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비대면 경제’, ‘사회적 룰 만들기’가 시급하다

‘실업보험 신청건수 2637% 증가. 맨해튼 쓰레기 수거량 7% 감소. 보호견 입양 희망자 3000명. 오전 전기사용량 18% 감소. TV소음에 대한 불만 42% 증가. 지하철 승객수 90% 감소. 시내 범죄율 19.9% 감소. 가장 혼잡한 교량·터널 교통량 60% 감소. 자원봉사 등록자수 288% 증가. 푸드뱅크 37% 폐쇄. 뉴욕시 대기오염 25% 감소’.

미국 ‘뉴욕타임스’ 4월 22일 자에 소개된 ‘코로나19 이후 변화된 뉴욕을 보여 주는 11가지 숫자(11 Numbers That Show How the Coronavirus Has Changed N.Y.C.)’라는 기사의 핵심이다. 재미있는 것은 교통량은 줄었지만 과속은 증가했고 가정폭력이 줄었으나 신고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덧붙여놓았다. 미국 뉴욕 이야기지만 우리나라도 대도시의 경우 어느 정도는 비슷한 양상일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거리 두기’나 ‘생활 속 거리 두기’로 다양한 사회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비대면 경제(untact economy)’의 활성화이다. 비대면 경제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전자상거래의 급증, 특히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대면접촉 없이 사회적·경제적 활동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재택근무나 온라인쇼핑, 배달서비스, 드라이브 스루, 온라인 수업, 앱을 통한 화상회의 등이다. ‘untact economy’라는 말은 김난도 등이 펴낸 ‘트렌드 코리아 2018’(2017)에서 처음 소개된 신조어로 ‘비대면 경제’가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말은 아니다. 해외 매체에서는 ‘non-contact(비접촉)’ 또는 ‘zero-contact(무접촉)’ 이란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어쨌든 우리나라가 이 분야에서는 선도적인 셈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추산한 코로나19로 인한 세계경제 손실규모는 최대 1경818조 원에 이른다. 대부분이 사람간 접촉과 직접 이동이 있어야 가능한 기존 경제활동 영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3대 국제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는 코로나가 디지털화를 촉진할 강력한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파이낸셜뉴스·2020년 6월 28일)

코로나19 이후 우리나라의 비대면 경제는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3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동향에서 주요 오프라인과 온라인 유통업체 매출 비중은 50% 대 50%로 동률을 이뤘다. 그동안 오프라인이 6 대 4 정도의 강세를 유지해 왔지만 처음으로 온라인에 따라잡힌 것이다. 구체적으로 온라인 유통이 50%, 대형마트는 17.9%, 백화점은 11.2%, 편의점 16.2%, 기업형 슈퍼마켓(SSM) 4.6%다.(이데일리·2020년 5월 17일)

‘사회적 거리 두기’로 식음료 등 생필품 수요는 늘었지만 의류·고가품의 소비는 큰 타격을 입었다. 백화점과 면세점 매출이 급감했다. 초중고·대학은 온라인수업을 실시하고 이에 따른 온라인 사교육 시장도 늘어났다. 이와 함께 전염병 예방과 방역에 AI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코로나19 치료법 개발에도 AI가 활용되고 있다. AI 개발에 특화된 구글 자회사 딥마인드는 의료용 AI 알파폴드를 활용해 코로나바이러스 단백질 구조를 분석 중이다(http://koreanlii.or.kr). 전 세계 물류 로봇 시장은 2018년 36억5000만 달러에서 2022년 224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연합뉴스·2020년 6월 22일)

	코로나19 감염리스크 상위 직업군. 출처=The New York Times(Mar. 15. 2020)

이제 코로나19로 인해 직업 선호도도 달라질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2020년 3월 15일 ‘코로나19 직업별 감염리스크(The Workers Who Face the Greatest Coronavirus Risk)’라는 기획기사에서 약 1000개 직업의 코로나19 관련 리스크 정도를 분석해놓았다. 해당 직업의 취업인구, 수입, 감염위험 노출 정도, 사람과 접촉횟수, 근접 수준 등의 데이터베이스로 분석해 0~100점으로 정리했는데 100점으로 갈수록 고위험군이다.

그 결과 리스크와 직업군을 살펴보면 △리스크가 높은 직업(치과위생사·치과의사·호흡기치료사·방사선기술자·외과전문의·물리치료사 등) △리스크가 약간 높은 직업(승무원·버스기사·유치원초등교사·소방관·미용사·교도관·약사 등) △리스크가 다소 낮은 직업(식당 종사자·접수안내원·택배기사·사무원·택시기사·파일럿·건설노동자·환경미화원 등) △리스크가 낮은 직업(재무분석가·마케팅전문가·건축가·그래픽디자이너·컴퓨터엔지니어·화가·경제학자 등)으로 대별된다. 리스크 점수는 치과위생사 99.7, 치과의사 92.1, 승무원 75.6, 식당종사자 45.5, 재무분석가 19.3으로 나타났다.

직업과 감염 리스크는 ‘사회적 거리 두기’ 차원에서 ‘재택근무’ 가능 여부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 재택근무가 가능한 사람이 29% 정도이고 나머지 71%는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은 미국의 고소득자들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며, 가정에서 작업할 수 있는 비율은 상위 25%의 경우 61.5%인데 비해 하위 25%는 9.2%에 불과했다고 전한다.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경우 기존의 재정적 어려움에다 건강상 위험 증가에 직면하는 등 소득이 낮을수록 더 많은 피해를 보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노동자의 소득분포와 재택근무 가능비율 비교. 출처=Bureau of Labor Statistics

이러한 점에서 ‘비대면 경제’ ‘비대면 사회’에 대한 면밀한 연구와 함께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이라는 오랜 화두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첫째, 비대면 경제도 사회적 불평등을 반영하기에 이에 대한 정부의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비대면 경제로 대면경제 매출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특히 중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자금지원과 세금감면이 절실하다. 반면 독과점적 대형 온라인쇼핑에 대한 적정한 과세 부과체계 정비가 필요하다. 이참에 ‘지자체 재고농산물 헐값으로 팔아주기’ 일회성 캠페인이 아니라 광역지자체 차원에서 지역농산물판매 공공온라인쇼핑몰 개설도 고려할 만하다. 그리고 온라인쇼핑 관련 소비자보호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하고, 관련 택배종사자의 교육과 안전 및 복지 향상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온라인쇼핑의 편리성을 보장하면서도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는 입법이 절실하다. 최근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FOBES)’는 △비접촉 의사소통 확대 △디지털 인프라 강화 △사물인터넷 및 빅데이터 활용 모니터링 △AI 기반 신약 개발 △원격의료 △온라인쇼핑 △로봇 의존도 증가 △e-스포츠 부상 △디지털 이벤트 증가 등 비대면 경제가 이끌고 올 9대 과제를 선정했다. 그 중 가장 각광받는 분야는 온라인쇼핑이다.(이데일리 2020년 6월 27일) 이런 점에서 원격기술과 관련 라이선스, 데이터 및 사이버보안 등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고, 5G 통신망, 인터넷, IT기기 등 비대면 경제의 사회적 인프라 구축 과정에 중소상공인·자영업자 등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둘째, 비대면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노베이션(혁신)’을 존중해야 한다. 미국 경제학자 윌리엄 J. 보몰(William J. Baumol)은 ‘혁신적 기업가의 마이크로이론’(The Microtheory of Innovative Entrepreneurship·2010)에서 ‘경제적 성장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낳고, 실현시킴으로써 달성된다’며 ‘성장의 저해요인인 시장의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기업가의 이노베이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몰은 새로운 사업을 창조하는 ‘혁신기업가’가 경제의 혁명적 성장을 일으킨다며 혁신기업가는 발명된 아이디어나 제품을 일반인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전환하는 일을 한다고 말한다. 그는 기업가정신은 토지, 노동력, 자본에 이은 제4의 ‘생산요소’라며, 정부 차원에서도 중소기업이 만들어내는 이노베이션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소유권, 계약이행의 강제, 특허권 보호, 그리고 새로운 기업의 설립을 방해하지 않는 법률 제정, 기초연구 자금제공 등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경제와 관련된 책들이 제법 나오고 있는데 이 중 닛케이BP무크지 ‘코로나 이후 보아온 7가지 메가트렌드(アフタ-コロナ見えてきた7つのメガトレンド·2020년 6월)’의 핵심은 코로나 위기가 수습된다고 해도 이미 세계는 원래대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감염으로 이어지지 않는 여행 △코칭으로서의 교사의 역할 △정부 감시를 피하면서 대다수가 합의할 수 있는 데이터 활용문제 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한다. 주거방식이나 근무형태도 △분산형 도시 △직주융합 △감염경로 추적 앱 △접촉을 피하는 기술 ‘콘택트 리스텍’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자유롭게 오가는 뉴리얼리티 △디지털 렌딩(비대면 대출) △단순화를 통해 중저가품을 생산·공급하는 ‘알뜰형 이노베이션(frugal innovation)’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직업별 리스크 점수. 출처=visualcapitalist.com

셋째, 재택근무에 따른 새로운 근무규칙 제정이 필요하다. 특히 젊은층의 경우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기에 주거공간과 업무공간이 적절히 분리돼야 하며, 이에 따라 탄력적인 근무규칙 적용이 필요하다. 따라서 오전 9시~오후 6시의 틀에 짜인 근무시간은 바뀌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근로기준법의 개정 보완이 필요하다. 코로나시대에 요구되는 진정한 재택근무방식은 회사업무와 더불어 사생활이 보장되어야 하고, 개인의 워라벨을 존중하는 준칙을 노사합의를 통해 만들어가야 한다.

넷째, 이와 함께 비대면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가짜정보의 난무’와 ‘비대면 사기행각’을 제도적으로 철저히 막아야 한다. 지금도 많은 국민들이 보이스피싱에 시달리고 있지만 앞으로 비대면 경제와 관련된 각종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 특히 민법의 사회질서·선량한 풍속에 위반한 온라인상술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시급하다.

다섯째, 비대면 사회와 관련해 기존의 학교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비대면 수업 전환이라는 교육방식의 변화를 넘어서 교육내용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이 왜 오게 됐는지, 앞으로는 어떤 사회가 될 것인지, 가정이나 일, 지자체, 국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등 철학적 물음을 묻고 답하는 새로운 학습훈련이 이뤄져야 한다. 지금까지의 교육이 정답이 있는 문제의 해답을 찾는 수렴적 접근방식에 치중했다면 이제부터는 상호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정답이 없는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발산적 사고’를 키우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지식교육,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과감히 탈피해 지속가능성, 창의성을 중심으로 한 미래지향적 교육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비대면 경제, 비대면 사회가 현실로 다가왔다. 제4차 산업혁명도 이미 진행되고 있다. 비대면 경제는 무엇보다 정부와 기업가·시민과의 부단한 ‘이노베이션’과 ‘커뮤니케이션’을 요구하고 있다. 김해창 경성대 건설환경도시공학부 교수 hckim@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