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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언 교수의 '건축, 시로 쓰다' <21> 도심 속 작고 소박한 것의 빛, 플래닛빌딩

고층 빌딩숲에서 꼿꼿한 작은 것의 소중함이여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2-06 21:24:40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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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 4.1m×길이 9m, 7층의 순수한 건물
- 골리앗 같은 롯데호텔 옆에 다윗처럼 버티고 섰다

- 건축의 이즘이나 사조와는 거리 먼, 그러나 갖출 것은 모두 갖춘 곳
- 그 속에서 모처럼 평온을 맛본다

   
커다란 빌딩 숲 사이에 작고 낮지만 존재감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플래닛빌딩(사진 가운데 가장 낮은 건물)이 수더분한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건축사진가 조명환
청년시절 애송했던 '빛'이라는 시가 있었다. 몇 줄기의 빛인지는 모르나 지금 이 순간 여덟으로 기억하고 싶다. 왜냐하면 수 십 년간 내 머리 속에 잠자던 '팔복'(마태복음 5장)이 기억났으므로. 다윗처럼 복을 지닌 자가 결국은 빛이 될 것이라는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천국은 여덟(많은 수를 상징함 그러나 꽉 차지 않음) 빛이 모여 하나가 되는 곳이리라. 그렇게 기억하는 또 다른 이유는 예술작품은 빛이 여덟 줄기는 아니지만 또한 여러 개의 존재 빛이 모여 하나의 빛이 되는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 존재로부터는/ 하늘로 똑바로 올라가는/ 한 줄기 빛이 나온다./ 함께 있기로 운명이지어진/ 여덟 영혼이 서로를 발견하는 순간/ 여덟 빛줄기는 하나가 된다./ 그렇게 해서 하나가 된 여덟 존재로부터는/ 더 밝은 한 줄기의 빛이 비쳐나온다.'(작자미상) 마태복음 5장을 빛으로 번안(飜案)해본다.

■ 골리앗 곁에서 선 다윗 연상

빛 하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임이요. 빛 둘,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빛 셋,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빛 넷,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빛 다섯,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빛 여섯,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빛 일곱,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빛 여덟,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여덟 개의 빛이 모여 온 세상을 밝히리라.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의 플래닛빌딩을 보고 왜 마태복음 5장이 생각났을까. 아마 옆쪽에 골리앗처럼 우뚝 선 롯데 호텔빌딩 때문일 게다. 롯데호텔과 대비된 플래닛은 마치 다윗 같았다. 심령이 가난한 이가 설계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고정관념을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마음이 정말로 유연한 사람이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편견 없이 소통한다. 저 건물은 인간의 마음을 건드리는 속 깊은 구호성 가시가 전혀 없어 보인다. 정면에서 건축물을 바라볼 때 좌측 상단에 22.3m×5.4m 크기의 티타늄 아연판이 유일한 건축적 액센트이고 그 외의 군더더기는 전혀 없다. 자그마한 대지에 솔직히 표현하는 건축에서 무슨 고정관념, 편견, 구호성의 가시 등을 지니고 있겠는가. 이 건축물은 건축의 이즘이나 사조와 전혀 관련 없는 건축물이다. 그냥 이름 없이 들판에 던져진 돌멩이와 같다. 이 곳을 자주 왕래하는 사람들 중 이 건물을 전혀 본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애통해하는 자는 의로움을 갈망하는 이다. 의로움은 무엇을 말할까. 기독교에서 보자면 예수에 대한 갈구와 목마름이다. 건축에서는 무엇을 말할까. 이상적인 이미지에 대한 갈구이다. 아마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69)에 대한 갈구와 목마름인 듯하다. 안도식의 노출콘크리트에 대한 염원이 있었지만 시공 상의 하자발생 우려로 재료를 압출성형 시멘트 패널(노출콘크리트 디자인)로 바꾼 것을 보면 작가는 안도 다다오의 작품을 항상 이상적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허나 건축가들은 안도보다는 훨씬 소박하고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인 듯하다. 안도는 여러모로 수사법을 사용하나 이들은 수사법이라곤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이다.
크고 화려한 롯데호텔과 달리 이 건축물은 무척 자비롭다. 큰 건축물에 접근할수록 내부의 화려함과 길 찾기에 사람들은 주눅이 들어 볼일을 보러 가는데 머뭇머뭇한다. 이 건축물은 내부로 접근하기가 큰 건물에 비해 훨씬 수월해 외부사람도 누구든 화장실을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어있다. 큰 건물에서 길 찾기가 힘들어 끙끙 앓던 사람도 이 건물에만 들어서면 길 찾기가 정말 쉽다. 미래로 나아갈수록 건축물의 길 찾기가 더욱 어려워 질 것이다. 미국에서는 길 찾기(way-finding)가 건축학의 한 분야가 되어있을 정도로 길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길 찾기가 중요한 일상사가 되어가고 있는 이즈음에는 단순한 동선을 지닌 건축물을 찾기가 어렵다. 앞으로 건물 내에서 내비게이션을 들고 다녀야 할지 모르겠다.

■ 작지만 제 기능 감당하는 내부 공간들

   
빌딩 내부 모습. 소박한 창을 통해 찬찬히 바깥의 도심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이 건물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건축가들이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 이다. 꾸밈없이 전면에 툭툭 던져진 창들 속에서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을 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혹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 손바닥만 한 크기의 로비에 서서 창을 통해 도시 일상의 모습을 대하며 그것이 마치 확대된 것처럼 보인다. 다시 사무실에 들어가면 발바닥만 한 크기의 내부에서 전면창들을 가로질러 '강호동 머리'만큼 큰 도시의 일상을 마주한다. 이 자그마한 빌딩의 어떤 창을 통해 외부를 보더라도 현미경에서 보는 것처럼 확대된 일상을 보게 된다. 습관적으로 그것이 그러려니 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살고 있는 우리는 확대된 일상에 정신이 번쩍 든다. 이 건물 안에서는 바깥의 모든 것이 낯설고 크게 보인다. 상대적으로 좁은 내부공간 탓이리라.

영화 '존 말코비치되기'의 7과 1/2층처럼 자그마한 공간에서도 우리가 충분히 살 수 있음을 인지한다. 필요 이상 큰 것에 대한 선호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우리가 일상 안에 머물고 있는 한 그것이 만성이 돼 큰 것도 큰 것으로 느끼지 못한다. 이 건물에 들어서면 갑자기 일상적 욕망의 게걸스러움을 간파한다. 이를 깨닫고 거듭날 때 아마 우리는 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란 의미를 잘 느낄 수 있다.

이 건축물은 화평함을 느끼게 해준다. 내부에서는 넓지 않은, 물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무실, 엘리베이터, 로비 등의 크기에 비해 턱없이 작지만 그렇다고 좁지 않은 사무실의 크기에 딱 적당한 엘리베이터, 계단실, 화장실 등이 마음을 화평케 한다. 내부공간에 들어서면 마치 일상의 복잡함에서 피신해온 사람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는 일상이 너무 멀리 보인다. 저 쪽은 거인들이 사는 다른 세상.

바닥 널이 깔린 곳을 이 건물사람들은 '데크'라 부른다. 그곳은 1층의 근린생활시설로서 약 85㎝ 뒤로 밀어 배치되고 데크의 길이는 7.4m이다. 복잡한 도시로에서 이탈하거나 혹은 비를 피하는 안도감이 있는 것이다.

이 건축물의 간판들은 모서리의 간판걸이에서 조용히 있으라 경고를 받은 모양이다. 전면 오른쪽 모서리와 나란히 하는, 간판집합장소인 간판걸이가 약 15m의 길이로 서있다, 아마 시청이나 구청의 조례에 따른 듯하다. 시청이나 구청에서 하는 일은 공공성이라는 이름으로 간판들의 오와 열이 맞도록 한 곳에 정리, 정돈하도록 명(命)을 내리는 일이다. 전면 간판들도 간판걸이에 길게 세워 배열하지 말고 전면 창들처럼 자유롭게 정면에 적당히 툭툭 던지듯이 미학적으로 배열될 수 없을까. 하여튼 건축설계에 적용되는 법규나 조례의 항목이 왜 그리 많은지. 건축법규나 조례의 까다로운 항목이 있음에도 이 건물은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구절처럼 서 있다.

■ 차분한 졸박미 간직

   
이동언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
건물의 폭과 길이가 4.1m×9m이고 7층이다. 마치 몇 호의 자그마한 집들이 수직으로 군집해 있는 하나의 마을 같다. 내부 벽의 마감도 두께 30㎜ 시멘트 몰타르에 투명에폭시 마감이어서 그런지 오래된 집처럼 보인다. 바닥도 시간이 꽤나 오래 흘러간 집처럼 보인다. 각 층의 바닥이 시공 문제인지 고의성인지 7층 바닥에서 전면 창틀과 바닥 틈 사이로 1층 바닥이 보인다.

질서 정연함 속에 있는 파격의 창호배치, 어쩐지 아귀가 맞지 않는 듯한 각 층들 사이의 틈새, 새 건물의 오래된 듯한 마감, 광택 나는 재료의 사용 배제, 텅 빈 시각으로 바라볼 여지가 있는 열린 공간의 개구부 등에서 이 빌딩의 졸박미(拙樸美)를 느낀다. 졸박미, 건축작품, 여덟까지의 복(빛)을 받은 자 등이 하나의 빛이 됨을 느낀다. 존재는 빛이고, 모이면 더 큰 줄기의 빛이 되는 모양이다. 바다 같은 빛을 모으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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