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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언 교수의 '건축, 시로 쓰다' <22> 안과 밖의 그리움 -수영강변 크리에이티브 센터

안마당으로 난 창, 빛도 풍광도 더불어 넉넉해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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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0-12-13 20:38:28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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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마당·안마당·뒷마당·하늘마당…
- 시골 옛집의 추억, 고스란히 품은 공간

- 외부 향한 시선 인위적 차단
- 내부로 끌어 당긴 1층 넉넉함은 압권

- 수영강 보이는 3층, 4층 게스트룸·정원
- 안팎 모든 공간이 자연과 이어져

센텀시티 건너편 수영강변로를 유심히 살펴보면 돌처럼 견고하나 열려 있는 집이 나타난다. 워낙 견고해서 난공불락의 성 같으면서 허허로운 들판 같다.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의 이야기처럼 '열려라 참깨'하면 돌문이 열리고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그 세계에 가기 위한 대문으로 향하는 경사진 길은 참으로 편했다. 이상하다 생각했더니만 장애인 겸용의 경사로였다.

경사로 주위는 사랑마당 같은 것이 산뜻하게 펼쳐져 있었다. 대문은 강철을 프레임으로 하여 틈새를 두고 촘촘히 짜인 긴 목재 막대기로 돼 있었다. 안이 보일 듯 말 듯 한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깥마당에서 그렇게 그리워하던 곳의 속내가 드러났다. 안마당이었다. 정말로 안과 밖은 서로 그리워하는구나. 정현종의 시 '이 노릇을 또 어찌하리'가 떠올랐다.

'안은 바깥을 그리워하고/ 바깥은 안을 그리워한다/ 안팎의 곱사등이/ 안팎 그리움// 나를 떠나도 나요/ 나에게 돌아와도 남이다/ 남에게 돌아가도 나요/ 나에게 돌아와도 남이다/ 이노릇을 어찌하리// 어찌할 수 없을 때/ 바람 부느니/ 어찌할 수 없을 때/ 사랑하느니/이 노릇을 또/ 어찌하리'. 이 시를 풀어 본다.

■ 디자인 전문업체 이인의 사옥과 연구소

   
부산 수영강변의 크리에이티브 센터는 밖에서 보면 견고한 성 같은 느낌과 바깥을 향해 열려 있는 인상을 동시에 준다. 안과 밖이 서로 그리워하는 형상을 읽을 수 있다. 건축사진가 조명환
안은 밖을 그리워하고 바깥은 안을 그리워하여 안팎의 곱사등이 되었다. 그런 곱사등이가 된 나는 나를 떠나서 다른 세계를 보았다손 치더라도 나는 나일뿐이다. 그 곱사등이인 내가 나에게 돌아와도 남일 수밖에 없다. 이미 남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또한 남에게 돌아가도 나일 수밖에 없다. 나에게 돌아와도 여전히 남이다. 안팎의 곱사등이라는, 나와 남으로 구성된 제3의 인물은 어차피 나도 아니고 남도 아니다. 또한 나이자 남이다. 이처럼 나와 남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나와 남도 달리 보인다.

'안팎 그리움' 때문에 '나를 떠나도 나요/ 나에게 돌아와도 남이다/ 남에게 돌아가도 나요/나에게 돌아와도 남이다'. 이런 순간에 바로 바람 불고 사랑이 다가온다. 건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안과 밖은 서로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안팎이 상호교류하는 제3의 세계, 즉 창조적 세계가 형성됨을 알 수 있다.

"참, 왜 이런 마당을 쓰임새도 없이 여기 두었을까" 생각하는 순간, '여기 빈 공간이 있으므로 주위의 실(室)들(사무실, 카페테리아)이 산다'라고 건축주 고성호는 이야기한다.(이 건축물의 건축가는 고성호와 경기대 건축과 교수인 정재헌 두 사람이다) 정말 그랬다. 사무실과 카페테리아 등이 안마당이 있음으로 해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공간이 된다. 모든 것이 관계 맺기를 통해 소생하는 듯했다.

법규 상 건폐율이 정해져 마당의 일정 부분을 기왕에 비워야 한다면 그 비움의 공간을 마당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건축가의 견해였다. 당연한 말이다. 그냥 놀리느니 땅을 안마당으로 활용하고 주위를 소생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이 얼마나 좋은가? 공원도 한 가지다. 기왕에 빈 땅을 두어야 한다면 주위와 연계시켜 개발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시에서처럼 나와 남이 서로를 위한다면 '…나를 떠나도 나요/나에게 돌아와도 남이다/ 남에게 돌아가도 나요/ 나에게 돌아와도 남이다…'.

1층 부분은 어딜 가나 안마당이 보인다. 1층 안마당은 1층 전 구역 시선의 중심이다. 1층은 철저히 각 실과 안마당과의 관계 맺기이다. 1층에서는 고의적으로 외부로 향하는 시선을 차단시켜 1층 내부만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2층에서는 이웃과의 관계 맺기로 이웃과 소통이 원활하다. 3층에서는 수영강을 쉽게 볼 수 있다. 4층에서는 더 넓은 커뮤니티를 볼 수 있다. 옥상은 하늘옥상으로 하늘만 볼 수 있다. 시의 '나와 남'처럼 이 건물의 현재와 과거도 나와 남의 관계이다. 뒷마당의 상당 부분도 현재와 과거가 나와 남의 관계에 비유된 것이다.
■ 다양한 종류의 빛을 읽을 수 있어

   
크리에이티브 센터의 1층. 안마당의 존재가 주변 공간에 생기를 준다.
평면부터 살펴보자. 1층 주출입구는 동쪽에 있고 동쪽갤러리, 정문에 바로 인접하여 앞마당이 있다. 앞마당과 접하여 1층 로비가 있다. 1층 로비(1층 대청마루)의 왼쪽으로는 서쪽갤러리, 계단실, 우측으로는 화장실과 다목적용 홀이 있다. 2층 로비(2층 대청마루)에서 볼 때, 왼쪽과 오른쪽 모두 사무실이다. 3층은 컨퍼런스룸(3층 대청마루)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사무실이 있고 오른쪽으로 CEO의 사무실, 카페테리아 등이 있다. 4층에는 게스트룸과 옥상정원이 있는데 이를 하늘마당이라 부른다. 뒷마당도 있어 이 마을의 쌈지공원 역할을 한다. 불투명 유리를 통해 일광과 반사광의 자연광을 고루 받아 뒷마당에서 4층까지 직통으로 뚫린 계단실이 마치 하늘에 부유하는 듯하다. 게다가 계단실마다 둘러쳐진 불투명강화 유리에 의해 사람이 구름 위로 부상하는 듯하다.

'안은 바깥을 그리워하고/ 바깥은 안을 그리워한다'. 이 구절은 어떻게 번안될까? 이 부분은 결론에 해당된다. 결론적으로 안팎 상호침투의 제3의 세계형성이다. 안팎이 그리움으로 꽉 차 있다. '나를 떠나도 나요 / 나에게 돌아와도 남이다./ 남에게 돌아가도 나요./ 나에게 돌아와도 남이다'. 이 말은 안과 밖의 대상 구분이 흐릿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람과 사랑으로 인해 하나가 될 수 있다. 주객합일경지이다. 그래서 '나를 떠나도 나요/ 나에게 돌아와도 남이다/ 남에게 돌아가도 나요.' 안과 밖이 처음에는 소통불일치였으나 나중에는 소통하게 된다

안팎이 합일되는 제3세계 요소를 찾아본다. 자연채광, 자연환기, 다양한 자연과의 교류(옥상잔디, 하늘마당, 틈사이가 촘촘히 가로로 있는 대문, 뒷마당, 다양하게 체험되는 마당들).

크리에이티브 센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다양한 빛 읽기이다. 대문에 들어서기 전의 경사로에서 느끼는 일상성의 빛, 안마당에서 일상성의 빛, 창을 통해 수영강변을 통해 바라보는 빛, 계단실에서 꿈꾸는 듯이 바라보는 빛, 그리고 이들 사이의 빛들, 이러한 복잡함에도 외관은 단순해 보인다. '바깥은 안을 그리워 한다/ 안은 바깥을 그리워 한다'. 외관의 단순함으로 바깥은 안을 그리워만 해서는 안 된다. 무엇인가, 그리움을 표현해야한다. 그 그리움으로 인해 바로 일상성의 빛의 다양함이 다채롭게 경험된다.

빛의 다양함과 더불어 풍광의 다양함도 얻는다. 안마당의 응시의 공간, 침묵의 공간, 하늘의 공간 (하늘을 담는 공간), 뒷마당, 수영강의 굽이침, 센텀시티의 전경 등 다양함이 휘황찬란하게 번쩍거린다. 이 크리에티브 센터는 어떤 존재를 간접적, 추상적으로 만나는 곳이 아니다.

■ 옛집과 새집이 서로 그리워하도록

'존재를 날것으로 만나자./ 부딪침과 느낌과 직감으로.// 나는 그대를 정의하거나 분류할 필요가 없다 / 그대를 겉으로만 알고 싶지 않기에./ 침묵 속에서 나의 마음은/ 그대의 아름다움을 비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소유의 욕망을 넘어/ 그대를 만나고 싶은 그 마음/ 그 마음은/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허용해준다.// 함께 흘러가거나 홀로 머물거나 자유다./ 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그대를 느낄 수 있으므로.(클라크 무스카스의 시 중)

   
크리에이티브 센터에는 존재를 날 것으로 만나야만할 것이 많다. 무엇보다도 안과 밖의 그리움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움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간은 존재의 날 것을 갈망한다. 존재의 날 것이란 보이는 것들, 저 깊이 숨어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리움이 많다는 것은 과거기억이 풍부하고 현재 지각이 예민하여 '기억-지각'의 곱사등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건축가 고성호는 어린시절 섬진강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그 강의 기억들을 수영강에 재현하고파 한다. 사실 뒷마당도 전적으로 그의 어린시절의 추억으로 재현했다고 한다. 안팎의 그리움이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지각으로 재활성화한다. 옛집은 새집을 그리워하고 새집은 옛집을 그리워한다. 아마 그 그리움이 이인 사옥 크리에이티브 센터의 사랑마당, 안마당, 하늘마당. 뒷마당, 집의 형태 등으로 변했을 것이다. '…존재를 날 것으로 만나자./ 부딪침과 느낌과 직감으로…'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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