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박현주의 책과 세상 <32> 다시 생각하는 권정생의 `강아지똥`

미물에게 배우는 생명과 자연의 가치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1-12 20:34:29
  •  |  본지 22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경북 안동의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전시실에 있는 한국어·중국어·일본어판 '강아지똥'. 국제신문DB
얼마 전 안동의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을 다녀왔다. 선생이 살아계실 때 가까이에서 모셨고, 돌아가신 지금도 재단 일을 맡아보고 있는 안상학 시인은 권정생(1937~2007) 선생의 흔적을 모으고 정리하는 일로 여념이 없었다. 권정생 선생은 17세 무렵부터 약 5년간 부산 초량에서 살면서, 초량에 있던 책방 '계몽서적'에서 책을 빌려보았고, 조카를 업고 공장으로 출근해 일을 했다는 말을 시인에게서 들었다. 전쟁 직후 폐허나 다름없던 이 나라의 남쪽 끝 부산에서 청소년 권정생이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았던 힘도 책이었던 것이다.

"네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속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야만 별처럼 고운 꽃이 핀단다."

권정생 선생의 '강아지똥' 한 구절이다. 길가에 핀 민들레싹이 강아지똥에게 한 말이다. 자신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하며 슬퍼하는 강아지똥이라는 한낱 미물이 민들레꽃을 피워내는 데 소중한 거름이 된다는 이 이야기는 짧지만 생명과 자연의 가치를 가르쳐준다. 그리고 자신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깨우침을 준다.

1969년 월간 '기독교 교육'의 제 1회 아동문학상을 받았던 '강아지똥'이 나온지 42년째 접어들고 있는 지금까지도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고 있는 이유이며, 스테디셀러가 되는 힘이다.

권정생 선생은 실제로 비가 오는 봄날, 강아지똥이 빗물에 풀어져 땅 속으로 스며들어가는 장면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냄새나고 어딘가 치워버려야 할 똥이 마지막 해 낸 일이 별처럼 고운 꽃을 피우는 기적이란 것을 보았고, 그 아름다운 역사를 썼다. 한 사람의 작가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작품을 쓰는지, 그 작품이 읽는 사람의 마음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강아지똥'에는 어려운 낱말이 없다. 짧다. 처음에는 글만으로 발표되었지만, 지금은 정승각 선생의 그림과 함께 그림동화로 꾸며졌다. 그래서 아이들, 그것도 미취한 아동과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읽는 책 정도로 생각하는 어른들도 많겠지만 작품이 주는 감동의 진폭은 크고 깊다. 읽어보면 불문곡직의 필독서처럼 되어버린 이유를 알게 된다.

대한민국 어린이들 중 권정생을 모르는 아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강아지똥'으로 권정생을 처음 만나고, 여러 종류의 권장도서목록이나 독후감 과제에서 권정생 책을 읽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에요?"라는 불만 아닌 불만이 터져나오기도 하고, 좋아하는 작가 1위도 싫어하는 작가 1위도 권정생이 오를 만큼 아이들에겐 친숙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경북 안동시 명륜동에 위치한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과 안동 일직면 조탑리에 남아있는 선생의 집을 찾는 발길은 어린이들도 있지만 어른들도 많고, 어른들이 더 많은 감동을 받고 있다. 살아가면서 자신이 보잘 것없는 존재라고 여겨지는 순간을 한 번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그 아픈 마음을 위로해주고 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는 것을 강아지똥을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에 아이 어른이 따로 있을까.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배우는 건 제쳐두고,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느끼는 그 순간의 기쁨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선생께서도 거창한 생각으로 '강아지똥'을 쓰지는 않았을 것 같다. 조탑리에서 교회 종지기를 하면서 홀로 살던 선생의 삶 속에 키우던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고, 그 강아지가 눈 똥이 빗물에 풀어져 땅 속으로 스며드는 과정 끝에 그 자리에 민들레가 피는 걸 보면서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쉬운 말로 쓴 것이 '강아지똥'이 아닐까. 빗물에 풀어져 땅속으로 스며들어가 별처럼 고운 꽃을 피운 강아지똥처럼 말이다.

하나의 존재가 또 다른 존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숭고한 행위를 통해 무엇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그리고 정말 그것이 가능할까. 나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을까. 나도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어쩐지 나 자신이 아주 소중한 존재인 것처럼 여겨진다.

동의대 문헌정보학과 강사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건강한 부산을 위한 시민행동 프로젝트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