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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창 교수의 ‘재난의 정치경제학’ <3> 기본소득, 재원 마련을 어떻게 할 것인가?

코로나바이러스를 이기는 면역 사회 만들기

  • 김해창 경성대 교수
  •  |   입력 : 2020-03-08 16: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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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본소득, 재원 마련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재난기본소득에 대해 많은 분이 공감하고, 기본소득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운 소수정당은 물론 여야 다수당도 최근 ‘재난기본소득’의 취지에 긍정적인 발언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실현성, 즉 재난기본소득이든 보편적 기본소득이든 기본소득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가에 있다. 기본소득제의 취지가 좋다고 해도 재원확보와 관련해 국민의 공감대를 얻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6년 6월 스위스는 모든 거주자에게 매월 2500스위스프랑(약 310만 원)을 지불하는 세계 최초의 보편적 기본소득안을 국민투표에 부쳤으나 투표율 46.3%에 찬성 23.1%, 반대 76.9%로 부결됐다. 당시 재원 부족과 경제 경쟁력 저하 우려로 반대표가 높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의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들을 바탕으로 정부와 국회가 기본소득 도입의 필요성과 재원 마련에 관한 연구를 해나가야 한다. 또 공론화를 통해 법제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재원 마련이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실천 의지가 관건이다.

우리나라 민간 싱크탱크 ‘랩 2050’은 2019년 10월 국민기본소득제 연구결과 보고회를 열고 ‘2021년부터 전 국민에게 매달 30만 원 기본소득 지급이 가능하며, 세제개편을 잘 하면 2028년까지 생계급여 수준인 65만 원까지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월 30만 원 기본소득 필요재원은 약 187조 원이다. 재원은 비과세·감면제도를 폐지해 세금 제도의 누진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토지보유세 강화, 부유세 도입, 탄소세 도입, 부가가치세 인상, 주식양도차익과세 정상화 등 다양한 재원마련 방안의 검토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경향신문·2019년 10월 29일)

2018년 페이스북 공동창업자인 크리스 휴즈는 자신의 저서 ‘페어 샷(Fair Shot: 공정한 기회)’에서 “1년에 5만 달러(약 6000만 원) 이하를 버는 미국 노동자, 학생, 간병인은 월 500달러(약 60만 원)의 보장된 수입을 국가로부터 받아야 한다”며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조건없는 기본소득을 지급할 것을 주장했다. 휴즈는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상위 1%의 세금 조달이면 된다고 제안했다. 그의 주장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상위 1%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중산층 경제학’의 재원 조달과 맥을 같이 하고 있고,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인 마크 주커버그와 마이크로소프트사 창업주 빌 게이츠 등도 동의한다. 휴즈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조건부 기본소득은 재난기본소득의 취지와 같은 선상에 있어 보인다.

타이완도 최근 기본소득제를 놓고 ‘UBI TAIWAN’과 같은 시민단체가 국민투표를 추진하고 있다. 농촌을 떠나는 젊은 층이나 고령자 빈곤층을 겨냥한 것으로 성인의 경우 1만2608신타이완달러(약 50만 원), 18세 미만의 경우 그 절반을 지급하는 방안이다. 이 정책에 타이완 GDP의 19%인 3조4000억신타이완달러(약 135조5000억 원)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연간 84만신타이완달러(약 3350만 원) 이상의 소득에 31%의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인구 3분의 2의 수입을 보전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The News Lens. “Taiwan’s Basic Income Movement Plans National Referendum”·2019년 12월11일)

다른 방안으로, 소비세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삼는 것이 좋다는 견해가 있다. 기본소득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촉발시킨 독일의 체인점인 DM(데엠) 창업자이자 칼스루에대학 교수인 괴츠 W. 베르너는 2006년 ‘미래를 향한 기초-기본소득’에서 ‘현재의 사회보장시스템을 잘 통합하면 무조건적 기본소득이 가능하고, 그렇게 되면 누구나 생존 걱정에서 해방돼 자유로운 시민으로 활동하고 뜻있는 일을 할 수가 있다’고 강조한다. 기본소득의 재원을 소비세에 두고, 소비세 이외 세금을 최종적으로 전폐하되, 소비세의 단계적 인상과 법인세 인하, 소득세 경감, 연금 실업수당·건강보험·아동수당 등의 사회적 급부 및 기타 보조금 전폐를 통해 15~20년 걸려 완전한 기본소득제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그는 재원을 소득세로 할 경우 사회적 수용성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판단해 소비세에 집중했다고 말한다.

   
4일 국회 정론관에서 코로나19 재난기본소득 관련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베르너의 기본소득은 독일 국민 한사람에게 매월 1500유로(약 210만 원)를 지급하되 연령에 따라 단계를 둬 최고지급액은 35세부터 50세 사이가 되고 그 후는 다시 줄어든다. 18세 미만인 경우 친권자가 대신 받는다. 그의 제안이 실현되려면 소비세율(부가가치세)을 적어도 35.8% 이상으로 높여야 하는데 이는 소비세율이 가장 높은 헝가리(27%), 스웨덴(25%)보다도 훨씬 높아 소비세만으로 재원을 마련하기는 비현실적인 면이 크다는 비판이 있다.

한국 기본소득네트워크 대표인 강남훈 한신대 교수는 2010년 10월 한·일 기본소득네트워크 심포지엄에서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월 25만 원(연간 30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재원은 약 146조 원이 필요한데 이는 조세개혁을 통해 이자·배당 등에 대한 중과세 부과, 파생상품 거래세와 환경·토지세 등을 신설하는 등 OECD 회원국 중 하위수준인 총조세 부담률을 2008년 현재 26.6%에서 35% 정도로 끌어올리면 충분히 조달된다고 밝혔다.(경향신문·2010년 10월 18일)

그러나 최근 증세 없이 기존 예산만 잘 조정해도 가능하다는 계산이 일본 학계에서 나오고 있다. 일본의 경제평론가 야마사키 하지메(山崎元)는 일본의 경우 연금생활·고용보험·아동수당 및 각종 공제를 기본소득으로 바꿈으로써 증세하지 않고 일본 국민 1억2500명에게 매달 4만6000엔(약 5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의 사회보장급부비가 2013년에 총액 99조8500억 엔인데, 여기서 의료예산 30조8400억 엔을 뺀 69조 엔을 일본 인구 1억2500만 명으로 나누면 월액 4만6000엔이 된다는 것이다.(Diamondonline·2012월 3월 12일.) 교토부립대학 복지사회학부 오자와 슈지(小澤修司) 교수도 일본의 경우 월 5만 엔(약 56만 원) 정도의 기본소득 지급이라면 증세 없이 현행 제도로 가능하다고 시산하고 있다.(공공연구제3권제4호·2007년3월)

이 밖에 정부가 직접 화폐를 발행해 나오는 통화발행이익으로 기본소득제 실시가 가능하다는 주장이 있다. 일본의 평론가인 세키 히로노(關曠野)는 ‘녹색평론(2010년 7~8월호)’에 ‘기본소득과 새로운 삶의 방식’이란 글을 통해 ‘사회변혁 도구로서의 기본소득’을 강조한다. 기본소득을 실시할 때 수도권을 5년 정도 소득보장 대상에서 제외시키면 수도권의 집중된 인구, 특히 젊은층의 지방 이동을 유도해 ‘도쿄 일극(一極)사회’ 탈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원은 정부가 중앙은행과는 별도로 자체 발행하는 통화를 소득보장을 위해 사용하면 국가 부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베르너처럼 소비세만을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할 경우 소비세율이 너무 높아 기본소득을 보장하더라도 상품가격이 높아져서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된다며 공공통화를 발행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국민의 필요 내지는 수요에 관한 통계자료를 근거로 통화를 발행해 기업에 융자하면 경제는 순조롭게 돌아갈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주장은 화폐발행이익을 재원으로 삼아 기본소득을 실시하자는 1920년대 클리포드 H. 더글러스의 ‘사회신용론’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더글러스는 화폐발행이익을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실시할 경우, 새로운 증세가 필요 없으며 동시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경우 장기국채를 발행해 중앙은행으로 인수하게 해도 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사례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우선 소비세를 다소 높일 필요가 있다. 경유 등 기름값, 화석연료, 플라스틱제품, 고급가전제품·자동차 등의 소비세율은 높이는 대신 기초생필품 소비세율은 낮출 필요가 있다. 그리고는 점진적으로 소득세나 자산세를 높여야 한다. 특히 금융소득이나 부동산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를 확실히 해야 한다. 이와 함께 기존의 각종 복지 관련 수당 등 예산을 통합해 조건부 또는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전환해나가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바람직할 것이다. 당장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소득분위가 낮은 계층에 대한 ‘맞춤형 최저생계비 지원’이라는 재난기본소득의 취지를 놓쳐서는 안 된다.

또한 세계 각국에선 보편적 기본소득에 앞서, 전 단계로 농민·청년기본소득 등 조건부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해지면 식량자급의 원천인 농촌 소멸이 심각한 재난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정책연구기관인 프랑스 스트레티지(France Strategie)가 올해부터 모든 농민에게 8000유로(약 1045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작업량에 따라 보조금을 추가로 지급하자며 사실상 ‘농민기본소득’을 제안했다. 목초지 유지, 윤작, 생물다양성 보호 등 환경적 편익을 가져다주는 활동에 대해선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신 온실가스 배출, 농약·화학비료 사용에 대해선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농업 종사자수를 유지하면서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농축유통신문·2020년 1월 3일) 우리나라에선 도시청년의 농촌이주지원금 또는 농민기본소득 보장 차원에서 경기도가 ‘청년기본소득’에 이어 2020년 하반기부터 농민 개개인에게 지원하는 ‘농민기본소득’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힌 것은 퍽 고무적이다.(경향신문·2019년 11월 7일)

기본소득제는 앞으로 제4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자동화로 인한 양극화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필요한 제도이다. 인공지능이 노동을 대체함으로써 수익창출의 대부분이 CEO에게 돌아가는 구조에서 노동자는 실직을 비롯해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국가는 로봇세, 부자증세, 징벌적 과징금, 소득비례 차등벌금제 등의 도입을 통해 보편적 기본소득제를 시행하는 것만이 대안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우리는 좀 더 장기적이고 총체적인 재난에 대비해야 한다. 앞으로 다가올 기후위기나 제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이 ‘욕망이 더 큰 욕망을 낳는’ 탐욕적인 자본주의시스템,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세습자본주의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관건은 전 지구적인 문제를 인식하고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 국가공동체가 지속가능성,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존엄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사회적 양극화를 줄여가느냐에 대한 정치적 정책적 결단이다. 경성대 건설환경도시공학부 교수 hckim@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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