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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본 세계경제, 부산경제 <18> 에필로그 - 경제, 역사 그리고 삶

상처입은 미국, 뻗어가는 한국… 세계경제 급변 주시해야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2-26 20:17:20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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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 혈맹인 미국은 결코 과거의 미국 아니다
- 9·11테러와 금융위기 진원지로 큰 생채기 남아
- 미국경제 위축돼도 잠재력은 여전

- 뉴욕 중심가에 걸린 한국 알리는 광고, 소프트 파워 연결을
- 세계는 지금 과도기일지도…이럴수록 우리는 모두 깨어있어야

■워싱턴의 한국

   
미국 워싱턴의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유적.
"우리는 당신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We remember you forever)." 2010년 10월 워싱턴의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유적(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을 지인과 함께 둘러보다 그 유적 앞에 놓인 이 짧은 글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이 기념유적을 본 것이 한 두 번도 아니고, 한국의 각종 단체가 유적 앞에 놓은 이런 유의 글을 본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이 날은 무엇인가가 달랐다.

무엇이 내 마음을 움직였을까? 워싱턴의 여러 곳을 둘러보면서도 이런 의문이 풀리지 않았지만 역설적으로 세계은행에서 만난 지인의 희끗한 머리를 보면서 답이 가슴으로 다가왔다. 세월이었다. 혈기방장한 40대에는 이런 글을 보면 '아이고, 또 어느 관변단체에서 한 건 하셨구먼' 했고, 미국의 참전을 생각할 때면 '미국이 자기 이익에 따라 행동한 것인데'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50을 훨씬 넘긴 나이에는, 그와 함께 그들이 한국에서 흘린 피와 그들이 희생한 삶이 너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기념유적의 미국 군인들은 젊고, 팽팽했지만,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마치 우리 대학생들의 나이 때처럼. 그래서 그들의 희생이, 삶이 너무 아깝고 안타깝다. 그러니 어찌 그들을 기억하지 않을 수 있으랴.

국제경제건 국제정치건 혈맹(血盟)이란 용어는 시대착오적이고 비합리적이다. 하지만 외람되지만 인생이 무엇인지 그 쓰고 괴롭고 달콤한 맛을 어느 정도 아는 나이에선 차라리 그 혈맹이란 말의 의미에 천착하고 싶기도 하다. 한국과 한국 사람들에게 미국이 가지는 의미는 결코 이 단어를 벗어날 수 없다.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이 없기는 하지만. 문제는 사랑의 대상인 미국이 결코 과거의 미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처입은 용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의 삼성, 현대 광고판. 커가는 한국의 위상을 대변한다.
"우리들은 품위있게 여행할 권리가 있다." 지난 11월 미국의 추수감사절 연휴를 즈음해 여행을 준비 중인 많은 미국인들은 이렇게 외쳤다. 미국의 국토안전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가 대테러 전략의 일환으로 주요 공항에 전신검색대를 설치하자 '이건 아니다'고 생각한 많은 사람들이 이 검색을 거부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사람의 외형이 그대로 드러나는 검색대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검색 거부로 항공대란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우려와는 달리, 이 문제는 비교적 조용히 지나갔다. 테러의 공포 혹은 위험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사실 미국과 미국인들은 2001년 9월11일의 테러 기억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진주만을 기억하라'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구호 이래 처음으로 '9월 11일을 기억하라(Remember September 11th)'는 구호가 등장했는데 그 구호는 여전히 유효하다. 과거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자리에는 이제 기념관(Memorial)이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가 미국의 참전을 기억하며 그들을 영원히 기억하려 하지만, 미국은 이 테러를 영원히 기억하려 한다.

"사람 취급을 안 해 주네." 뉴헤이븐에서 만난 지인은 이렇게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교환교수로 와 교통국(DMV: Department of Motors and Vehicle)으로 신분증명서를 발급받으러 갔는데, 모든 서류를 완벽하게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트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주문을 하더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여권 만으로 된 것이, 이제는 온갖 서류를 제출해야만 되고, 그것도 한 달 정도를 기다려야 신분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DMV에선 일단 모든 외국인을 가상의 테러용의자로 본다. 그래서 매우 거칠고 무례하게 대한다.

나 역시 화가 났지만, 이제 역설적으로 이런 미국이 불쌍하고 애처롭다. 미국은 상처입은 용이기 때문이다. 10여년 전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대한 테러는 씻을 수 없는 생채기를 남겼고, 3년 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금융위기는 이 생채기를 덧나게 했다. 미국을 미국답게 했던 개방성과 포용성은 점차 줄어들고, 짜증과 날카로움이 나날이 더해간다. 이민으로 시작된 나라에서 이민을 배척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천부인권과 평등을 기치로 시작된 나라에서 이 가치를 훼손하려는 움직임도 보여진다. 이 용을, 이 용의 상처를 어찌해야 하나.

■여전한 미국의 가능성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내걸린 한국의 비빔밥 광고.
지금 세계 경제는 미국, 유럽, 그리고 신흥경제국(emerging markets)으로 나눌 수 있다. 과거에는 미국과 기타 등등이었지만, 이제 미국도 세계 경제의 한 부분으로 간주될 시점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중요하다. 아직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일 뿐 아니라 기축통화인 달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내가 이 나라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미국이 가지고 있는 여전한 그 가능성 때문이다. 우선,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의 IT 삼총사를 들 수밖에 없다. 이 세 거인은 단순히 IT분야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바이오와 에너지 분야에도 일찍부터 눈을 떴다. 특히 구글이 그렇다. 그러니 최소 10년은 이 기업들의 동향에 눈을 떼어서는 안된다. 우리 삶이 어떻게 변할지 어떻게 아는가.

그 다음, 미국의 가능성을 꼽자면 나는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이 땅 덩어리(아하, 그 광대함에 그냥 탄식만 나올 뿐이다), 그리고 미국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깊이와 넓이를 들고 싶다. 이 시리즈를 위해 뉴욕타임즈, 파이낸셜타임즈, 월스트리트 저널, 이코노미스트 등 숱한 미디어를 구독했고 건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세미나와 토론회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경제문제를 파고 들었던 나에게 뉴욕타임즈가 제시하는 문화의 세계는, 고백하건데, 하나의 경이였다. 디자인, 사진, 패션, 건축, 음악, 무용, 발레, 회화, 연극, 영화, 조각, 그리고 카툰까지. 특히, 이것이 집약된 뉴욕 맨하탄은 우습게도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맨하탄? 바로 테러의 표적이 되었던 곳이다. 그래서 참으로 역설적으로 나는 미국이라는 용이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계기 혹은 모티브를 맨하탄(혹은 미국)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다양성과 깊이에서 찾는다. 만약, 그렇게 상처가 치유된다면 그 용은 개방성과 포용성의 세계로 다시 비상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과 한국경제의 가능성

2010년 12월 11일 토요일 밤 7시. 한국에서 날아 온 지인과 함께 뉴욕의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추운 날씨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빨리 시작하지 않나하는 조바심과 함께. 우리는 한국의 MBC 무한도전 팀에서 제작한 '비빔밥 광고'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시작되었다. 난타로 시작된 광고는 한국의 맛(Taste of Korea)이라는 마지막 화면까지 약 30초간 상영되었다. 너무 짧지 않았을까? 하지만 옆에 있던 지인은 다르게 투덜거린다. '우리만 보고 있네.' 추운 날씨, 지나가는 행인들은 고개를 들어야만 볼 수 있는 이 짧은 광고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시 눈을 돌리니 삼성과 현대자동차의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또 다시 눈을 돌리니 서울 유네스코 시티 오브 디자인(UNESCO CITY OF DESIGN)이라는 사진 광고가 눈에 띈다. 세계에서 가장 번잡하고 상업적인 광장에서 한국을 알리는, 한국과 관련된 것이 네 건이나 되었다.

많이 컸네. 사실 그렇다. 이 '쬐그마한' 나라가 정말 많이 컸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 누구도 많이 큰 이 '쬐그마한' 나라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우리만 스스로 대견스러워할 뿐이다. 그러니 아직 자화자찬할 때는 아니다. 가야할 길은 멀기만 하고, 앞으로 10년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지는 아직 요원하다. 그러나 한국과 한국경제의 가능성은 커진 덩치(경제력)뿐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하고 그것을 더 확장하는 소프트 파워에서 찾아야 한다. 발을 동동거리며 비빔밥 광고를 기다린 것은, 그것이 이런 소프트 파워 확장의 작은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안 보네. 당연하다. 누가 광고를 보려고 기다리는가. 광고는 지나가다가, 우연히 눈을 돌리다, 스쳐지나가듯 다가와야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우리의 소프트 파워가 뻗어 나갈 때 그것은 다시 우리의 덩치(경제력)를 확장하는 선순환의 고리로 연결된다. 한미 FTA도 좋지만, 비의 음악, 소녀시대의 댄스, PIFF의 영화제 더 나아가선 한국의 불상, 회화, 도자기까지 줄줄이 앞으로 나가야 되는 건 아닌가.

■연재를 마치며

   
김기홍 부산대 교수·펜실베이니아 주립대 교환교수
이 시리즈는 세계경제의 시각에서 한국과 부산의 문제를 보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동부에서 한국과 부산을 보면 볼수록 그것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삶의 문제라는 것을 절감한다. 과거는 현재를 만들고 그것은 다시 미래를 만들어간다.

시리즈를 마치는 지금 몇 가지 회한과 성찰이 가슴을 친다. 세계경제와 미국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은 많이 제시했지만, 이들에 대한 현재와 미래의 모습은 생각한 만큼 그리지 못했다. 여러 사정이 있지만 다음 기회를 약속하기로 한다. 몸서리치게 다가오는 성찰은 어쩌면 세계는 지금 어마어마한 과도기에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건, 인간의 역사와 삶의 측면에서건. 아주 오랜 뒤에 지금을 돌이켜보면 그 과도기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너무 늦기 전에 우리 모두 깨어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이 귀중한 지면을 허락해 주신 국제신문에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경제문제라 조금 따분했을지 모를 이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연재를 마치는 지금, 이 미국에서 그 동안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두 마디 말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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