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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창 교수의 ‘재난의 정치경제학’<14> 감염병 대응 위해 기업의 ‘건강안전경영’ 시스템 구축해야

  • 김해창 경성대 교수
  •  |   입력 : 2020-06-01 11: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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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감염병 대응 위해 기업의 ‘건강안전경영’ 시스템 구축해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WHO(세계보건기구)와 절연을 하겠단다. 전 지구적으로 힘을 모아도 어려운 판국에 자국만의 이익, 아니 대통령 재선 욕심으로 드러나는 웃고픈 현실이 황당하다. ‘K-방역’이라고 할 정도로 세계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우리나라이지만 방역 현장은 하루하루 살얼음판이다. 최근 쿠팡 물류센터 배달 관련 종사자들의 대거 확진 판정은 느슨한 ‘생활 속 거리두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기업의 ‘안전 불감증’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모든 방역을 국가 질병관리본부에만 떠맡길 일이 아니다. 생산의 주체인 기업도 스스로 ‘건강안전경영’에 나서야 할 때다. 그래야 코로나19시대에 기업이 산다. 바야흐로 ‘감염병과의 공존’ 시대, 행정·민간 기업이 중장기적으로 감염병 대책을 함께 세우고 실천해야 할 때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을 중심으로 정체불명의 폐렴이 발병했다고 WHO에 보고된 지 5개월만인 2020년 5월 31일 현재 전 세계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총 615만3000명을, 누적 사망자 수가 37만1000명을 넘었다. 이 중 미국의 누적 사망자가 10만6000여 명으로 전 세계 누적 사망자의 28.4%를 차지한다. 우리나라는 누적 확진자 수 총 1만1468명에, 전체 사망자가 270명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WHO 탈퇴 및 자금지원(2019년 4억 달러, WHO 예산의 약 15%) 중지 의사를 밝힌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전 세계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미국이 주최하는 올해 선진 7개국(G7) 정상회의에 불참 의사를 밝혔다. 미국 조지타운대 로런스 고스틴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WHO 탈퇴 표명은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위험하며 의회의 승인 없이 WHO를 탈퇴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선진 G7의 리더십이 무너지는 모습이다.

1948년 발족한 WHO는 국제 공중보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유엔 전문기관이다. 주로 보편적 건강관리 옹호, 공중보건 위험 감시, 건강 비상사태에 대한 대응 조정, 그리고 인간의 건강과 안녕 증진 역할을 주로 해왔다. 특히 천연두와 소아마비 퇴치, 에볼라 백신 개발 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으며 현재 감염성 질병, 특히 에이즈, 에볼라, 말라리아 및 결핵, 심장병·암과 같은 비소통성 질병, 건강한 식생활, 영양, 식품안전, 직업건강, 물질남용 방지 등에 우선 순위를 두고 활동해왔다.

WHO 전문가들은 ‘대유행(팬데믹)이 일어나게 되면 제2, 3파(波)가 따르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2005년 WHO가 발표한 ‘대유행 위험분석을 통한 AI(Avian influenza: assessing the pandemic threat)’라는 보고서에 잘 나와 있다. 이 보고서는 2004년 유행한 AI(H5N1형)에 관한 보고서로 그 중 스페인독감(1918-1919), 아시아독감(1957-1958), 홍콩독감(1968-1969) 등 20세기에 발생한 세 가지 독감 대유행을 분석해 12가지 교훈을 도출해놓았다.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대유행은 바이러스가 그때마다 달라 예측이 불가능하다. 20세기에 발생한 대유행은 사망률이나 위독성, 감염확산 패턴이 매번 달랐다. 이들 대유행은 매우 짧은 시간 동안 감염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급격한 의료 필요성을 낳는다. 바이러스 감염력은 제1파에 영향을 받지 않았던 연령대나 지역이 제2파에는 취약해지고 뒤로 갈수록 더 심각해졌다. 스페인독감은 2~3개월 만에 수그러들었지만 이후 더욱더 강력해져 돌아왔다. 아시아독감의 경우, 제1파는 학교 아이들 중심에서 일반사회로 확산됐지만, 제2파는 합병증 위험이 높은 고령자에게 퍼졌다. 대부분의 감염병은 아시아 지역, 오리나 돼지와 가까운 인구밀집지역에서 나왔다. 특히 동물 인플루엔자와 인간의 특이한 호흡기병 발생이 조기 경고 기능을 한다. 방역은 대유행의 확산을 늦출 수는 있었지만 막을 수는 없었고 격리와 여행 제한도 별 효과가 없었다. 집회 금지와 학교 폐쇄는 일시적으로 유효하나 장기간은 불가능하다. 백신의 효과성도 검증의 여지가 있었고 그나마 국내 생산설비가 있는 나라만 생산이 가능해 대규모 백신 공급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최상의 시나리오에서도 감염병은 만성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 과도한 사망률을 야기한다.

어찌 보면 인류 역사는 바이러스와의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야생동물이나 가축과의 접촉을 막는 게 원천적으로 중요하다고 하지만 경제성장과 격리문제는 실생활에서는 상충한다. 세계적인 의료전문가들은 감염병은 박멸하거나 퇴치할 성질이 아니라 인류의 새 친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제언한다. 야마모토 타로 나가사키대 열대의학연구소 교수는 “수많은 감염증은 인류 사이에 퍼지면서 잠복기간이 장기화되고 독해지는 경향이 있다. 병원체의 바이러스나 세균에게 인간은 숙주이다. 숙주의 죽음은 곧 자신의 죽음을 뜻하기에 병원체 쪽에서도 인간과의 공생을 목표로 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나간다. 감염증에 대해서는 ‘박멸’보다 ‘공생공존’을 목표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아사히신문·2020년 3월 11일)

글로벌시대에 바이러스 감염 확대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는 WHO의 재건 필요성과 함께 각국 정부의 공공의료 영역 확대와 더불어 실제 생산을 담당하는 기업의 역할 증대가 절실하다.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고령자가 감염병에 취약한 계층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도 정부 차원에서의 방역만이 아니라 평소 기업 차원에서의 방역, 즉 건강안전관리가 중요하다. 유럽이나 일본에는 이미 기업에서 ‘건강경영’이란 말을 쓰고 이를 정부가 적극 지원하고 있다.

건강경영이란 기업이 전략적으로 종업원에 대한 건강투자 및 관리를 통해 생산성 향상, 조직의 활성화를 낳아 결과적으로 실적 향상이나 주가 상승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경제산업성이 2014년부터 우수한 건강경영을 하고 있는 상장기업을 선정하는 ‘건강경영리스트’를 공표하고 있다. 2017년부터는 미상장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건강경영우량법인’의 선정도 시작해 건강경영을 대기업만이 아니라 중소기업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밖에 노동환경 유지 관점에서 2015년부터 종업원의 스트레스 체크 의무화가 시행됐다. 이를 위해 국가는 기업의 건강증진 노력에 대해 세제우대를 통한 인센티브 등 지원제도 정비에 나서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건강경영은 기업이 ‘종업원의 건강=기업의 경영기반’이란 능동적 인식에서 출발한다.(‘경제를 알 수 있는 논점 50 2020’·미즈호종합연구소·2019)

건강경영은 생활습관병, 정신건강, 금연, 그리고 가족건강대책으로 크게 나뉜다. 구체적으로는 건강경영추진회의 실시, 건강상담창구 설치, 건강진단비용 보조, 제휴 스포츠시설 이용 촉진, 사내 독감백신 접종, 감염병 대책을 위한 가글·소독액의 배치,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의 적극 추진, 스트레스체크 실시, ‘노 잔업데이 패트롤’ 실시, 근로방식 개혁 연수, 폐연령 측정, 금연지도, 피부양자 건강검진 촉진 등을 들 수 있다.

윤영호 한국건강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속하기 어렵기에 ‘감염 박멸’에서 ‘확산 지연’으로 전환해야 하며 특히 기업이 감염병 예방을 위한 ‘기업방역관리체계’를 건강경영 차원에서 사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업 방역관리체계는 △구조조직 △조사계획 및 소통 △일상적인 관리 △위기상황 시 관리 △평가 및 피드백 등 총 54개 항목으로 ‘감염예방 전담 조직 유무’ ‘감염예방을 위한 수칙 준수 방안’ 등 구체적인 질문들을 조사하는 방식이다.(한국경제·2020년 4월 2일)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세계 경제규모 11위이지만 매년 2400여 명이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나라로 OECD 산재 사망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잠정집계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1~4월 산재 사망자는 315명이다. 이는 코로나19 사망자 269명(5월 26일 기준 집계)보다 많은 수치이다. 노동자 한 명이 사망하면 사업주가 물어야 하는 벌금이 고작 450만 원으로 경각심을 높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오마이뉴스·2020년 5월 26일) 따라서 코로나19를 계기로 우리나라는 건강경영에 안전을 더한 ‘건강안전경영’ 개념을 새롭게 도입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 한국발전산업노조가 ‘민주당 고 김용균 특조위 권고안 정부 이행계획’ 발표장을 찾아 특조위 권고안에 반발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21대 국회개원을 앞두고 136개 범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를 출범시켰다. 운동본부는 발족 선언문에서 ‘사람 목숨이 하찮게 여겨지는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으로 그 첫발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 한 해 2400명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죽는 나라! 2017년 20대 국회에서 산재사망과 재난참사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을 발의했지만 20대 국회는 논의조차 하지 않고 폐기했다. 그러는 사이에 2018년 12월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2019년 4월 청년 건설노동자 고 김태규 등의 죽음이 계속됐다. 영국, 호주 등에서는 기업처벌법을 제정하여 진짜 책임자를 처벌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말단관리자에게만 과실치사죄를 적용하는 한계가 없어야 기업이 안전조치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홈페이지)

이에 대해 경영계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에 안전업무와 관련이 없는 법인의 모든 이사를 포함하는 것은 전과자 양산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무리한 주장이라고 지적한다.(머니투데이·2020년 5월 27일) 21대 국회 개원과 더불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반드시 제정되길 희망한다.

코로나19 이후 닥칠지 모를 제2, 제3의 감염병 파도를 막기 위해 우리사회의 대전환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기업인들이 노동자 재해에 대해 참회하고 개선책 찾기에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이제 기업은 ‘건강안전경영’으로 거듭나야 할 때이다. 정부도 이러한 기업의 건강안전경영 시스템 구축을 위해 감염병 예방 및 대응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 우리 시민도 이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사회책임투자(SRI)의 인식을 갖고 깨어있는 소비자로서 기업의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이것이 노동하는 우리 모두의 일터와 삶터를 지키는 일이며,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의 사회적 면역력을 키우는 길이다. 경성대 건설환경도시공학부 교수 hckim@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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