 예외없이 직인이 찍혀 사료가치가 아주 높다. 그런 봉니가, 그것도 '임둔'이란 직인이 찍힌 채 나왔다고 하니 역사적일 수밖에.

한사군은 기원전 108년 한(漢)나라가 고조선(위만조선)을 무너뜨리고 그 영역에 설치했다는 낙랑·임둔·현도·진번 등 한의 4개 행정구역을 말한다. 이는 한국 고대사의 뇌관이자 아킬레스건이었다. 그 위치를 어디로 보느냐에 따라 고조선사가 왔다 갔다 한다. 그런데 임둔군이 요서 땅에 있었다는 증거가 나왔으니….


서한(西漢)의 인장이 확실

태집둔 토성 유적은 지난 1993~94년 지린대(吉林大)박물관과 랴오닝성 고고문물연구소 조사팀에 의해 발굴됐다. 조사 결과 놀라운 사실들이 드러났다. 기원전 24세기부터 기원전 14세기의 하가점 하층문화를 비롯해, 후대의 요나라 시대까지 크게 4개로 구분되는 문화층이 확인된 것이다.

이 중 '임둔태수장' 봉니는 가로 세로 크기가 3x3㎝로, 중심 연대가 서한(西漢)에 해당하는 제3기 문화층에서 출토됐다. 요서지방의 청동기를 집중 연구해온 복 교수의 심안이 봉니를 놓칠 리 없었다.

"이거구나 싶었죠. '임둔' 봉니는 문헌이나 비교 자료로 볼때 규격과 서체, 문장 등이 서한의 규정과 일치합니다. 그러니까 한나라 조정에서 임둔군 태수(군 우두머리)에게 보낸 것으로 봐야 합니다."

지난 2002년 복 교수가 쓴 '임둔태수장 봉니를 통해 본 한사군의 위치'라는 논문을 보면, 논증이 구체적이고 치밀하다. 봉니의 글씨는 전서체로 한대(漢代)의 관가 또는 묘지에 쓰는 서체와 같고, 재질과 제작 방식도 시대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당시 한(漢)은 2000석 이상의 녹을 받는 관리는 은인(銀印)을 사용하게 했다. 태수(太守)는 은인 사용자에 해당하므로, 임둔군 태수 인장에 '臨屯太守章(임둔태수장)'이라 적은 것은 서한의 중앙정부 규정과 부합한다는 것이다.

복 교수의 논문이 발표됐을 때 국내 언론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한사군의 위치를 재검토하게 하는 결정적 자료로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단 사학계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나름대로 애쓴 논문이고 고대사의 쟁점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촉발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였어요. 고조선 연구는 이래서 힘들어요. 웬만해선 쳐다봐 주지를 않으니까…." 복 교수는 말끝을 흐리면서도, 진짜 욕심은 다른 데 있다고 했다. "제 욕심 같아선 저쪽 태집둔 토성터 전부를 파보고 싶어요. 봉니 못지않은 고조선의 중요한 유물이 나올 가능성이 있어요. 다만, 돈이 문제겠죠."


태집둔 유적지에 솟은 우리 민족 정취가 물씬 풍기는 솟대.
토착민들은 고조선 사람

태집둔 유적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자, 복 교수가 다시 가닥을 잡아준다.

"태집둔 지역에는 토착민들이 있었는데, 저는 그들을 고조선 계통으로 봅니다. 이른 시기의 유물을 검토해보면, 황하문화와 다르다는 걸 알수 있거든요. 그러다 고조선이 쇠퇴하는 전국시대로 접어들면 황하문화 요소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시점에 서한의 지배층이 태집둔 지역에 들어갔고, 중앙에서 만든 '臨屯太守章'이라는 인장을 사용하다 봉니로 남긴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인가. 이 지역이 임둔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추론은 문헌에 나타나는 역사적 정황과도 맞아 떨어진다. 기원전 300년께 고조선 세력에 위협을 느낀 연나라 소왕(昭王·기원전 311~279)은 전투 경험이 많은 진개(秦開)를 앞세워 고조선을 치게 한다. 이때 고조선은 큰 타격을 입고 요동-한반도 북부로 근거지를 옮긴다.

100여년 후 다시 큰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연나라 왕의 부장으로 있던 위만(衛滿)이 혼란기를 틈타 1000여 명을 이끌고 고조선으로 망명, 쿠데타를 일으켜 고조선의 준왕(準王)을 몰아내고 '위만조선'을 세운다(기원전 194년 무렵). 그 뒤 서한 중기에 이르러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무너뜨리고 한사군을 설치했다. 이를 전후해 태집둔 지역에는 임둔군이 들어섰고 서한의 지배층이 이주해 그들의 문화를 남기게 된다.

태집둔 일대가 고조선의 근거지였다는 것은, 봉니와 함께 수습된 유물과 인근 유적지의 고고학 자료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태집둔에서 멀지 않은 금서와 조양, 건평 등 요서 중서부 지역에서 조사된 굵은 승문(繩文)이 새겨진 질그릇과 비파형동검, 잔줄무늬 청동거울 등은 모두 고조선 계통으로 분석된다. 이는 중국 학계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어떤 중국인 학자는 사견을 전제로 요서지역의 이른 시기 유물을 아예 고조선 문화라고 단정한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한국의 희한한 연구 풍토다. 고조선에 대해 누구도 구체적으로 연구하려 들지 않고, 연구해서 발표하면 외면하고 애써 회피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 한국 상고사는 사실상 무주공산이다. 딱히 인정할만한 정설(定說)도 없고, 통설(通說)도 없다. 아니 설자리가 없다.

포도밭을 지나 돌아나오면서 들어갈 때 본 솟대를 다시 봤다. 솟대 위의 새 조형물이 날아갈 듯 가벼워 보인다. 솟대의 새도 날고 싶은가보다. 이곳의 원주민 혹은 토착민은 고조선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저 솟대는 고조선 하늘을 향해 솟은 희망의 안테나, 고조선의 꿈과 희망을 전하는 메신저가 아닌가.


■ 가열되는 한사군 논쟁

- '낙랑 = 대동강설' 식민사관의 산물, 한사군 요서위치설 새 가설로 급부상


"한사군이 뭐죠?"

"낙랑·임둔·진번·현도요."
"언제 어디에 있었던거죠?"

"…서북한 일대에 포진해 있지 않았나요."

나이 40세 이상인 사람들은 초·중학교 때 이런 식으로 '한사군'에 대해 배웠다. 그때 외웠던 한사군은 모두 한반도 안에 자리했다. 이런 이론을 만든 세력은 일제 식민사학자들이었고, 이를 퍼뜨린 사람들은 그들의 이론을 수용한 한국 강단사학계였다. 해방 이후에도 한국 사학계는 이병도-이기백의 주장을 이어받아 한사군의 위치를 '낙랑→대동강, 진번→자비령 이남~한강 이북, 임둔→한남, 현도→압록강 중류'로 비정해 정설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정설에 도전하는 새로운 가설들이 최근 속속 소개되고 있다. 단연 주목되는 것이 한사군의 요서위치설이다. 윤내현 단국대 명예교수가 뼈대를 세운 후, 복기대 교수가 고고학적 자료로 뒷받침하고 있고, 민족사학 계열 학자들이 가세하고 있다.

중국 사료를 치밀하게 고증해 고조선사를 연구해온 윤내현 교수는 낙랑과 진번·임둔은 중국의 롼허(蘭河·난하)와 다링허(大凌河·대릉하) 사이의 요서지역에 있었다고 단언한다. "중국 고대 역사서인 '한서(漢書) 지리지'와 '진서(晉書) 지리지'에 보면, '기자가 망명해 간 곳은 낙랑군에 있는 (28개 현 가운데 하나인) 조선현이다'라는 주가 달려 있다. '한서 지리지'는 조선현 근처에 수성현이 있다고 했고, '진서 지리지'는 수성현에는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갈석산(碣石山)이 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사마천이 쓴 '사기'에는 갈석산을 '발해 서북쪽, 롼허 유역에 있다'고 명시했다. 이러한 사료들을 종합해본면 한무제가 설치했다는 한사군은 롼허 부근의 요서지역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윤내현 교수)

사학자 심백강 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는 지난해 '황하에서 한라까지'(참좋은세상)라는 책을 통해 요서 위치론의 중요한 근거로 '낙랑'이란 명칭의 유래를 밝혀 관심을 끌었다. "다링허 유역에는 요락수(饒樂水)와 백랑수(白狼水)가 있었는데, 바로 이 두 강의 이름에서 '낙랑'이란 말이 생겼다. 시라무렌허(西拉木倫河)로 불리는 서요하 상류가 한나라 때 요락수로, 그 아래쪽의 다링허는 백랑수로 불렸다. 따라서 낙랑군은 랴오허와 롼허를 동서로 하고, 다링허와 시라무렌허를 남북으로 하는 지역에 있었던 것이다."

사학자 이덕일 김병기 씨가 2006년 말 펴낸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역사의 아침)란 책에서도 한사군의 요서중심설이 비중있게 다뤄졌다. 저자들은 "612년 수양제가 112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칠 때 평양으로 집결하라는 명령과 함께 침공로에 낙랑·현도·임둔 등 한사군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런데 낙랑이 대동강 유역의 평양이라면 명령 자체가 모순이 된다"며 '낙랑=대동강설'을 공박한다.

그렇다면 대동강 유역에서 발견된 낙랑 유적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이에 대해 이덕일 씨 등은 "대동강 유역의 낙랑세력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낙랑국(樂浪國)이며, 그곳의 중국계 유물은 서기 44년 후한 광무제가 낙랑국을 공격하면서 남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심백강 박사도 비슷한 주장을 편다.

낙랑을 비롯한 한사군 위치 문제는 여전히 '타오르는' 논쟁거리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중국이 이를 동북공정의 주요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한사군을 한반도 내로 가두어 그들의 역사영토를 넓히려 한다. 심백강 박사는 "낙랑군의 위치를 바로잡는 것은 일제 식민사학을 극복하는 차원을 넘어 동북공정에 올바르게 대응, 우리 역사를 지키는 길이 된다"고 말했다.

협찬: sk텔레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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