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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언 교수의 `건축, 시로 쓰다` <29> 센텀시티와 정현종의 `섬`

이윤 최우선 두는 인간의 욕망에 자연이 낄 틈 없어 파편화된 도시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2-08 20:37:45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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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건축 구축할때 땅·하늘·전통·인간 4자간 소통통해 혼연일체 이뤄야
- 신세계· 롯데백화점…매장 면적 최대화위해 틈새 조망 무시하고 외부공간 턱없이 부족
- 두 백화점이 대화통해 수영강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공원 지었다면 세계적 명소 되었을듯

- 부산영상센터 지역내 두레라움만 독보적
- 주위 건물과 조화위해 숲과 물이 들어서야

   
센텀시티 전경. 건축사진가 조명환 씨 제공
센텀시티의 개발철학은 한 마디로 인간, 자연, 기술이 어우러지는 도심 속의 세방(世方)화된(국제화와 지역화가 동시에 아우러짐) 소도시를 창조하는 것이다. 개발철학이 다분히 동양적 자연관에 바탕을 두긴 했지만 역동적인 면이 있다. 결국 센텀시티의 개발철학은 동양적인 자연관에 역동성(기술성·서구성) 을 가미해 놓았다.

조금은 시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도시나 건축을 구축할 때 땅·하늘·전통·인간이 서로에게 물어 볼 필요가 있다. 4자 간의 의견교환이 필요하다. 그래서 합의가 필요하다. 합의가 이루어질 때 서로 간의 역할분담이 이뤄질 것이다. 역할분담이라곤 하지만 서로 섞여 작업을 하게 되므로 4자 간의 욕심 없는 자기헌신이다. 우리는 하늘·땅·전통·인간(기술 기억·꿈·상상·목적)이 서로 아우러져 혼연일체를 이루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변하는 맛을 지닌 곳에 실존적으로 살고 있다. 이들 네 요소가 상호관입하는 데 실패하면, 즉 아우러지는 데 실패하면 인간(기술)이 만용을 부린다. 만용이 균형점에 가면 4자가 평화공존하여 거주하지만 균형점에 가지 못하면 욕망에 따라 배회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욕망을 벗어나 4자가 평화공존 하는 곳, 즉 인간이 실존하는 곳이 정현종의 시에서는 '섬'으로 표현된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섬에 가고 싶다'.

이 '섬'으로 인해 세계는 고유의 맛을 지닌다. 우리는 이 '섬'의 일부이며 세계는 바로 지역이다. 이 지역은 바로 우리의 기억과 꿈, 상상, 목적으로 채색돼 있다. 우리의 삶을 담는 도시건축은 이들을 섞는 비빔밥이며 건축 또한 비빔밥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늘·땅·전통·기술·기억·상상·꿈·목적 등과 어우러진 건축은 늘 변화하면서 새로움을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준다. 우리가 부산의 도시건축을 둘러싼 '따로따로' 풍경으로부터 '섬' 또는 지역적 풍경을 볼 수 있을 때 바로 이런 변화와 새로움의 기운을 쉽게 감지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많은 경우에 '섬'은 우리들 인간의 욕망에 대한 편애로 말미암아 고정적이고 단편적인 것들로 환원되고 만다.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이하 신세계)와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이하 롯데)을 통해 센텀시티 일부가 어떻게 욕망화되었는지 살펴본다.
■왜 센텀시티의 건물들은 따로따로 놀까

수영비행장이 센텀시티로 바뀌면서 부산은 새롭게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세계를 창조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센텀시티의 한 가운데로 수로와 녹지공간을 '섬'이 공통적으로 요구함에도 센텀시티 건설관계자는 이를 무심히 그냥 지나쳤다. 수로와 녹지가 땅들을 상호관입시켜 놓았을 법 했는데 하나로 어우러져야 할 도시는 그만 파편화되고 고정화되어 따로따로 오브제들로 바뀌었다. 신세계와 롯데는 풍경의 풍경으로서 흡입되지 못하고 도시건축의 주위를 감싸 흐르는 기운을 무덤덤하게 그냥 지나친다. 물, 녹지가 도시의 중앙부를 관통했으면 땅·하늘·전통·인간을 아우르는 매개체, 즉 '섬'의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섬은 요구한다. 신세계의 그 긴 매스를 좀 잘라주라고 말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긴 매스는 섬이 들어설 기회를 막는다. 더구나 옆의 롯데가 신세계 옆에 아주 밀착되어 있어 '섬'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신세계와 근방의 에이펙(APEC)나루공원도 '섬'이 상호관입할 것을 요구한다. 신세계 따로 롯데 따로 수영강 따로 놀고 있음을 '섬'은 준열히 꾸짖는다. 인간의 독단으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임을 섬은 잘 알고 있다. 인간이 독단으로 도시건축을 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땅, 하늘, 그리고 영속적인 것들과 합의를 보아야한다. 상호관입하여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독선을 부린다. 적어도 공공성을 띠는 도시건축에서는 '섬'이 되어 스스로 자문자답해 볼 필요가 있다. 매장의 면적을 최대한 넓히기 위해 '틈새 조망'(통경축) 따위는 아예 무시해버리는 태도는 섬과의 대화가 전혀 되지 않는 상태이다. 지하철역에 바로 근접해 있는 두 백화점의 지하 입구 앞은 '섬'과 전혀 관련 없는 인공의 대지이다. 소위 가상의 공간이다. 여기서부터는 '섬'과의 관계 두절이 이루어지고 인간의 욕망만이 배회할 뿐이다.

위로 올라가 외부공간을 우선 보자. 두 백화점은 규모에 비해 외부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듯하다. 물론 이윤추구가 사기업의 궁극적 목적이라 할지라도 이 정도 규모라면 공공성을 고려해야 한다. 아마 롯데가 먼저 지어졌을 것이다. 신세계가 나중에 들어설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 경우 두 백화점이 서로 상생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외부공간도 당연히 달라졌을 것이다. 두 백화점의 지하 외부공간-롯데의 지상 외부공간-신세계의 지상 외부공간-지하공원-에이펙 나루공원-수영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띠형의 산책로 공원을 섬은 원하지 않았을까. 섬은 상호관입을 원하므로. 두 백화점이 조금만 의사소통해 상호관입했더라면 세계에서 알려진 명품백화점이 되었을 것이다. '섬'은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이윤을 부여한다. '섬'이 궁극적으로 그 이윤을 우리 인간에게 어떻게 부여하나? 센텀시티의 핵심부인 부산영상센터(두레라움)로 가본다. 여기서도 '섬'에서 벗어나 파편화, 오브제화되어가는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왜 이런 경향이 일어나는가?

■두레라움, 출중함에도 조화는 어려워

   
두레라움 조감도 국제신문 DB
선적인 규제인 '국토이용법'을 거쳐 면적 및 공간적 규제인 '국토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이 생기고 지구단위 계획법이 시행되면서부터이다. 지구단위계획을 하려면 특정 지구단위가 공간적으로 계획 및 설계가 이루어져야 함에도 면적인 계획 및 설계가 주로 이루어짐으로써 공간의 질적인 면이 무시되고 면으로 환원·축소되고 말았다. 공간의 질적인 것이 면으로 변했는데 특정지구의 지구단위계획이 어찌 가능한가? 공간의 질이 관통하고 하늘·땅·전통·인간(콘텐츠를 담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섬' 적인 공간계획을 통해 지구단위계획을 만들어야 했다. 미리 특정지구단위를 가설계한 다음 거꾸로 그것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의 하나.

예를 들어 부산영상센터 지역으로 가본다. 그것은 부산영상센터, 영화진흥위원회, 영상물등급위원회, 문화콘텐츠컴플렉스, 영상 후반부작업시설로 구성된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일반적인 건축물과는 달리 건축선의 '뒤로 물림'(setback)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건폐율 및 용적률, 건축선의 통제가 가능한 공공건축물이므로. 참으로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유스럽게 건축할 귀한 순간이다. 그러나 지구단위계획에서부터 면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즉 두레라움의 모뉴멘털한 조형만으로 평면상에는 아무런 하자를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에 공간의 질의 문제는 따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두레라움은 공간적으로 출중한 콘텍스트를 만들어내어 주위와 차이를 만든다. 달리 이야기하면 부산영상센터가 들어서는 지역 내의 건축물들이 일률적으로 뛰어난 두레라움의 모뉴멘탈한 콘텍스트에 맞추기 어렵다는 점이다. 워낙 탁월해서 까다로운 두레라움의 모뉴멘탈한 콘텍스트를 완화하기 위해 주위의 숲과 물을 포함할 만한 대지들을 상호관입시키는 건축물들이 세워졌으면 했다. 면으로 보아서는 판별할 수 없는 것들이 공간으로는 '섬'에서 벗어나 파편화, 오브제화 되어가는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의 욕망 탓일 것이다. 우리의 욕망이 희석되지 않는 한 '섬'에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센텀시티의 초심 지금이라도 점검하자

   
이동언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
해운대 신세계와 롯데는 서울본점의 모사이고 서울본점은 미국·일본 백화점의 모사이다. 이것이 센텀시티의 개발철학인가? 아니다. 진정으로 도심 속 세방화된 소도시, 센텀이 되기 위해서는 선진국의 모사인 서울의 재현 장소에서 벗어나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섬'이 되어야 한다. '섬'이 다시 살아날 때, 인간·자연·기술이 아우러지는 센텀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 센텀이 선진도시의 첫 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의 개발철학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섬에 가고 싶다' 이 시를 이렇게 바꾸고 싶다. '부산사람들 사이에는 센텀이 있다/ 그 센텀에 꼭 가고 싶다'.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확신할 필요가 있다. '부산사람들 사이에 섬은 분명히 있다. 다만 배회하는 욕망 때문에 그곳에 가지 않을 뿐이다.' 센텀시티가 지금이라도 처음의 개발철학에 충실히 따를 때 처음 의도에 부응하는 진정한 센텀으로 거듭날 것이다. 개발이 마무리되어 가는 이즈음 초심을 다시 점검함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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