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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언 교수의 '건축, 시로 쓰다' <25> 부산 영주동 글마루 작은도서관

'어린왕자' 살던 별에 온 듯… 건물이 한 편 동화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1-03 20:24:12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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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 뒤편 콘크리트 옹벽도 생텍쥐페리 동화 속 바오밥나무같이
- 동심 자극하는 한 폭의 그림

- 여성건축가 이중·다중시각 넉넉히 품은 건물
- 입구 바닥과 계단 안내데스크 등 곳곳의 그림·도안 어린 시절 꿈꾸던 세상에 가까워

- 2층 열린 서가는 꿈 많은 어른들에도 넉넉한 공간

열흘 전인가보다. 부산 사하구 감천2동 태극도마을에 가기 위해 중구 영주동 부산터널을 막 지나려는 순간, 터널 위에 서 있는 새 집 같기도 하고 오래된 집 같기도 한 건물을 발견했다. 그래서 동행한 조명환 사진작가에게 얼른 물었다. 대답이 잽싸게 돌아 왔다. 도서관이라고. 이미 다녀왔노라고.

솔직히 이야기해 저건 배경이 없는 집이다. 아니 그림이 없는 집이다. 집을 우리는 오랜 기간 그림/배경이라는 도식적 틀 안에 오브제(물체)로 가둬 두었다. 게스탈트 심리학에 의하면 사물이 지(地)라는 배경 속에서 도(圖)라는 그림으로 도드라져 보일 수 있으려면 그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작은 편이 큰 편보다 그림으로 되기 쉽다. 둘째, 하부는 상부보다 그림으로 되기 쉽다. 셋째, 수평·수직으로 놓여진 부분은 그림으로 되기 쉽다. 넷째, 밝은 곳·고운 것이 다섯째, 한색보다 난색이 여섯째, 균등한 폭을 갖는 부분이 그림으로 되기 쉽다. 마지막으로, 싸는 것과 싸여진 것에서는 싸여진 편이 그림으로 되기 쉽다.

'영주동 글마루 작은도서관'의 외장은 수성페인트(상부), 유리, 노출콘크리트로 이뤄져 있다. 주변부 역시 유사한 재료로 구성돼 있다. 게다가 도서관 뒤편은 약 9m의 콘크리트 옹벽. 그 곳 위로 콘크리트에 흰색수성페인트, 유리창 등으로 구성된 주택들이 있다. 이로 인해 위에서 설명한 게스탈트 심리학이 말하는 '그림과 배경'의 조건이 되나, 그림과 배경의 관계 형성이 안 될 정도로 상호간에 섞임이 존재한다.

작은 편과 큰 편, 하부와 상부, 수평, 한색보다 난색, 균등한 폭을 갖는 부분, 수직으로 놓아진 부분, 밝은 곳 고운 곳, 싸는 것과 싸여진 곳 등이 영주동 글마루 작은도서관이 하나의 배경이 되는지, 주변이 배경이 되는지 처음 보아서는 알 수 없다. 자세히 들어다 보면 하나의 그림으로, 완결된 신축된 건물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워지는 풍경?

   
부산 중구 영주동 부산터널 바로 위의 주택가 건물들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글마루 작은도서관.
건축물이 배경과 그림의 관계가 선명할 경우 배경과 그림이 상호반발해 양자가 똑똑히 보인다. 이 경우 그림과 배경이 너무 분리돼 하나의 풍경을 구성하기 힘들다. 시인 이성복의 시 '어떤 풍경은'에서처럼. '어떤 늦게 먹은 점심처럼/ 그렇게 우리 안에 있다/ 주먹으로 누르고 손가락으로 쑤셔도 내려가지 않는 풍경,/ 밭 갈고 난 암소 턱에서 게 거품처럼 흐르는 풍경/ 달리는 말 등에서, 뱃가죽에서/뿜어나오는 안개 같은 풍경,/묶인 굴비 일가족이 이빨 보이며/ 노래자랑하는 풍경,/ 어떤 밤에는 젊으실 적 어머니/ 봉곳한 흰 밥과 구운 꽁치를/ 소반에 들고 들어올 것도 같지만,/ 또 어떤 대낮에는 '시집 못 간/ 미스 돼지'라는 돼지갈비집 앞에서/ 도무지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워지는 풍경,/ 갈비 두 대와 된장찌개로 배를 채우고/ 녹말 이쑤시개 혀끝으로 녹여도 보는 풍경,/ 그러나 또 어떤 풍경은 전화 코드 뽑고/ 한 삼십 분 졸고 나면 흔적이 없다'

일곱 개 풍경이 나온다. ▷우리의 몸이 체할 정도의 풍경 ▷암소처럼 지친 풍경 ▷말 등에서, 배가죽에서 뿜어나오는 안개 같은, 조화롭지 않은 풍경 ▷묶인 굴비처럼 억지춘향격인 풍경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워지는 풍경 ▷망상 같은 풍경 등에서 그림과 배경의 뚜렷함이 워낙 두드러져 그 둘 사이의 분리가 훤히 보인다. 이러한 풍경들과는 달리 '영주동 글마루 작은도서관'이 속하는 풍경은 ▷그림과 배경이 잘 분리되지 않는 조화로운 풍경이다. 그리고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워지는 풍경이다.

요즈음 도서관은 다른 용도의 것과 융합하나, 근본적으로 그곳은 각종 텍스트를 이용해 자기반성을 하는 곳이다. 즉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워지는 풍경'을 연출하는 곳이다. 인간이 체할 정도 풍경, 즉 과잉의 풍경은 사람의 눈을 어지럽게 한다. '조화로운 풍경'이란 그림과 배경이 상호침투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워지는 풍경'이란 인간의 이기심 욕망 때문에 이루지 못한 자기성찰이 이뤄지도록 하는 풍경이다.

■ 오랜 것에서 새것이 잉태

   
도서관 내부 열람실로 어린이 이용자를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 건축사진가 조명환
이 건축물은 뒷부분의 옹벽과 워낙 조화로워 얼핏 보면 어느 쪽이 먼저 생겼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다 보면 건축물과 옹벽 사이에 층이 있음을 안다. 즉 이것들 사이에 상호관계가 있다. 오래된 것 속에 새로운 것이 잉태돼 나온 것이다. 옹벽에서 '글마루 작은도서관'이 나왔다. 정말로 이곳은 그림과 배경이 두드러지지 않게 조화를 이룬다. 이 건물의 건축가 조서영(서원건축사사무소) 자신도 이런 건축물이 요런 옹벽 전면에서 출현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을 것이다. 아마 건축가가 여성이라는 점도 이 건축물의 출현에 많이 기여했을 것이다.
여성건축가가 수용하는 시각의 특징을 거칠게나마 살펴보자(일반적 경향을 말하는 것이지 결코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풍경은 무수한 시각들로 구성된다. 이중시각이란 다수가 아닌 소수가 갖는 시각이다. 예컨대 흑인, 소수민족, 여성 등이 갖고 있는 시각이다. 자기탐욕을 버릴 수 있는 것이 이중적 시각이다.

남자는 단일시각을 갖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만 여성은 단일시각만을 갖고 세상을 살 수가 없다. 여성만이 지니고 있는 특이한 시각에다가 남성적 시각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중시각을 갖고 있는 소수인 여성들은 소수와 다수를 위한 '동시설계'가 가능하다. 특히 여성들이 소수자를 위한 건축설계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이중시각 덕분이다.

이 이중시각 혹은 다중시각을 창조적으로 종합해내는 것이 바로 '풍경'이다. 가령 이 건축물에서 이중시각의 예를 들면 문의 손잡이를 만들 때 슬라이딩 도어의 문손잡이를 길이 방향의 색상이 달라지는 곳에 설치하여 식별을 쉽게 한다. 모서리를 둥글게 한다. 어린이가 다칠 것을 염려해서다. 이중시각적 배려다. 타자를 여럿 고려하면 창의적 풍경이 나온다.

■ 이중시각·다중시각을 적극 적용한 건물

이 건축물은 철저히 이중 시각적 이다. 실내로 들어가는 입구 바닥이 비정형이다. 아마 어린이를 위해서 일 게다. 획일화는 없다. 안내데스크부터 그렇다. 이층에서 다목적 홀에 올라가는 약간의 물매(비스듬히 기울어짐)를 가진 경사로에는 미끄럼방지용 테이프가 붙어 있다. 건물 곳곳의 그림이나 도안은 어린 시절 누구나 꿈꾸어 보던 세계다. 다목적실의 직각 모서리를 둥글게 한 후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 같은 것을 그리는 마음자세는 이중시각의 세계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생각하기 힘든 부분이다.

여기서 건축가는 두 가지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듯하다. 하나는 직각모서리가 유아들에게 위험하므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2층 공간을 꿈의 세계로 만들 속셈을 가진 듯하다. 계단 하부공간에 그려진 동화 같은 세계, 목재핸드레일에 흰 페인트를 칠한 것으로 만들어진 기하학적 문양, 계단의 밑 공간에 흰색 바탕과 초록 책꽂이의 어울림 등은 자신의 세계에 빠져있는 단일시각을 가진 고집 센 남성이 창조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물론 모든 남성이 단일시각을 갖는다는 말은 아니다. 또한 모든 여성이 이중시각 내지 다중시각을 갖는 것도 아니다.

단일시각이니 이중시각이니 다중시각이니 하는 것도 상대적이다. 건축가는 단일시각만 가져서도 안 되고 이중시각만을 가져서도 아니 된다. 건축가는 다중시각을 반드시 가져야 된다. 건축가의 시각은 다중적이다. 다중적이란 말은 이용자가 무한대인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즉 건축가의 시각은 창조적 풍경으로부터다.

평면에서도 여전히 이중시각적 관점을 건축가는 견지하고 있다. 1층 평면은 우선 안내/ 대출, 서가, 탕비실, 내부화장실이 2개가 있다. 2층은 열린 서가로 운영하고 있다. 각종 서가도 어린이나 어른이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 창조적 사고를 끌어낼 능력을 함양시킨다. 다목적실은 구연동화를 위해 사용된다. 또한 동쪽 벽면에 스크린을 설치함으로써 2층의 열람실이 더욱 더 다목적화될 것이다.

   
건축가의 궁극적 목표는 단일시각에서 벗어나 마침내 조화로운 풍경을 볼 줄 아는 자,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운 풍경임을 아는 자(자연파괴에 망연자실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건축물을 짓는 자는 단일도, 이중도, 다중시각도 아닌 창조적 풍경을 생성하는 자임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건축가 조서영은 과연 어디에 위치할까?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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