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이동언 교수의 '건축, 시로 쓰다' <28> 영도등대 해양문화공간

옛 것과 새 것의 결합, 그 안에서 등대의 빛은 무한하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2-01 18:55:46
  •  |  본지 14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우리나라 최초, 등대와 해양문화공간 합쳐 놓은 영도등대

-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듯 거대한 배 타고 항해하는 기분

- 수평적 공간 가로지르는 계단에 건축가 혜안 담겨

- 100년 전 만들어진 석축·바위·공룡발자국
- 새로운 등대의 만남, 석축 '낙서판'이 교각

- 시간성 잃어 버린 도시와 건축은 아무런 감흥 없어

참으로 오랜만이다. 태종대야!, 바다야! 대다수 시민들은 부산에 살면서도 바다를 거의 망각하고 산다. 산이 70%가량이므로 부산시민들은 거의 산을 보고 산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게다. 필자의 경우도 늘 부산대 뒤쪽의 금정산, 우측 멀리 보이는 황령산, 앞의 구월산 등을 바라보면서 지내므로 부산이 수변도시라는 것을 잊고 산다. 가끔 바다 근처에 가서야 이곳이 해양도시임을 느낀다. 참으로 기묘한 도시다. 부산이란 도시는 변화가 심한 만큼 새로움도 잦지만 지속되지는 않는다.

아마 태종대 쯤에 오면 우리는 바다를 끼고 살고 있구나 느끼지만 다시 뭍으로 가면 산을 끼고 있다고 느낀다. 수목들 사이로 조금씩 보이는 바다! 그것들 사이에 보이는 하늘과 또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수목들 사이의 바다는 거의 촉각적이지만 그것들 사이의 하늘은 시각적인 면이 강하다. 수목이 듬성듬성하다가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시야가 확 열리고 바다가 손에 쥐일 듯하고 하늘은 한층 더 가까워진다. 감각이 예민한 사람은 이러한 변화와 새로움에 깜짝 깜짝 놀란다.

■현실적 기능과 환상적 분위기의 만남

   
오랜 세월 바다가 간직한 옛 이야기 들려 오는 영도등대. 건축사진가 조명환 제공
이런 과정을 수십 번 거친 후 마침내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듯한 영도등대해양문화공간(이하 영도등대) 입구에 도달했다. 우리 일행은 마치 영도등대라는 거대한 배의 입구에 서 있는 듯했고, 거대한 배 앞에 선 우리는 먼 여행을 떠나는 어린이 마냥 들떠 있었다. 계단을 하나씩 내려갈 때마다 바다가 대화를 걸어오는 듯 했다. 저 깊고 푸름은 끝없이 우리에게 과거를 되뇌이게 만들었다. 이리로 와서 자기의 오래된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신라 태종 무열왕이 해안에 깎아지른 듯 솟은 기암괴석과 나눈 이야기들, 무수한 세월 동안 바다가 품고 있던 이야기들, 그것들이 빚어낸 지혜로운 말들, 10여 년 전에 왔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꿈꾸는 듯한 세상을 떠나 현 세상으로 돌아간다. 등대의 위치는 부산시 영도구 동삼동 1054이다. 영도등대가 최초 점등한 것은 1906년이고 2004년 8월까지 존속했다. 등탑구조는 원형 콘크리트조이고 높이 35m(평균해면상 고도 75m)이다. 현 건축물이 준공된 것은 2004년 8월이다. 건축가 김명규(일신설계종합건축사사무소)가 설계했다. 대지 1만3257㎡, 건물 3개동(등대동995㎡, 전시동 179㎡, 휴게동 254 ㎡). 등대동은 등탑, 사무실, 세미나실, 영사관, 숙소 등을 포함한다. 전시동은 갤러리 1관, 2관이다. 휴게동은 자연사전시실, 휴게실로 구성된다.

등대의 주요기능은 광파표지·전파표지·음파표지(도로표지판과 유사하게 해상에서 광파·전파·음파에 의해 식별), 인근 무인표시 감시(등대1기, 등표1기, 유도등 부표1기), 해상기상정보수집 및 제공, VTS 레이더 및 소방장비관리, 해양문화공간 운영 등 역할을 한다.

■등대 기능과 해양문화공간 합쳐
   
이 등대는 우리나라 최초로 등대와 해양문화공간을 융해시켜놓았다. 등대에다 야외공연장(495㎡), 등탑전망대(평균해면상 72m· 등탑내부 선박 변천과정 패널 18점 전시), 해양도서관(장서 6000여 권), 정보이용실(컴퓨터 4대 설치, 관람객 자유이용), 자연사박물관 등의 문화시설이 융해되어 있다. 이외에도 해양 및 등대기념 조형물, 태종바위, 신선바위, 망부석, 공룡발자국 등이 있다. 등대와 대조적인 '무한의 빛'이라는 제목을 가진 조형물도 있다. 스테인리스로 지름 9m의 일부 절개된 원형에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침모양의 조형물이다. 2004년 4월에 준공된 것으로 '영도등대 100주년을 기념하여 빛이 하늘과 바다를 뚫고 영원히 우주로 나아가는 형상을 나타낸다' 한다.

'무한의 빛'과 대조적으로 인간이 유한하게 사용하는 등대는 어떻게 무한의 빛을 얻는가? 이 '놈'을 알아보기 전에 평면을 한번 훑어볼 필요가 있다. 평면에서 주요 역할을 하는 것은 공간적으로 오륙도등대, 생도등표, 영도등대가 각각 한 꼭지점이 되어 삼각형을 만드는 지점에 배치된 사무실의 위치다. 평면에서 주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100여년 전부터 뿌리를 내리고 있는 석축, 태종대바위, 신선바위 망부석, 공룡발자국 등 너무 오래돼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것들 역시 평면의 계단 배치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준 '놈'들이다. 지하층은 역시 관리에 관계된 부분들이 배치돼 있다. 정화조 관리층, 등대계단실,무신호실, 외부데크(등대역사마당), 석축을 바탕으로 아치터널 벽면에 '흔적을 남겨주세요'란 코너를 만들어 출입객이 글로 무엇을 남기도록 하였다. 아마 태종대를 비롯한 바위나 공룡발자국에서 나온 아이디어인 듯하다.

■문태준 시인의 시 '매화나무 해산'

경사지를 살리는 방법이 오로지 계단이나 경사로이다. 장애인을 위해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 필요하다. 이전의 지붕선이 수평일색이었으나 신축한 등대에서 경사지에 조화를 이루기 위해 계단을 적절히 사용했다. 특히 건축물을 횡으로 가로지르는 계단은 우리를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게 한다. 건축가의 혜안이 담겨있음에 틀림없다. 100여 년 전 지은 등대는 평슬라브여서 지형과 잘 어울리지 못했는데 현 등대는 공간적인 지속에서는 사선으로 부지와 나란히 가는 부분이 많아 경사지에 어울린다.

공간적 지속과 시간적 지속에 건축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는 건축가는 공간적 지속이 건축을 결정한다고 믿는 것 같다. 요즈음 건축처럼 시간이 전혀 새겨지지 않는 건축물의 당돌함에 당혹해 하는 건축가들이 하나, 둘 줄어간다.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무엇을 쟁취하려는 시도가 줄어가고 있는 마당에 시인 문태준의 '매화나무의 해산(解産)'를 한번쯤 음미할 필요가 있다. '늙수그레한 매화나무 한 그루/ 배꼽 같은 꽃피어 나무가 환하다/ 늙고 고집 센 임부의 해산 같다/ 나무의 자궁은 늙어 쭈그렁한데/ 깊은 골에서 골물이 나와 꽃이 나와/ 꽃에서 갓난 아가 살갗 냄새가 난다/ 젖이 불은 매화나무가 넋을 놓고 앉아 있다'

매화나무는 오래된 것에 대한 은유이다. 꽃은 새 것에 대한 은유이다. 매화나무는 석축, 태종대 바위, 신선바위, 망부석, 공룡발자국 등을 상징한다. 꽃은 등대를 상징한다. 깊은 골에 골물이 나와 꽃이 나온다는 것은 시간의 지속이라는 배경에 대해 꽃이라는 순간, 즉 그림이 자꾸 바뀌는 것 같다. 왜냐하면 젖이 불은 매화나무가 넋을 놓고 앉아 있다는 것은 꽃들이 자꾸 피어난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오래된 것과 새것의 결합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오래됨'이 변화와 새로움을 수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새로운 것을 창작해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마치 어머니가 산고 끝에 아이를 낳는 것처럼 말이다.

■옛 것과 새 것의 담대한 만남 필요

100여 년 전 구축된 석축, 태종대바위, 신선대, 망부석, 공룡발자국 등 수많은 옛 것들과 등대라는 새 것의 마주침이다. '흔적을 남기세요'라고 한 벽면낙서판은 가장 최근의 변화와 새로움을 수용하는 건축적 장치이다. 탁월한 건축적 장치이다. 그러나 옛 것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시에서처럼 등대를 꽃으로 친다면 가장 최근에 핀 꽃이다. 그런데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이전의 이미지들을 없앨 것이 아니라 매화나무처럼 초기 이미지부터 최근 이미지까지 잘 보존할 수 없을까? 지속과 변화, 새로움이란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이야 말로 건축이 지향해야 할 지점이다.

   
시간성을 잃어버린 도시와 건축들은 기억상실증의 그것들이다. 그것들에는 지속성 없이 변화와 새로움만 있다. 근거 없는 변화와 새로움은 우리에게 아무 감흥을 주지 못한다. 건축가는 건축이 땅과의 관계 맺기, 즉 지속·변화·새로움을 창출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옛 것과 새로운 것들 사이의 갈등이 부산, 아니 우리나라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단기간에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한 우리나라의 경우 그 갈등은 더욱 심각하다. 이제 우리는 옛 것과 새로운 것의 충돌을 피할 것이 아니라 담대히 맞부딪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지속·변화·새로움이란 세 마리 토끼를 잡으면 말이다. 영도등대처럼 설계할 건물 주위에 문화재가 있을 때 건축가는 위기와 동시에 기회를 포착해야 하지 않을까? 등대가 무한의 빛을 가지기 위해서는 지속·변화·새로움을 동반해야만 한다. 새로움이란 빛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므로.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건강한 부산을 위한 시민행동 프로젝트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